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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옛 물건·옛 맛·옛 추억 가득한 장터

길남 씨의 전통시장 탐방기 - 부산중앙시장·평화시장·자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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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곱창으로 유명한 함안집을 지나 동천에 있는 무지개 다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오래된 LP와 낡았지만 진귀한 보물들이 쌓인 골동품 가게들이 눈에 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동천에 있는 다리 앞이다. 시장 거리를 살펴보니 이제 다리 건너의 길은 시장이라기보다 먹자거리로 변모했다. 먹자거리를 지나자 작지만 사거리가 등장한다. 이곳을 정면으로 나서면 귀금속거리(골드테마거리)가 나오고 양편 길로는 좌판과 가게들이 펼쳐져 있다. 본격적인 시장의 시작이다. 

 

부산중앙시장 모습.

 

▲부산중앙시장 모습.

 

소설가 길남 씨는 요즘 무척 울적하다. 얼마 전 외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날 아침 그는 ‘상중(喪中)’ 글씨가 적힌 종이를 외가의 현관문에 붙이고 왔었다. 남구 문현동 방면 중앙시장 입구 부근에 위치한 그의 외가는 길가와 접한 작은 슬레이트 지붕의 집이다. 

 

50년 간 외가 6남매가 나고 자랐던 낡은 외가는 이제 주인을 잃은 채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외할머니와 어린 날의 추억들이 한데 서린 공간의 이미지는 며칠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그의 가슴을 때 없이 쿡쿡 찌르곤 했다.

 

무슨 시장이 그리 많아?

 

설을 지내고 난 어느 날 오후. 길남 씨는 아내와 아직 말도 채 떼지 못한 딸과 함께 외가 앞에 섰다. 그는 추억을 되짚어가며 중앙시장을 돌아다닐 생각이다. 골동품 가게가 즐비한 전포대로와 무지개 다리를 건너 중앙시장 일대를 돌아보고는 평화시장, 자유시장을 통과한다면 아주 만족스런 시장탐방이 될 것이다. 이 부근을 잘 모르는 이들은 ‘가까운데 있으면서 무슨 시장 이름이 그리 많아?’라고 묻겠지만 말 그대로 시장이 많은 걸 어떡하겠는가? 

 

굳이 정리하자면 ‘조방 앞’ 부근의 두 전문도매시장이 ‘자유시장’ ‘평화시장’ 되겠다. 시장의 위치와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관통하는 시대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 옛날 동구 범일동과 부산진구 범천동 일대에 거대하게 자리했던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약칭만 남아있는 조방 앞거리에서 펼쳐졌던 5일장과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이룬 난전이 이 시장들의 근원이었다. 

 

두 시장은 상가건물을 올리고 1969년 허가를 받아 지금의 전문도매시장 형태가 됐다. 자유시장은 신발·의류·꽃을 전문으로 평화시장은 의류도매를 전문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평화도매시장과 자유도매시장은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약칭만 남아있는 조방 앞거리에서 펼쳐졌던 5일장과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이룬 난전이 근원이었다. 두 시장은 상가건물을 올리고 1969년 허가를 받아 지금의 전문도매시장 형태가 됐다. 

▲ 평화도매시장과 자유도매시장은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약칭만 남아있는 조방 앞거리에서 펼쳐졌던 5일장과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이룬 난전이 근원이었다. 두 시장은 상가건물을 올리고 1969년 허가를 받아 지금의 전문도매시장 형태가 됐다. 

 

동천과 무지개 다리

 

이랬거나 저랬거나 오늘 본격적으로 돌아다닐 곳은 ‘무지개 다리’ 부근의 중앙시장이다. 외가 앞에서 살짝 무거워진 발을 떼는데 철모르는 딸이 손을 잡고 “아빠, 저기, 저기” 하며 앞장선다. 닭곱창으로 유명한 함안집을 지나 동천에 있는 무지개 다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오래된 LP와 낡았지만 진귀한 보물들이 쌓인 골동품 가게들이 눈에 띈다. 아직 흘러간 세월을 붙잡고 있는 듯한 거리는 ‘칼국수+김밥 4000원’과 같은 문구들이 적힌 손칼국수집과 함께 옛 추억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동천에 있는 다리 앞이다. 지금의 동천은 정화사업 덕분에 많이 깨끗해 졌지만 길남 씨가 어릴 때만 해도 악취가 심하기로 유명했다.  

