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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유산의 보고 부산 원도심 골목마다 살아 숨쉬는 삶의 온도

개항 이후 현재까지 부산의 역사 새겨진 시간의 수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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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원도심 골목

 ▲ '또따또가' 주변은 유럽풍 노천카페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부산 원도심은 살아있는 생활유산이다. 1876년 개항 이후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부산의 근대사가 차곡차곡 새겨져 있는 시간의 수장고(收藏庫) 다. 부산항을 중심으로 남포동, 동광동, 대청동, 중앙동에서 초량까지를 아우르는 원도심권역은 부산항을 중심으로 내륙으로 전진했다. 시간과 사람은 공간을 확장시킨다. 원도심은 당대와 호흡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진과 멈춤, 후진을 거듭했다. 전진과 후진을 거듭할 때마다 실핏줄처럼 골목이 태어났다. 배아(胚芽)가 분화를 거듭한 후 하나의 생명으로 성장하듯 부산 원도심은 개항 이후 143년동안 핵분열과 분화를 거듭하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말하자면 부산 원도심은 부산이 시작된 곳, 부산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곳간에는 부산의 역사와 사람, 문화가 새겨져 있다. 남포동-동광동-대청동-중앙동-초량까지 아우르는 공간에는 개발의 상처를 견뎌낸 골목이 고졸하게 빛나고 있다. 이곳에는 무늬가 있다. 이 무늬는 부산인문(釜山人文)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고선의 무늬처럼 고요하게 흐르는 인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가난한 예술가들이 둥지를 튼 중앙동 골목이 나온다. 가파른 동광동 40계단에는 전쟁의 참상을 피해 내려온 피란민의 애환이 어룽거린다. 인쇄골목에는 철커덕철커덕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멍키 스패너와 벤젠 기름때가 얼룩진 낡은 골목안에는 사천오백원짜리 백반을 파는 노포가 있다. 청년 예술가들의 도전과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는 다르면서 같다. 디지털에 대항하는 아날로그들이 부르는 패배의 송가(頌歌)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싸움이 있다. 부산 원도심의 골목은 패배의 아름다움과 굴하지 않는 정신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패배할 줄 알면 싸움과 기꺼이 마주하는 용기가 부산 원도심을 지켜왔다.
중앙동 40계단을 시작으로 원도심예술창작공간 '또따또가'-백년어서원-화국반점-백산기념관-옛 청자빌딩을 리모델링한 한성 1918-고갈비골목-부산 최초 아파트인 청풍장·소화장 아파트까지. 그 시절의 역사를 천천히 따라 가본다.


 피란시절 애환 어린 '40계단'
중앙동 40계단 일대에는 젖먹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여인과 뻥튀기 장수 아저씨,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게꾼, 양동이와 물독을 이고 지고 물을 길어 나르는 여자 아이들 등 6·25전쟁 당시 애환 어린 피란민들의 삶을 조형물로 설치해 놓았다.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의 기념 조형물이다.
40계단은 피란시절 노동의 공간과 휴식의 공간이 서로 만나던 경계지역이었다. 당시 피란민들은 40계단 위쪽으로 천막집, 판잣집들을 얼기설기 만들어 임시거처로 삼았는데, 40계단을 통로로 노동과 일상을 반복했다. 계단 아래는 품팔이, 껌 장사, 부두 하역 등을 하던 노동의 장소였다면, 계단 위로는 잠시나마 발을 뻗고 눈을 붙이던 휴식의 장소였던 셈이다. 때문에 피란민들은 40계단을 힘든 하루의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장소로 이용했다. 40계단에 앉아 가족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짓기도 하고, 헤어진 가족들과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40계단 주변으로 원도심예술창작공간 '또따또가'가 자리잡고 있다. '또따또가'의 대표적 인문학 공간인 '백년어서원'은 인문학 강좌와 평생학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원도심 예술창작공간 '또따또가'
원도심 예술창작공간인 '또따또가'는 2010년부터 중앙동을 중심으로 비어있던 원도심의 건물에 젊은 문화예술인 360여명, 22개의 예술문화단체가 터를 잡아 입주하면서 조성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당시 중앙동 일대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의 심화로, 곳곳이 빈 건물로 남아 있는 등 하루가 다르게 쇠락하고 있었다. 이곳의 빈 건물들을 임대해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지금의 젊은 예술문화가 꽃피는 지역이 됐다. 대표적인 공간으로 인문학 공간인 '백년어서원'과 문화공간 '수이재', 영화 관련 공간인 '모퉁이극장', '또따또가 갤러리' 등이 있다. 특히 백년어서원은 부산의 대표적인 인문학 강좌 및 평생학습 공간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40계단을 오르면 '동광동 인쇄골목'이 나온다. 동광동 인쇄골목은 한때 원도심에 집중돼 있던 관공서와 기업들의 인쇄물을 소화하기 위해 인쇄출판 관련 업종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형성한 골목이다. 그러다보니 1980년대 전후로는 다양한 문화관련 산업 또한 이곳으로 몰려 '부산문화 르네상스'였던 '중앙동시대'가 활짝 열리기도 했었다.
인쇄골목에서 대청로를 건너면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상점이 있던 백산길이 나온다. 백산길 초입에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중국음식 전문점인 '화국반점'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신세계'에서 "부라더는 그냥 딱 이 형님만 믿으면 되야~" 라며 황정민이 이정재에게 술잔을 건네던 장소로 유명세를 탔던 곳이다.

