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한국전쟁 18일 동안의 지휘본부
- 내용
부산시남구 대연동에 있는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에 가면 붉은 기와로 지은 단층 돌담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에서 이곳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낮 카페로 변해있지만 건물의 역사는 한국전쟁에서 기리 남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건물 명칭은 ‘워커하우스’이며 내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건물은 6.25한국전쟁 당시 미8군 사령부의 지휘본부로서 사령관 워커 장군과 참모들이 머물렀던 역사의 현장이다. 1950년 9월 부산 방어권은 거의 무너질 것 같이 아슬아슬한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건물벽은 총탄을 뚫고 들갈 수 없도록 지었다.
미 8군 참모들은 삼랑진과 마산을 잇는 데이비드슨 라인으로 후퇴하자는 논의까지 벌어졌다. 9월 4일 워커장군은 그 계획을 철회하였다. 그 대신 9월 6일 8군 사령부만을 대구에서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인 이곳으로 이동을 하였다. '한국전쟁을 기록한 역사서 416쪽 참고'
그 이유는 텔레타이프 통신장비를 보호하는데 있었다. 만일 장비가 훼손되거나 적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극동지역에서 그러한 장비를 당장 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워커장군은 격전지에서 총탄세례를 받으면서 작전을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워커장군은 야전 지프를 직접 몰면서 낙동강 전선을 미친 듯이 누비고 다녔던 연구에 회자되고 있는 일화다.
이곳은 낙동강 방어선이 가장 위험했던 18일 동안 전쟁의 지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러나 워커장군은 그해 12월 23일 24사단에 복무 중이던 아들 셈 심스 대위에게 은성무공훈장을 달아주려고 식장으로 가던 중 차량 전복사고로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가 사망하기 3일전 이승만대통령은 낙동강 사수의 주역인 그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서울의 워커 힐 호텔도 그이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한편 이 건물은 6.25이후 교수와 학생들의 식당으로 사용하다가 1981년 5월 동아리방으로 활용한바 있으며 1995년 9월 29일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작성자
-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8-12-0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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