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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10월호 통권 144호호 기획연재

“장단, 소리, 춤 다 하는 예인들 모였습니다”

노래·춤·악기 다 되는 전통음악연주단 ‘쟁이’ … 2007년 창단, 공연만 500회 넘어

내용

“홍보는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올 사람은 오더라고요.” 젊은소리 ‘쟁이’ 박준식(44) 대표는 부드러운 사람이다. 춤사위가 몸에 밴 듯 맵시가 부드럽고 음성이 나직나직 부드럽다. 그러면서 고집이랄지 예술혼 같은 게 느껴진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보이기 위해서 먼길을 걸어왔고 먼길을 걸어가는 자의 고집이고 예술혼이다.

 

박준식 젊은소리 쟁이 대표

 

전통에 뿌리 두고 대중에게 다가가는 음악 추구


젊은소리 ‘쟁이’. 일반인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따로 홍보하지 않고 따로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공은 대단하다. 한마디로 고수다. 전통 악기라면 못 다루는 악기가 없다. 박 대표만 그런 게 아니고 단원 11명 모두 그렇다. 창단한 지는 10년이 넘고 공연 이력은 500회 가깝다. 그런데도 생소한 걸 보면 참 대단한 고집이고 참 대단한 예술혼이다.

 

‘쟁이’는 전통음악연주단이다. 한국음악과 춤을 전공한 선후배가 의기투합해 2007년 부산에서 창단했다. 전통에 뿌리를 두고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음악을 추구한다. 잊혔거나 사라진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수용한다. 작곡과는 다른 개념이다. 극히 일부만 남은 원곡을 실마리 삼아 재구성 등의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열린 작품을 만든다.

 

“음악만 하는 게 아니고 가·무·악을 다 하므로 볼거리가 다양합니다.”

 

박 대표가 뜻이 맞는 지인과 ‘쟁이’를 창단한 취지는 국악의 보급과 대중화였다. 국악이 대중화되려면 우선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어야 했다. 노래와 춤과 음악을 한데 합쳐 볼거리 넘치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알던 단원 모두가 가·무·악에 두루두루 능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가·무·악에 두루두루 능한 것을 박 대표는 ‘총체적 악·가·무’로 표현한다.

 

 

 

2007년 창단한 전통음악연주단 ‘쟁이’는 가·무·악 모두 가능한 단원들로 구성됐다(사진은 ‘쟁이’ 공연 모습).

▲2007년 창단한 전통음악연주단 ‘쟁이’는 가·무·악 모두 가능한 단원들로 구성됐다(사진은 ‘쟁이’ 공연 모습).

 

 

중학교 3학년 때 문화캠프에서 전통예술에 빠져


박 대표는 학교를 여러 군데 다녔다. 총체적으로 다닌 셈이다. 학교도 여러 군데지만 지역도 여러 군데다. 이러한 학력은 뒷날 삼도(三道)의 굿을 재구성한 무속음악으로 승화된다. 2012년 가을 무대에 올렸던 ‘맞이와 풀이’가 그것이다. 박 대표가 다닌 학교는 전북 백제예술대, 경남 경상대, 서울 중앙대다. 호남 진도씻김굿, 영남 남해안별신굿, 경기 경기도당굿이 박 대표에 의해 재구성되고 재창조됐다. 박 대표 고향은 통영 한산도다. 덕분에 일상생활에서 굿을 접했다.

 

“어릴 때부터 상여 나가는 거나 정월 대보름 풍물을 보며 자연스럽게 몸에 뱄어요.”

 

고입시험을 치른 중학교 3학년 겨울 통영 시내 문화캠프에서 전통예술을 접하고선 푹 빠졌다. 충무고등학교 전통 동아리에 들어가 통영오광대와 남해안별신굿 등을 배웠고 대학에서 전통예술, 민속무용, 한국음악을 전공하며 예인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 가락 우리 마당’ ‘춤으로 만나는 아시아’ ‘우리 춤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다’ ‘김명자의 춤 대공연’ ‘정신혜무용단 춤 사계’ ‘용궁 가는 비토 토끼’ ‘영남춤 축제’…. ‘쟁이’가 참가한 공연들이다. ‘쟁이’는 전통춤 반주공연, 초청공연 등으로 무대에 오른다. ‘쟁이’ 자체 정기공연을 한 해 2번 갖고 전체적으로 한 해 50회 정도 공연을 갖는다. 오는 11월에는 부산 춤을 지키는 춤꾼과 음악을 맡은 ‘쟁이’가 일본 오사카, 도쿄, 교토 순회공연을 연다.

 

 

잊혔거나 사라진 전통문화 복원에도 힘써


“부산은 춤이 독보적입니다. 전국 어디 내놔도 단연 최곱니다. 김진홍, 김명자, 김온경, 엄옥자, 이도근 선생님 등등 전통춤 대가 모두가 부산 분이시지요.”

 

박 대표가 부산에 온 건 2007년. 그해 1월 부산에 왔고 3월 ‘쟁이’를 창단했다. 아내 고향 부산에서 뜻을 펼치고 싶었다. 서울에서 줄곧 활동하다가 창원에 잠시 있었고 그러다 부산으로 왔다. 부산은 아내 고향이기도 했지만 한국춤 내지는 전통춤의 성지이기도 했다. 한국춤의 거대한 수맥이 흐르는 곳이 우리 사는 부산이다. 부산 사람은 가까이 살아 잘 모르겠지만 멀리 사는 타지 사람에게 부산의 춤은 향수이자 자극이자 전설이다.

 

박 대표 역시 부산에 한껏 빠졌다. 고향 통영에서 국가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을 이미 이수했거니와 동래한량춤 전수자로 활동하는 중이다. 동래 금강공원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회원으로 등록해 김진홍 선생에게 매달 사사한다. 아울러 지금은 없어진 한량춤 반주음악을 복원하고자 퍼즐을 맞추어 나간다.

 

젊은소리 ‘쟁이’가 있는 곳은 수영구청 맞은편. 예술공동체 ‘예인청’ 작업실을 쓴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부산노리무용단’ 대표를 지낸 황지인 선생이 대표로 있는 ‘예인청’ 역시 시대 흐름에 맞춰 전통예술의 대중화와 한류화에 애쓰는 단체다. ‘쟁이’나 ‘예인청’이 기울이는 열정과 경륜에 비해 운영은 늘 버겁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서 각오와 보람으로 헤쳐 나간다.

 

“장단도 했고, 소리도 했고, 춤도 했던 예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어떤 예술인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묻자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고집이랄지 예술혼 같은 게 다시 느껴졌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보이기 위해서 먼길을 걸어왔고 먼길을 걸어가는 자의 입술이 붉어졌고 나는 마음이 붉어졌다.

작성자
동길산
작성일자
2018-09-2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10월호 통권 144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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