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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7년 1월호 통권 123호 부산이야기호 기획연재

30년 담금질 … 장쾌한 북소리 천지간을 울리다

Busan People / Great! 부산 / 배현열 수영지신밟기 예능보유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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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온다 나리온다 지신지신이 나리온다

지신명당은 조명당 성주명당은 남향당

하늘이 생겨 갑자년 땅이 생겼다 을축년

갑자을축이 합하니 이집 성주가 생겼구나

성주본이 어디메요 성주근본이 어디메요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가 본이로다

 

 

정초 가정의례가 마무리되어갈 즈음이면 풍물패를 앞세운 걸궁패들이 마을 집집마다를 돌면서 지신밟기를 해왔다. 잡은 꿩 두어 마리를 골망태에 매달아 등에 진 포수가 붉은 코에 굵은 테 안경을 걸치고 나무총을 들고 동네 길바닥을 훑고 다니다가 어느 집 부뚜막에서 주걱을 훔쳐 나와 주인과 흥정을 벌이는 풍경은 어린 눈에도 신나는 볼거리였다. 그래서 지신밟기 내내 풍물패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수영지신밟기, 마을 안녕 기원하는 의례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이 있었던 수영은 수영강 하류에 있어서 농사와 더불어 어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역사 깊은 고장으로 옛 세시풍습이 잘 보전돼 오는 곳이다. 더불어 탈놀음(假面劇)을 놀 때 경비를 추렴하기 위해서 정초부터 지신밟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수영지신밟기는 250여년이 넘게 보존·전승돼 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흔히들 걸립·걸궁·고사반·고사풀이·마당밟기·주살맥이·매구·매귀 등으로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불려 오고 있는 지신밟기는 한때 마을마다 정초에 행하던 마을의례였다. 집집마다 고사상을 차려놓고 지신의 내력을 읊어 잡신을 쫓고 복을 비는 내용의 축원덕담을 노래로 엮는 의례였다. 꽹과리, 북, 장구, 태평소 등의 악기를 앞세우고 소고패와 양반, 각시, 포수, 머슴 등의 배역(잡색)이 뒤따라 마을사람들 각각의 집을 방문해 고사소리를 하고 춤과 익살로 놀이판을 벌여 그 집의 복을 빌어주고 마을의 안녕을 축원해 왔다. 현대에 이르러 전통마을들이 퇴화하면서 지신밟기도 그 온전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부산에서도 기장군과 강서구 등지에서 부분적으로 겨우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부산시는 동래와 수영에서 예부터 전래돼 오는 지신밟기를 복원해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으며, 구덕민속보존회와 함께 고분도리마을(서대신동)의 건립굿도 지정 전승·보존하고 있다.

 

장쾌한 북소리 울리는 놀이마당

수영지신밟기(부산시 무형문화재 제22호)의 젊은 예능보유자 북잽이 배현열(52) 씨를 수영민속보존회에서 만났다. 수영지신밟기뿐만 아니라 수영야류의 말뚝이 역을 연희하는 등 전통연희에 두루 통하는 배현열 씨가 북채를 잡으면 북소리에 힘이 있고 그 소리에 신명이 넘쳐난다.

상쇠와 북잽이 등 악사 30명과 잡색 20여 명으로 구성된 한 떼의 굿패가 ‘수영지신밟기’라 내리 쓴 깃발을 앞세우고 송씨할매 당산과 무민사(최영 장군의 사당) 그리고 먼물샘(마을의 식수원이 되는 우물) 지신풀이를 하고 마당밟기를 시작한다.

성주 기둥 앞에 쌀을 가득담은 대주(집주인) 밥그릇에 촛불 켜 꽂고 정화수 한 그릇도 올려 놓았다. 성주풀이가 수영 특유의 늦은 메나리조(경상도·강원도·함경도 지방의 민요와 무가에 사용되는 음계) 가락으로 시작해 빠른 장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왕(부엌)­─장독­─곡간─­정낭(변소)─삽짝(대문)풀이까지 끝나면 주인이 내놓은 술상 앞에 모두 둘러앉아 목을 축인다. 즐겁게 흥이 오른 풍물꾼들이 제각기 장기자랑을 풀어놓으면, 질세라 북잽이들이 큰 북을 어깨에 걸치고 덩실덩실 놀이마당 한복판에 진을 펼친다. 이때쯤이면 배 씨의 북채가 신들린 듯 북 위에서 뛰어논다. 빠른 굿거리장단에 북이 울고 몸을 솟구쳐 대지를 힘차게 밟는다. 누군가 북소리를 ‘하늘이 울리는 소리, 천명(天鳴)’이라고 했던가. 장엄 장쾌한 북소리가 흐르는 강물처럼 되치고 메치면서 도도한 물결을 이뤄 놀이마당에 울려 퍼진다. 덩! 울려놓고 데구루루 굴러 떨어지는 장단을 피해가듯 사뿐히 튀어 올라 북통을 탁! 탁! 치며 앞으로 뛴다. 배 씨는 북을 치면서 춤을 춘다. 말뚝이 춤사위와 허튼 춤사위가 좌중을 압도한다. 땀이 비 오듯 흐르면서도 신명으로 희열에 들떠 고된 줄을 모른다. 북소리를 구하는 이 절실한 태도가 저절로 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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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지신밟기는 정초에 집집마다 고사상을 차려놓고 지신의 내력을 읊어 잡신을 쫓고 복을 비는 내용의 축원덕담을 노래로 엮는 의례였다.


