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유네스코 등재 유물
믿음을 통하는 통신사 오늘날에도 그 정신 회복해야
- 내용
부산박물관이 개관 40주년을 맞으며 '신수유물소개전'으로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된 부산박물관 소장의 조선통신사 유물을 공개했다. 서화류 10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작년 10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유인즉 한일간의 평화와 타문화에 대한 교류와 존중의 인류보편적 가치를 중시 여겨서라고 한다.
조선시대 통신사는 조선 국왕이 일본의 막부장군에게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이었다. 총 400~500명이 참여했으며, 최고 책임자인 정사 부사, 종사관 등의 삼사를 비롯해 통역관과 제술관, 하관인 격군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양을 출발 부산, 쓰시마를 경유, 쓰시마 도주의 안내로 에도까지 왕복하였다. 일정은 6개월에서 1년까지 소요되었다. 통신사 행렬이 통과하는 지역의 영주들은 음시고가 선물을 준비하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 접대 준비에 많은 비용을 내었고, 일본인들은 조선에서온 통신사 행렬을 보기 위해 거리를 가득메웠다.
통신사는 바다를 건너가야 했기에 사행단에는 선박 운항과 일본어에 익숙한 부산 사람들이 다량 참여했다. 사행단에 참여한 부산 사람들의 거주지는 동래, 부산, 좌수영, 초량, 가덕, 기장 등이었다. 통신사의 파견으로 조선과 일본 양국 문화가 교류하는 계기가 되었고, 당대 일본 문인들은 시를 잘 짓는 것을 교양으로 중시해 통신사 일행과의 시문교환 등 문학 교류에 열정이 많았다. 그리하여 통신사 일행이 통과하는 객사에는 한시문과 학술의 필담창화가 성행하였다.
문학만이 아니라 역사와 풍속 의약등의 지식도 교류되고 조선의 그림과 글씨 음악과 마상재 등 예술 분야도 일본에 소개되었다. 이로써 통신사 파견으로 일본과의 문화교류가 다방면에 활기를 띠며 통신사는 정치 외교가 아닌 문화사절로 톡톡히 그 역할을 하였다.
1월 9일부터 5월 7일까지 부산박물관을 찾아, 성신과 교린의 역사와 조선시대 선조들의 뛰어난 필체와 문화감각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의 믿음을 통하고자 했던 통신사의 역사가 경직된 오늘날의 한일관계에서도 성숙된 외교의식으로 발현되길 바래본다.
- 작성자
- 김광영/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8-01-1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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