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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수영성 좌수영 앞 5일장 열리던 곳 신선한 농·수산물과 먹을거리 가득한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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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경상좌수영(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다고 수영이라 안 부르나? 조선 시대에는 60살까지 군역을 했으니 경상도 남자들은 전부 이리로 안 몰리 들었겠나. 적게는 몇 천, 많게는 만 명이 훨씬 넘게 말이다. 그 많은 인간들을 먹일라면 우째야 되노? 군량미부터 반찬거리까지 난리도 아니었을 기야. 그라이까 장이 서도 큰 장이 섰단 말이제.

 

수영팔도시장

▲수영팔도시장.  

 

소설가 길남 씨는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기 좋아한다. 자라고 살아왔던 것에 더해서 그의 소설 원류 또한 부산이 깊게 관련됐기에 부산 탐방은 그의 본능적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거창하게 이름 붙여 ‘탐방’이란 말을 쓰지 여긴 뭐하는 곳이고, 여긴 뭐가 있고, 여긴 뭘 했던 곳인지 기웃거리며 ‘마실 댕기는’ 수준일 따름이다. 부산이란 곳이 도무지 희한한 곳이라 발걸음을 멈추고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얽힌 사연들이 한 보따리씩 쏟아져 감당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마음만 먹으면 드넓은 태평양과 언제든 연결되고, 뒤를 돌아보면 산들이 연달아 접해 있으며, 흐르는 강은 그런 바다와 산을 감싸고 도는 곳이 바로 부산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역사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나가고 들어옴’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임진왜란·일제강점기·6·25전쟁 등 굵직한 역사의 흔적만 더듬어도 그 특징은 금방 눈에 들어온다.    

 

그런 그가 ‘부산이야기’에 ‘전통시장 탐방기’를 쓴 지 어언 3개월. 기장시장·못골시장·중앙시장을 거치며 흘러나간 글들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이 길남 씨의 귀로 다시 흘러들어오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날 지인 몇몇이 모였다며 길남 씨에게 연락이 왔다. 지인들이 불러낸 곳은 다름 아닌 수영. 그리고 만나서 자리에 앉자마자 선배 한 분이 대뜸 던지는 말.

 

“니, 부산에 시장 쓴담서 수영팔도시장은 안 쓰고 뭐하고 있노?”

길남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 쓸라 캤으요.”

“점마는 말만 뻔지르르 하제. 니 수영이 와 수영인지는 아나?”

“아, 거참! 또 좌수영 얘기 할라는 거 누가 모르나? 쓸라 캤다~ 어방축제 안다꼬 알아!”

 

수영팔도시장은 조선 시대 수영성 남문터 좌수영 앞에서 5일장이 열렸던 곳이다.

▲ 수영팔도시장은 조선 시대 수영성 남문터 좌수영 앞에서 5일장이 열렸던 곳이다.  

 

수영은 왜 수영이 됐나? ‘수영학개론’

 

길남 씨가 성질을 내든 승질을 내든 간에 술자리는 ‘수영학개론’으로 한창 무르익는다.  

 

“여기가 경상좌수영(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다고 수영이라 안 부르나? 조선 시대에는 60살까지 군역을 했으니 경상도 남자들은 전부 이리로 안 몰리 들었겠나. 적게는 몇 천, 많게는 만 명이 훨씬 넘게 말이다. 그 많은 인간들을 먹일라면 우째야 되노? 군량미부터 반찬거리까지 난리도 아니었을 기야. 그라이까 장이 서도 큰 장이 섰단 말이제.”

 

“장만 섰겠나? 광안리에서 1년마다 하는 어방축제 있제? 그것도 좌수영하고 상관있다. 어방이라는 게 식량 조달한다고 군사하고 백성들이 다 같이 농사짓고 고기 잡고 했던 협동조합 비슷하거든. 많은 병력이 있어도 물자가 풍부해서 자급자족이 됐다는 얘기지. 하여간 이 동네가 살기는 좋았는가 봐.”  

 

“수영교차로 여기가 와 교차로가 돼 있나 말이다. 너거가 딱 봐도 쫘악 평지에 사방팔방 다 통한다 아이가? 인간의 모든 발달은 전쟁 연구에서 시작됐다. 그때 동래하고 부산포는 왜국하고 붙은 변방 중에 변방, 교역의 중심지! 여기는 특히 군사 요충지다 보니까 길도 크으게! 시장도 크으게! 그래서 요로코롬 맛있는 것도 다 갖다 모였다 이 말이지!”

