선사시대 무덤에 대해 알 수 있는 ‘복천박물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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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위치한 복천박물관을 소개합니다.
복천 박물관은 선사시대 무덤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인간이 의도적으로 시신을 처리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무덤을 조성한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무덤의 형태는 움무덤 ( 토광묘 ), 독널무덤 ( 옹관묘 ) 등 입니다. 무덤 속에는 장신구를 비롯한 토기 , 석기 등의 생활도구를 함께 매장하기도 합니다 .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돌널무덤 ( 석관묘 ), 움무덤 ( 토광묘 ), 돌덧널무덤 ( 석곽묘 ), 독널무덤 ( 옹관묘 )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으로 변천합니다 .
삼한 전기시대의 무덤은 땅을 파고 통나무나 판재로 된 널을 안치하는 널무덤으로, 오늘날 무덤형태와 유사합니다 . 지역에 따라서는 독널무덤과 움무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 널 안에는 주로 피장자가 평상시 사용한 구슬이나 청동거울 , 부채 , 칠기 , 토기 등을 매장하였습니다 .
삼한 후기에 접어들면서 삼한 지역은 덧널무덤을 축조하고 신식 와질토기를 사용했습니다. 삼한 후기 문화는 철재무기의 대량 생산이 특징입니다. 피장자의 주변에 장신구와 무기류, 귀중품 등 몸에 지녔던 물건을 발이나 머리 쪽에 넣었습니다 .
백제의 무덤은 고구려의 영향으로 돌무지무덤이 유행했습니다 . 초기에는 바닥에 냇돌이나 깬 돌을 깔고 널을 놓은 후 다시 돌을 둥근 모양으로 덮은 간단한 구조였습니다 . 점차 네모난 돌을 계단모양으로 쌓아 올려 무덤방으로 만드는 돌방무덤으로 발전하였습니다 .
신라에는 돌무지덧널무덤이 많이 형성됐습니다. 무덤의 구조는 지하나 지상에 덧널을 두고 내부에 널과 부장품을 넣은 후 덧널위에 깬 돌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두텁게 쌓아 봉토를 만든 형태입니다 . 무덤내부에는 금관이나 화려한 금 , 은제 장신구 , 용기류 , 유리제품 , 토기 , 철기 , 칠기 등을 함께 묻었습니다 .
복천박물관은 주로 가야시대의 무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 가야무덤은 지역에 따라 구조와 형식에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4 세기에는 덧널무덤 , 5 세기 이후에는 돌덧널무덤이 유행하다가 6 세기에는 무덤에 입구를 만든 돌방무덤으로 변화했습니다 . 특히 덧널무덤은 삼한후기에 비해 규모가 커지면서 유물만을 매장하기 위한 별도의 딸린덧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 철재갑옷 , 칼 , 마구 등 무기류와 토기류가 함께 매장 됐습니다.
내성유적
오륜대고분
반여동고분
연산동고분
복천동고분의 변천
복천동 38 호고분
금관가야는 김해지역에 있던 변한의 구야국이 발전하여 성립된 나라로 철을 매개로 한 대외 교역권을 장악하면서 전기가야를 주도하였습니다 . 금관가야의 영역은 김해를 비롯하여 동쪽으로 부산지역 , 서쪽으로 창원동읍 , 진영일대로 추정을 해봅니다 .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김해 대성동고분군 , 양동리고분군 , 부산복천동고분군 등이 있습니다 .
- 작성자
- 조분자
- 작성일자
- 2019-02-0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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