 

길남 씨는 이 부근과 중앙시장을 배경으로 한 ‘썩은 다리, 세 번의 눈물’이란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주인공 소년이 중앙시장 안에 있던 청과물 시장의 옥상마을에 살다 기찻길이 있던 범8동으로 이사 간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곳의 냄새는 소설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옷집들을 지나고 잡화 가게들과 대폿집 몇 개를 지나자 동천을 가로지르는 썩은 다리가 나타났다. 강가에 오자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그때 코에 밀려들던 냄새를 난 잊지 못한다. 밑으로 흐르는 썩은 물의 냄새와 다리 양편으로 늘어서있는 비릿한 생선 좌판의 냄새와 그 옆의 좌판에서 팔던 싸구려 명태 대가리 찌짐의 냄새, 바다 쪽에서 흘러오는 묘한 술 냄새 등이 뒤엉킨 좁은 다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오가고 있었다.’ 

- 소설 ‘썩은 다리, 세 번의 눈물’ 中에서 

 

‘부산진중앙시장’ 낱개의 돌에 한자씩 새겨 벽에 붙인 낡은 표지석과 함께 ‘중앙시장청과부’란 간판이 아직도 선명하다. 

▲ ‘부산진중앙시장’ 낱개의 돌에 한자씩 새겨 벽에 붙인 낡은 표지석과 함께 ‘중앙시장청과부’란 간판이 아직도 선명하다. 

 

맛집 가득한 중앙시장 먹자 거리

길남 씨는 옛 냄새를 떠올리며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의 ‘명태갈비찌짐’집을 살펴본다. 원래 ‘명태대가리전’은 테이블에 접시도 없이 신문지 위에 깔아주며 500원, 1천원에 팔던 저렴한 안주였다. 이 요리는 지금도 부전시장, 거제리시장, 수영팔도시장, 양정시장 등등 부산 곳곳의 막걸리집에서 팔고 있는 독특한 전이다.   

 

시장 거리를 살펴보니 이제 다리 건너의 길은 시장이라기보다 먹자거리로 변모했다. 횟집, 고깃집, 장어구이집, 꼼장어집, 곱창집, 족발집…. 맛집과 노포(老鋪)주점이 그득한 그곳으로 들어가려다 길남 씨는 문득 명태찌짐집 맞은편에 위치한 일식집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만수스시’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이 일대를 대표하는 일식집이 된 이곳은 한 방송에서 ‘신 일식 4대문파’로 소개된 박만수 셰프와 그 제자 전병찬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길남 씨는 두 사람과 인연이 있어 대한민국 일식요리 1세대(일제강점기)에서 4세대(현재)로 이어지는 부산일식요리사(釜山日食料理史)를 소설로 기획했던 적이 있다. 일식요리가 천대받던 젊은 시절, 선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직업을 밝히지 못했다는 박 셰프의 회상은 한 장인이 겪은 애환과 함께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현재 박 셰프는 지병으로 인해 칼을 놓은 상태다. 

 

지금까지 잘 걷던 딸이 어부바와 목마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딸은 이미 목에 올라타 길남 씨의 머리칼을 붙잡고 있다. 벌써부터 허리가 찌뿌둥하다. 

 

부산중앙시장으로 들어서면 각종 채소와 활어를 파는 좌판, 칠기상, 건어물, 식육점, 반찬가게, 한약국 등 다양한 종목의 가게들이 등장한다. 

▲ 부산중앙시장으로 들어서면 각종 채소와 활어를 파는 좌판, 칠기상, 건어물, 식육점, 반찬가게, 한약국 등 다양한 종목의 가게들이 등장한다. 

 

중앙시장 ‘순대’ 옛날 맛 그대로

 

먹자거리를 지나자 작지만 사거리가 등장한다. 이곳을 정면으로 나서면 귀금속거리(골드테마거리)가 나오고 양편 길로는 좌판과 가게들이 펼쳐져 있다. 본격적인 시장의 시작이다. 한때 이곳은 좌판으로 멍게·개불·해삼 등의 해물과 술을 팔던 곳으로 유명했다. 근처 ‘영심이 해물’ ‘멍게랑 해삼이랑’ 등의 해물주점이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제 시장의 본격적인 좌판과 상가가 시작되는데 각종 채소와 활어를 파는 좌판, 칠기상, 건어물, 식육점, 반찬가게, 한약국 등 다양한 종목의 가게들이 등장한다. 특히 즉석 김치, 즉석 튀김, 즉석 수제 빵, 즉석 김밥 등의 ‘즉석’을 강조한 상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게 특이하다.      

