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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7월호 통권 141호호 기획연재

동래읍성 따라 둘러보는 충렬의 역사

동래부 동헌~송공단~임진왜란역사관~동래읍성~장영실과학동산~복천박물관

내용

부산의 역사를 분류할 때 크게 고대사와 근대사를 기점으로 나눌 수가 있다. 지역으로 따지면 고도심인 동래와 근대사를 아우르는 원도심 지역으로 나눠진다. 동래는 동남해안의 국경을 수호하던 군사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인접국가와의 외교업무를 관장하던 지역이기도 했다. 해서 조선조에는 변경의 진으로서는 특별하게 독립된 독진으로 동남해안의 국경을 지켰고, 부산포가 개항한 후에는 일본과의 외교업무를 전담하기도 했다.

 

때문에 동래는 과거 부산의 대표적인 지방행정중심지역으로서, 또 양반가의 전통문화와 동래장을 중심으로 한 서민문화가 서로 공존하며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이번 ‘걸어서 만나는 부산 역사’는 동래구 ‘동래읍성’의 흔적을 따라 길을 걸어본다. 동래부 동헌을 비롯해 송공단,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동래읍성 북문 등과 복천박물관, 동래읍성역사관, 장영실과학동산 등을 찾아본다.

 

 

 

동래읍성 

▲동래읍성.

 

임진왜란 격전지, 동래성 전투


동래 수안치안센터 앞 동래 만세거리에서 동래시장을 마주보고 선다. 이곳이 동래읍성 남문으로 추정되는 자리이다. 임진왜란 당시 송상현 동래부사가 조선정벌의 제1진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와 대치했던 곳이다. 고니시군의 ‘전즉전의 부전즉가도(戰則戰矣 不戰則假道·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기 싫으면 길을 비켜 달라)’는 요구에 결연한 의지의 송상현 부사가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패목을 던졌던 곳이다. 

 

1592년 음력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 군은 1만8천700명의 병력으로 부산진성을 함락한 뒤 곧바로 동래성으로 진군한다. 14일 오전 10시께 동래성에 도착한 왜군은 황령산 기슭과 동래성 서쪽, 남문 등에서 성을 에워싸고 진을 친다.

 

곧이어 하늘을 가르는 왜군의 조총소리와 함께 치열한 동래성 전투가 시작된다. 왜군들은 조총탄과 화살을 소나기 퍼붓듯 쏘아댔다. 우리 군사들도 활을 쏘며 결사 항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다. 

 

동래성을 중심으로 병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인다. 왜군의 신무기인 조총은 총신이 1m가량으로, 유효사거리 100~200m, 명중거리 50m였고, 분당 사격이 4발에 이르렀다. 이 조총을 3열로 나눠 교대로 쏘아댄 것이다. ‘무기요람’에 따르면 ‘숲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왜군의 조총성능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결국 현재 ‘인생문’ 자리 인근의 성벽이 허물어지면서 동래성은 적군의 수중에 넘어가고, 성 안의 동래성 사람들은 왜군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처참하게 살육 당하고 만다. 

 

‘총성이 울리고 그 검광은 백일을 무색하게 했으며, 적군 수만이 일시에 성중에 들어와 사람으로 메우다시피 했다.’

 

 - 임진동래유사 중 -

  

동래부 동헌은 동래부 관아의 주 건물로 동래 부사가 업무를 처리하던 장소다. 

▲동래부 동헌은 동래부 관아의 주 건물로 동래 부사가 업무를 처리하던 장소다. 

 

임진왜란 참상 기록,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동래 수안교차로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수안역 내에는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도시철도 역사 건설 중 출토된 동래성 전투의 흔적을 복원,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전투 당시의 동래읍성 해자(성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 혹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도랑)와 희생된 사람들의 인골, 다양한 무기류와 생활용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2005년 수안역 공사현장에서 임진왜란 동래성 전투 당시 해자의 일부가 발견된다. 이곳에서 110여 구의 인골이 쏟아져 나왔다. 성별은 10대 후반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칼에 베이고, 조총과 둔기에 두개골이 뚫리고 함몰된 상태였다. 

 

그중 왜군 조총에 살해된 5세 남짓한 아이의 인골도 나왔다. 끔찍하고 처절했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현장인 것이다.

 

전시 공간에는 동래읍성 축소 모형, 병사들의 갑옷, 큰칼, 창, 활, 화살 등 출토유물의 복제·복원품, 발굴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동래읍성 해자, 임진왜란 역사와 동래읍성 전투 상황을 그린 ‘동래부순절도’ 등 임진왜란 관련 유물과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에는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이 있다.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에는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이 있다.


