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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구포다리와 3.1(삼일)운동의 진원지 가다

내용

구포다리 옛모습 

 

구포다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 9월 13일 착공하였다. 1933년 3월 7일 준공하였다. 길이 1060m 폭 8.4m 강서구대저동과 북구구포동을 잇는 다리다. 건설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로 명칭은 ‘낙동장교’ 라고 붙였다. 공사 총인원 7,760명, 공사비 70만원이다. 이 다리가 없을 때 구포와 대저사이는 나룻배로 왕래하였다. 홍수지면 나룻배는 건너다니지 못했다.

 

구포다리 옛모습
 

다리의 이력이 긴 만큼 애환도 많이 가지고 있다. 2003년 9월 14일 오후 2시 50분경 태풍 ‘매미’로 인해 부산북구 구포동과 강서구 대저동을 잇는 길이 1,060m의 폭 8.4m의 구포다리 19번째 교각이 불어난 강물을 견디지 못하고 길이 15m 상판 4개가 무너졌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구포다리 옛모습
 

낙동강하구 지역의 명물로 부산과 경남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구포다리는 수많은 추억을 뒤로 한 채 우리의 곁에서 영원히 사라졌지만 그 모습은 영원히 잊혀 지지 않고 시민의 뇌리에 남아있다.

 

부산을 세계로 기념탑

 

이곳에는 부산을 세계로, 라는 기념탑을 만난다.

조형물은 구포대교의 개통과 더불어 밝은 미래와 세계를 향하여 도약하는 부산시민의 의지를 형상화한 조형물로 구포강둑에 우뚝 세워져 있다.

 

옛 구포다리는 비록 흔적을 감추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근현대식 새로운 구포다리가 부산시민들을 위안하고 있습니다. 다리 아래에서 강 건너 강서구 대저동을 바라보니 인간의 만감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구포다리
 

구포장터 3.1운동은 1919년 3월 29일 구포장터에서 일어났던 3,1만세운동을 기념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한 선열들의 민족혼을 기리기 위하여 광복 50주년에 조성한 기념비가 구포대로 변 낙동강 구포다리아래 강변위에 세워져있다.

 

구포장터 3.1운동 기념비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은 경성의전에 다니던 양봉근으로 부터 독립 선언지를 전달받은 지역청년들이 주도하였다. 3월 29일 정오 청년들과 장날을 맞아 모인 장꾼, 농민 노동자 등 천여 명이 구포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무자비하게 총칼로 제지하는 일본경찰에 의해 9명이 부상을 입고 주동자 42명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구포지역 주민들의 굳센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보여준 의거로 기록에 남아있다. 기념비의 뒷면에는 구포장터 3.1운동에 앞장 선 43명의 이름을 새겨 후세에 남기고 있다.

 

새로운 구포다리
 

매년 3월 29일 즈음하여 구포장터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열고 온 몸으로 일제에 항거한 구포 주민들의 민족정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는 곳이 구포입니다. 구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구포국수죠, 시중에 많이 팔고 있으니 북구 구포시장을 살리고 부산경제를 활성화하는데 도움을 줍시다.

작성자
조분자/이야기 리포터
작성일자
2018-12-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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