 

여러 음식점을 거치다 보니 배가 출출하다. 길남 씨는 ‘할매순대’가 있는 작은 골목을 목표로 삼는다. 이제 ‘소문난 할매순대’란 이름으로 바뀐 순대 좌판은 여러 사람들이 추억의 맛으로 들르곤 하는 중앙시장의 숨은 명물이다. 길남 씨는 가족과 함께 시장과 연결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노란 장판지로 두른 나무의자에 앉는다. 물에 삶은 순대가 알맞게 썰어져 부산식 막장과 함께 세팅된다. 딸아이 손에 하나 쥐여주고 순대를 입에 넣자 그 옛날 엄마를 기다리며 먹던 그 맛이 재현된다. 그는 어린 딸과 함께 과거로 직통하는 타임머신을 탄 느낌이다. 이제 타임머신에서 내려 현재로 돌아올 때다. 천막이 쳐진 시장 골목을 나오면 신협이 있는 사거리가 나오는데 웅장한 주상복합 건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곳은 원래 청과물 시장 등이 있던 자리로 이제는 사라져버린 옥상마을이 있던 곳이다. 그렇다면 이제 영원히 옥상마을을 볼 수 없을까? 답을 먼저 말하자면 아니다. 그 유명한 옥상마을의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아직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길남 씨는 그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일단 옥상마을은 접고 시장을 따라 버스가 다니는 중앙대로 쪽으로 향해보자. 

 

옛날 워낙 큰 규모였던 청과물 시장은 아직 그 흔적을 많이 남기고 있다. 곳곳에 과일 좌판이 있고 김밥, 돼지국밥, 통닭집, 떡집 등 간편한 먹거리 식당들과 채소·부식집, 식육점들이 중형 브랜드 마트와 뒤섞여 시장의 활기를 유지한다. 시장의 끝 부분에는 난데없는 떡볶이 대전이 벌어지는데 할매 떡볶이 두 집이 함께 경합을 한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바로 조방 앞이 아니던가? 전국적 명성을 자랑하는 ‘조방 매운떡볶이’를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길남 씨는 ‘조방매떡’의 간판을 보자마자 침이 고이는 걸 느낀다. 이건 절대 맛있어서가 아니라 혀가 빠지도록 매운 그 고통이 떠올라서이다. 

 

부산중앙시장 중고제품 가게와 옷 가게 풍경. 

▲부산중앙시장 중고제품 가게와 옷 가게 풍경. 

 

전국적 명성 자랑하는 ‘조방 낙지·매운떡볶이’ 

 

이제 이곳까지 왔으니 비밀을 털어놓을 때이다. 길남 씨는 조방매떡을 지나 몇 걸음 옮겨본다. 유명한 족발집과 아구찜 가게가 있지만 그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한 낡은 건물 앞에 선다. 

 

‘부산진중앙시장’ 낱개의 돌에 한자씩 새겨 벽에 붙인 낡은 표지석과 함께 ‘중앙시장청과부’란 간판이 아직도 선명하다. 바로 이 역사적 건물의 꼭대기 층에 비밀의 옥상마을이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길남 씨는 딸에게 “저기가 옥상마을이야”라고 속삭이고는 올라가 보지는 않는다.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이 신기한 눈요깃거리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지쳤는지 길바닥에 드러누우려던 딸이 별안간 떡꼬치를 외치기 시작한다. 길남 씨도 슬쩍 지치긴 마찬가지다. 배가 고프다. 그 유명한 조방낙지를 먹고 싶다. 왜 딸래미는 낙지볶음을 외치지 않고 떡꼬치만 외치는 것일까? 

 

“야는 떡 먹이고, 오빠는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고 가면 되겠네.” 

 

그의 아내가 소주 한 병을 허락한다. 길남 씨의 눈이 번쩍 뜨인다. 아직 추운 날씨에 뜨끈한 어묵 국물과 소주 한 잔 마실 생각을 하니 무척 유쾌해지는 그다. 다 필요 없다. 이제 목표는 오직 떡꼬치이다. 딸을 목마 태운 길남 씨는 귀금속거리를 음속으로 지나친다. 어둑해진 하늘이지만 포장마차가 즐비한 자유시장·평화시장 앞은 낮보다 훨씬 더 훤한 느낌이다. 

 

포장마차로 들어가던 길남 씨가 문득 멈춰 서서 동천 쪽을 바라본다. 이제 주인이 없어진 외가가 갑자기 떠올라서이다. 

 

“아빠, 빨리 앉아.”

 

딸의 재촉 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무슨 말을 저리 잘하지? 그는 몇 번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다. 뜨끈한 게 잠시 스쳤지만 그는 눈가를 쓱 훔치며 곧바로 포장마차로 들어선다. 

 

“아이씨, 눈에 뭐가 들어갔나? 와 이라노?”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배길남 기사 입력 2018-03-02 부산이야기 3월호 통권 137호
자료출처 : 함께 나누고 싶은 '부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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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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