 

선배가 소주를 탁 털어 넣고 방금 나온 고갈비 살을 냅다 입에 집어넣는데 길남 씨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만다. 

 

수영팔도시장은 가게마다 특유의 말풍선들이 시장을 찾은 고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 수영팔도시장은 가게마다 특유의 말풍선들이 시장을 찾은 고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온 시장

 

그렇다. 이곳 수영은 산과 들과 강과 바다를 모두 끼고 있는 곳으로 팔도와 중국, 일본 등 곳곳의 물자가 모여드는 풍요로운 공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육·해·공이 난무해서 술자리 2차를 어디로 가는지도 다툴 수밖에 없는 지역인 것이다.  

 

수영팔도시장은 이러한 시·공간적 배경을 밑에 깔고 수영사적공원(옛 좌수영 자리)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다. 1832년에 간행됐다는 ‘동래부읍지’에도 수영성 남문터 좌수영 앞에서 5일장이 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앞에서 떠들던 설들을 감안하면 이곳의 장은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시장의 유래와 공간성을 두고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수영팔도시장’이라는 시장의 고유명사 중 ‘팔도’를 가리킨다. 시장의 이름에 붙은 팔도는 조선 8도에서 온 것이 아니고 일제강점기 당시 재일교포이던 김팔도 씨가 상가건물을 세우면서 붙여진 이름이 ‘수영팔도시장’이란 설이다.  

 

이 시장처럼 팔도란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 없음에도 뭔가 살짝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실제 수영팔도시장과 주변 문화재를 묶어 ‘수영팔도문화마을’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이름의 유래로 인해 대표성이 떨어진다 하여 현재는 ‘수영성문화마을’이란 이름으로 문화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당신을 사랑하는 수영팔도시장입니다’

 

자, 이제 이런 저런 얘기들은 각설하고 시장 탐방에 나설 때다. 수영팔도시장의 특징은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활기가 넘친다는 점이다. 수영교차로의 번화가와 유명한 떡볶이거리는 항상 인파로 넘쳐나는데 길은 자연스레 수영팔도시장의 입구와 연결된다. 시장은 2014년부터 아케이드 지붕이 설치돼 우천이나 바람에도 영향 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입구의 말뚝이 간판을 지나면 깔끔한 시장 내부와 함께 가게 간판과 별도의 말풍선들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제일 먼저 빨간색 하트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수영팔도시장입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고 가게마다 특유의 말풍선들이 시장을 찾은 고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잘했어!’ ‘집에서 쉬어!’ ‘다음엔 잘하자!’ ‘야식 어때?’ ‘반갑데이’ ‘결혼하자’ ‘이해해보자’ ‘당신 힘! 보여줘’ 등 말풍선의 문구들은 고객들이 시장을 보며 곁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과 한 번씩 나눠봤음직한 친숙한 말들이다. 또 사방으로 트인 시장길이 만나는 곳에는 전광판이 시장을 안내하고 있다. 길남 씨는 전통시장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한결 보기가 좋았다. 

 

수영팔도시장은 이외에도 공영주차장과 화장실, 시장전용 카트를 마련해 두고 있으며 2017년 기준 111개의 점포와 노점 100개가 있는 대형 전통시장이다. 시장은 계속 현대화 사업을 거치고 있으며 2015년부터 야시장을 시즌제로 개장하고 있다. 작년에는 증강현실을 이용한 수영팔도시장 앱으로 이벤트를 진행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올봄에도 수영팔도시장 특유의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니 살짝 기대가 되기도 한다. 

 

 수영팔도시장 떡볶이거리는 항상 인파로 넘쳐난다.

▲ 수영팔도시장 떡볶이거리는 항상 인파로 넘쳐난다. 

 

직접 재배해 신선할 수 밖에 없는 채소와 과일

 

길남 씨는 시장을 거닐다 한 농산물 가게 앞에 선다. 신선함이 눈으로도 바로 확인되는데 3월의 제철 채소 봄동이 잔뜩 쌓여 있다. 봄동 겉절이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에 가격을 물어보니 하나도 아니고 세 개가 한 소쿠리에 담겨 가격이 단돈 1천 원이다. 눈물이 핑 도는 가격에 길남 씨가 더듬거리며 사장님께 묻는다. 