동래부 관장하던 관아, 동래부 동헌


동래시장 부근의 ‘동래부 관아’로 간다. 관아의 주 건물인 동헌은 조선 시대 동래 도호부의 부사가 공무를 처리하던 장소로, 각종 관아 건물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1636년(인조 14년)에 동래부사 정양필이 창건했다. 

 

동래부 동헌은 관아 중앙에 충신당과 더불어 좌우의 동익랑, 서익랑, 동래부 동헌을 출입하던 대문이었던 망미루, 동헌 외삼문인 독진대아문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시가지 정비라는 명분으로 일제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고, 현존하고 있는 충신당은 동래군청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망미루’(부산시 유형문화재 제4호)와 ‘독진대아문’ (부산시 유형 문화재 제5호)은 당시 일본인 개인 소유였던 ‘금강공원’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현재 망미루와 독진대아문은 민족정기 회복과 문화재의 효율적인 보존을 위해 2014년 동래부 동헌 경내로 이전됐다.

 

동래부 동헌은 부산지역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 단일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면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헌 건물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관아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동래읍성 북장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래구 일대 모습. 

▲동래읍성 북장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래구 일대 모습.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송공단과 인생문


동래시장 뒤 송공단으로 발길을 돌린다. 송공단은 동래성 전투에서 장렬히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순국선열을 모신 곳이다. 원래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현재 동래경찰서 자리)에 있던 것을 1742년(영조 18년) 동래부사 김석일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송공단 자리는 당시 임금의 전패를 모신 객사의 누각인 정원루가 있던 곳이다. 동래성 전투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송상현 부사는 이곳에서 갑옷 위에 관복을 차려입고, 임금에게 4배를 드린 후 장렬히 순절한다. 매년 동래기영회에서 순절일인 음력 4월 15일 송공단에 배향을 드리고 있다. 

 

복천고분군을 뒤로 하고 ‘인생문’으로 오른다. 동래구 칠산동에서 명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인생문 고개’에 있는 문으로, 인생문을 통해 피신한 사람들은 모두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 상황을 그린 ‘동래부순절도’에 의하면 왜군이 이곳 부근의 성벽을 허물고 동래읍성으로 들이닥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복천박물관은 ‘복천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가야 시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복천박물관은 ‘복천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가야 시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동래읍성과 동래사적공원


인생문을 거쳐 북장대로 오른다. 시원한 바람이 소나무 숲을 한 차례 휘돌아 든다. 오솔길을 올라 마안산 정상에 있는 북장대에 선다. 북장대 전망대에서 동래시가지를 바라본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당시 동래읍성 주변을 내려다본다. 동래읍성은 동장대가 있는 동래고등학교 뒤쪽 망월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대와 현재 동래시가지를 아우르며 산성과 읍성의 특징을 두루 가진 ‘평산성’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동래구 명륜동·복천동·칠산동·안락동·명장동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후기까지 존속했다. 둘레가 약 3.6㎞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북장대에서 성벽을 따라 북문에 다다른다. 동래부순절도에 의하면 이 북문을 통해 경상좌병사 이각이 왜군과의 전투에서 혼비백산 줄행랑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각이 말을 타고 허둥대는 행색이나, 뒤따르는 휘하 병사들이 무기도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이 선명하다.

 

북문에서 보면 복천박물관과 동래읍성역사관, 장영실과학동산 등이 보인다. 현재 이 일대를 묶어 동래사적공원으로 지정, 시민들의 휴식문화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북문에서 내려오면 장영실과학동산이 맞이한다. 장영실의 발명품을 포함해 조선 시대 천문기기 복원품 18종 19점을 전시하고 있다. 천체관측기인 ‘혼천의’, 해시계인 ‘앙부일구’, 측우기 등은 시민과 학생들의 귀중한 과학교육 자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동래읍성역사관은 임진왜란 당시의 동래지역과 동래읍성의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유물과 동영상 등 다양한 전시물을 제공하고 있는 공간이다. 특히 조선 후기 동래읍성의 축소 모형은 옛 동래읍성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또한 동래성 전투 당시를 묘사한 ‘동래부순절도’ 속의 그림을 확대해 설명을 붙인 패널을 전시해 당시 전투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동래성 북문 오르는 길 입구에 있는 복천박물관은 가야 시대 무덤인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고분박물관이다. 4~5세기 가야 지배층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로 두 개의 상설전시장과 야외 전시장, 기획전시실,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작성자
최원준
작성일자
2018-06-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7월호 통권 141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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