대학시절 풍물에 빠져 전통예술연구회 입회

배 씨는 경남 김해군 가락면 상덕리(지금의 강서구 강동동)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 낙동강하류 하중도에서 자라지만 중학교 때 부산으로 유학해 금성중학교를 졸업한다. 동구 좌천동에 방을 얻어 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84년 부산대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진학한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보일 캉캉춤을 연습하기 위해 학교 뒷산 숲속에 들어갔다가 대학동아리 ‘전통예술연구회’ 회원들이 풍물연습 하는 것을 보고 반해 캉캉춤 연습을 제쳐두고 넋을 잃고 구경 한 것이 인연이 돼 친구와 함께 ‘전통예술연구회’에 들어간다. 부산대 전통예술연구회 16기인 셈이다. 매일 수업 후 오후 4시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선배와 함께 장구치고 북치고 춤추며 재미있게 놀았다. 연습 끝난 후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꿀맛이었다. 우리 춤이 너무 재밌고, 가락이 신명나서 좋았다. 이걸 제대로 배워서 멋지게 공연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가슴속 깊이에서 용솟음쳤다.춤보다 악기연주가 더 흥미롭고 재밌었다. 장구부터 시작해 북으로, 2학년 때는 꽹과리를 쳤다. 대학동아리 전통예술연구회는 풍물 익히기는 기본이고 수영야류 한바탕을 익혀야 했다. 양반과장부터 사자무까지 전 과장을 꿰다시피 익혀야 했다. 매년 3월 신입생환영회 때는 수영야류 전 과장을 연희해 갈채를 받았다. 

 

1997년 수영민속예술보존회 정식 회원 등록

배 씨는 수영야류 이수자이기도 하다. 야류의 그 많은 배역 중 말뚝이 역이 좋았다. 호방 호탕한 춤도 그러려니와 무엇보다 허구 투성이 양반을 놀려대는 대사가 좋았다. 대학시절 12월이면 수영민속보존회에 와서 예능보유자 어른들에게 배우는 수영야류 한마당은 그의 꿈을 실현시키는 촉매제가 됐고, 이를 계기로 여름방학 때는 전국의 민속들을 찾아 소리와 춤을 배우며 대학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 전통예술 가꾸기에 큰 바탕이 됐다.대학 3학년 때 이 길로 가서 문화운동에 앞장서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학업은 뒷전이 돼 수업을 빼먹는 일이 잦아졌고, 시험 때가 되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게 됐다. 성적은 떨어지고 급기야 학사경고를 세 번 받기에 이르렀고 제적까지 당한다. 그러나 학교 동아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1988년 제대 후 연극패 ‘놀이패 일터’ 일원이 됐다. ‘놀이패 일터’는 마당극패로서 현장노동자를 위한 문화운동을 펼치고 있어서 그동안 배워왔던 전통예술의 일부분을 펼치기에 적절한 직업이었다.

그러던 그는 1997년 9월 수영민속예술보존회에 정식 회원이 된다. 선배인 이상렬 씨와 함께였다. 수영야류를 비롯해 좌수영어방놀이·수영농청놀이 등을 골고루 배웠다. 언제 어떤 역할을 맡게 돼도 자신 있게 소화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익혔다. 그러다 2000년 3월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 초대되면서 처음 말뚝이 역을 맡게 됐다. 보존회 어른들로부터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다 여태껏 말뚝이 역을 하던 회원이 보존회를 떠나면서 자연스레 말뚝이 역 담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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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지신밟기 예능보유자 배현열 씨는 대학시절 풍물에 빠진 것을 계기로 전통예술을 시작, 수영지신밟기 예능보유자가 됐다.


 

우리문화 사랑·열정 특별하고 남달라

배 씨의 우리문화 사랑은 특별하다. 서구의 소리와 춤 등 현대 서양문화보다 여유롭고 따뜻하면서 꾸밈없는 우리문화가 더 좋았다. 팝송, 디스코보다 국악 작곡가 김영동 씨가 작곡한 노래가 좋고 우리 선율과 박자가 있는 음악이 더 친근하고 좋았다. 하숙비가 3만 원일 때 김덕수사물놀이 공연본다고 입장료 1만 원을 써도 아깝지 않았다. 주거지를 수영으로 옮긴 후 보존회에 드나들 때마다 혼자 걷는 수영성 오솔길도 좋아했다. 야트막한 돌계단을 올라 곰솔 앞으로, 다시 성터 오솔길따라 보존회전수관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길이 참 좋았다. 2000년 그가 심혈을 기울여 직접 지도하는 큰샘민속예술원은 매년 발표회를 가지면서 풍물과 탈춤, 민요를 전승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배 씨는 1991년 부산동별풍물경연대회에서 만났던 해운대달맞이 민속농악단 유달용 선생의 연희를 감명 깊게 보고, 집으로 찾아가 선생의 진수를 터득한다. 그러나 배 씨의 수영민속을 비롯한 민속에로의 열정에 불을 붙여준 스승은 보존회의 도태일 선생과 김태롱 선생이다. 도태일 선생으로부터 소리와 꽹과리를 익히고 김태롱 선생에게서 장구를 익혔다. 이들 스승으로부터 수영민속의 특징을 오롯이 전수받았다. 투박하면서도 결코 질리지 않는 덧배기장단은 수영지신밟기의 마당밟기와 대동풀이에서 덧배기 춤사위를 이끌어 내는 느린 가락이지만, 버꾸춤, 북춤에 이르면 변화를 줘 장단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수북 배현열 씨의 북장단은 이러한 수영 특유의 계보 속에서 이어져 왔기에 부산의 민속계에서는 이를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작성자
주경업
작성일자
2017-01-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7년 1월호 통권 123호 부산이야기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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