 

원도심 골목 한성1918
 ▲ 피란민의 애환이 서려있는 40계단과 한성1918의 고풍스러운 건물 외벽, 오래된 아날로그의 절절함을 보여주는 인쇄골목(사진 왼쪽부터).

 

백산길 초입에서 만나는 근·현대 부산 역사
화국반점에서 조금 들어가면 부산의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념하는 '백산기념관'이 있다. 백산기념관 주변은 백산 안희제 선생이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운영했던 '백산상회' 일원이다. 백산기념관 바로 옆에는 옛 청자빌딩을 리모델링한 한성 1918이 있다. 청자빌딩은 1918년 세워진 부산 최초의 금융기관 건물로 옛 '한성은행 부산지점'이 입주해 있던 곳이다.
광복동 시티스폿 인근의 ABC마트(옛 미화당 백화점) 뒤편 골목에는 한때 부산을 대표했던 젊은이들의 먹거리 '고갈비'를 팔던 '고갈비골목'이 있다. '고갈비'란 고등어를 반으로 갈라 등뼈가 보이게 펼쳐서 석쇠나 번철에 노릇노릇 구워 팔던 음식이다.
고갈비골목에서 남포동 '영화의 거리'로 들어선다. CGV 남포점 뒷골목,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아파트 2동이 세월의 더께를 잔뜩 이고 서 있다. 1941년 일본인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한 동은 '소화장 아파트', 또 한 동은 '청풍장 아파트'다. '소화장 아파트'는 부산이 임시수도 시절 국회의원 관사로 사용됐던 역사적 건축물이다. 국회가 부산으로 피란오면서부터 1953년 9월 환도하기까지 이용됐다. 당시의 르네상스식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궁형 형태의 복도는 예전의 아름다움은 사라졌지만, 세월의 더께에도 여전히 미려한 맛을 곱씹을 수 있다.


원도심 골목을 걷는 것은 부산의 실핏줄을 따라 부산의 시원을 만나는 여정이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오래된 골목에도 변화가 생겼다. 잘 단장된 가로와 분위기 있는 카페와 맛집이 골목에 생기를 준다. 1950년대 문을 연 빵집부터 오래된 국숫집과 백반집은 시간과 함께 깊어진 부산의 깊은 맛을 보여준다. 부산의 역사와 문화, 생활유산까지 두루 살펴보기에 하루는 너무 짧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실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클쿠레한 구 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백석 '국수' 부분)
원도심 골목은 백석의 시 '국수'같다. 이곳에서 만나는 슴슴하고 수굿한 부산의 맨살. 부산 원도심은 만질 수 있는 부산의 역사다. 지금도 살아 펄떡거리는 낮고 곤한 심장 박동소리같은 ….

                                                                                                                                                               김영주_ 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19-01-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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