 

“와, 싸다. 싸. 이래 많은 게 다 나갑니까?”

 

팔도시장을 취재 왔다고 말하니 사장님이 웃으며 말한다. 

 

“많이 나가지예. 봄동은 요새 난리도 아이지. 우리 시장은 상인들이 과일하고 채소를 직접 재배한 데가 많습니더. 또 공판장에서 바로 갖고 오는 물건도 많아서 싸고 신선한 건 확실하지예.”

 

쪽파·깻잎·냉이·달래 등 가짓수가 하도 많아서 물어보니 봄철 야채 외에 농산물 종류가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수다. 그런데 사장님의 나이가 젊다. 

 

“나도 그렇고 부모님 대를 이어서 채소·과일 장사하는 가게가 많습니더.” 

 

봄동이 담긴 까만 봉다리를 들고 다시 길을 나선 길남 씨는 슬쩍 출출함을 느낀다. 여기도 전통시장의 특징 그대로 먹거리가 넘쳐난다. 다른 시장과의 차이는 어묵·족발·떡볶이·빈대떡·심심풀이 옛날과자 등의 먹거리 점포가 ‘대표먹거리’라고 따로 적혀 팔도시장만의 브랜드를 표시한다는 점이다. 그때 길남 씨는 골목으로 슬쩍 빠져 위치한 즉석 온두부 집을 발견한다. 왠지 내공이 그득할 것 같은 집이다. 아주머니께 따끈한 두부가 나오는 시간을 물어보니 철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대략 점심 무렵인 12시에 탱글하니 탄력 넘치는 두부가 나온다고 대답하신다. 

 

“콩을 갈고 불리고, 삶고 간수 넣고. 마, 겨울 같은 경우엔 갈고 불리는 시간이 24시간은 더 걸리지예.”

 

길남 씨는 ‘아따 마, 그 정성이 대단합니데이’ 라고 대답하려 했으나 입이 턱 막히고 만다. ‘함 무우 보소’ 하고 아주머니가 입에 넣어준 두부 때문이다. 막 나온 뜨끈한 두부는 김치 생각마저 나지 않을 정도로 구수하고 감칠맛이 돈다. 

 

수영팔도시장에는 1980~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 수영팔도시장에는 1980~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수영팔도시장 외곽의 중영거리 

 

수영팔도시장은 큰 메인거리 끝이 T자로 갈라지며 형성돼 있다. 길남 씨는 그중 수영사적공원 쪽으로 향한다. 싱싱한 해물과 축산물과 농산물, 그리고 값싸고 튼튼한 공산품, 그리고 먹거리의 향연이 끝날 때쯤 길남 씨는 지난 탐방기에서 언급했던 명태머리 전을 파는 노포를 만난다. 문득 오른쪽 거리를 살피니 시장의 규모가 훨씬 컸던 때의 흔적들이 진하게 발견된다. 

 

아케이드가 없어도 시장은 시장이다. 막걸리집, 찬거리 등의 노점과 채소, 생선 좌판이 이어지는 거리의 바닥 한 쪽에 ‘중영거리’라는 동판이 박혀 있다. 중영거리는 경상좌수영이 있을 당시 중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다. 시장 상인들도 옛날부터 중영거리라고 불렀단다. 길가로 음악을 틀어놓은 ‘선미 레코드’는 1980~90년대를 떠올리게 하고, 고풍스런 글씨체로 ‘고려 초재’란 낡은 간판이 걸린 약재상은 이곳의 역사성을 드러낸다. 또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가족사진이 전시된 ‘수영 사진관’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시장의 끝머리 길가에서 길남 씨는 눈가가 핑 젖는 느낌에 빠져든다. 유년과 청년의 추억들을 깡그리 부수고는 그 위에 우뚝 올라선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떠올라 왔기 때문이다. 마침 레코드점의 스피커에서는 신나는 트로트가 멈추고 동물원의 ‘혜화동’ 전주가 흘러나온다.

배길남 기사 입력 2018-04-02 부산이야기 4월호 통권 138호
자료출처 : 함께 나누고 싶은 '부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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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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