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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6년 11월호 통권 121호 부산이야기호 기획연재

신과 인간의 대서사시 … 서양문명의 고향 그리스를 걷다

Culture & Life / 세계테마여행 / 그리스

내용


 

그리스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나라다. 신화·철학·역사·건축·수학·연극·의학·민주주의 등 우리가 이른바 ‘문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출발에 ‘그리스’라는 이름을 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신들의 왕 제우스, 서양철학의 출발 소크라테스, 세계 최초의 역사가 헤로도토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기하학의 출발 유클리드, 서양건축의 원형 파르테논 신전, 서양문학의 출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민주주의 요람 아고라 광장, 세계 최초의 극장 디오니소스 극장 등.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리스를 잘 모른다. 우리에게 그리스의 이미지는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산토리니의 동화적 풍경’, ‘영화 300의 전사들’, 그리고 최근 뉴스를 장식했던 ‘경제위기에 항의하는 시위대’ 정도다. 그리스는 오늘도 여전히 ‘신화의 땅’이다. 

같은 시대 이집트, 페르시아, 중국의 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폴리스(Polis)들의 동맹에 불과했으며, 발칸반도 최남단에 위치해 국토의 75%가 척박한 산악지대와 섬으로 둘러싸인 그리스는 어떻게 서양문명의 고향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제 그리스를 함께 걸으며 그 실마리를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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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아크로 폴리스, 파레테논 신전

  

 

과 인간의 도시, 아테네

아테네는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자 그리스 여행의 출발지다. 아테네라는 도시의 이름은 여신 ‘아테나(Athena)’에서 유래한다. 그리스 도시들은 저마다 수호신을 가지고 있다.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기 위해 전쟁과 지혜의 신인 ‘아테나’와 바다와 자연의 신인 ‘포세이돈’이 경쟁을 벌였다. 인간에게 더 유용한 선물을 주는 자가 도시의 수호신이 되기로 했는데 평화와 풍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를 선물한 아테나가 말과 샘을 선물한 포세이돈을 이겨 도시의 이름이 ‘아테네’로 불리게 됐다. 

아테네 시내에 들어서면 단번에 시선을 압도하는 곳이 있다. 도시 어느 곳에서 보아도 그 웅장함을 잃지 않는 아테네의 상징, 아크로폴리스(Acropolis)다. 해발고도 150m의 석회암지대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 문명을 상징하는 신성한 공간이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뜻하는 아크로폴리스는 모든 도시에 있지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특별한 것은 바로 서양건축사 최고 성과로 불리는 파르테논 신전과 작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니케 신전, 에레크테이온 신전 등이 만들어내는 종교적, 문명적 상징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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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고도 150m의 석회암지대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 문명을 상징하는 신성한 공간이다(사진은 리키비토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테네 야경).

 

 

아테네 정치·행정·경제 중심 ‘아고라’

아크로폴리스는 원래 적들이 침입했을 때 시민들이 피신하는 군사적 기능과 제의 혹은 축제를 진행하는 종교적 기능을 담당했던 곳이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페르시아 전쟁의 승자가 된 아테네는 델로스동맹의 맹주가 됐고, 그리스를 이끄는 제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끈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49년 전쟁으로 페허가 된 아크로폴리스를 재건하기로 하고, 그리스 전역에서 최고의 건축가를 모아 신전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 신전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15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에게 바쳐졌고, 이곳은 아테네의 영광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공간이 됐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와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넘어 천천히 걸어오면 아테네인들의 삶의 현장, 아고라에 이르게 된다. 아크로폴리스가 신들의 공간이라면 아고라(Agora)는 인간의 공간이다. 아고라는 아테네인들의 정치, 행정, 경제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열린 민회에서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그 옆 시장에는 시끌벅적한 장터가 열렸다. 그 사이 소크라테스는 회랑에 앉아 사람들에게 ‘탁월한 삶이 무엇인가?’를 놓고 사람들과 열띤 대화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철학이 싹튼 곳이 바로 아고라다.

아테네의 유적들은 대부분 건설된 지 2천500년이 넘은 곳이다. 몇몇 건물과 기둥, 그리고 돌무더기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그 전모를 파악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꼭 가보아야 할 곳이 있는데 바로 ‘국립 고고학 박물관(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이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 아프로디테와 판 등 선사시대부터 헬레니즘시대까지 그리스문명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소장품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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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에서 중서부쪽으로 4시간 정도 떨어진 델피는 영험한 신탁소가 있었던 곳이다(사진은 델피의 아폴론 신전).

 

 

아폴론의 성지, 영엄한 신탁소 ‘델피’  

그리스를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아테네를 출발해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고, 그들의 미래를 신에게 물었던 영험한 신탁소가 있었던 곳, 델피를 향해 간다. 델피로 가기 위해서는 아테네에서 중서부쪽으로 4시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아테네를 벗어나자 그리스의 맨살이 드러난다. 왜 그리스가 통합된 거대 국가가 아니라 도시국가로 존속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스의 산들은 척박하다. 바위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조금씩 드러난 들판에는 올리브 나무만 가득 펼쳐져 있다. 고대 제국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스는 농경사회를 이룰만한 비옥한 토지도, 제국을 지탱할만한 잉여생산물도 없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거친 땅을 일구고, 험난한 바다로 나가야 했다. 그리스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도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닥친 거친 운명을 이겨낼 인간정신이었으며, 그 정신을 구현할 운명공동체였는지 모른다. 그 보편적인 인간정신에 대한 탐구가 그리스문명의 뿌리가 됐으며, 공동체에 대한 자각이 아고라에서 꽃 피운 것은 아닐까?

 

고대 유물 가득한 델피 고고학박물관

그리스 사람들은 왜 델피를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했을까? 여기도 신화가 등장한다. 제우스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동쪽과 서쪽으로 날렸다. 그 독수리가 만난 곳이 바로 델피다. 고대 그리스사람들은 델피가 자리 잡은 파르나소스 산을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믿었다. 델피의 신탁소, 아폴론 신전은 가파른 두 개의 절벽 아래 위치하고 있는데 서쪽 절벽은 장밋빛 바위라는 뜻의 ‘로디니’, 동쪽 절벽은 불타는 바위라는 뜻의 ‘플레부코스’라고 한다.

두 절벽 아래 위치한 델피의 중심, 아폴론 신전 앞에 서자 영험한 기운이 감돈다. 아폴론의 신탁의 이루어졌던 신전의 두 기둥에는 ‘너 자신을 알라’, ‘아무것도 지나치지 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두 문구를 생각해보면 그리스인들에게 신탁은 신의 명령이 아니라 신의 조언이었는지 모른다. 절대자인 신에게 인간의 운명을 송두리째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조언을 통해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고난 속에서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갈 힘을 얻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이곳에도 매우 중요한 박물관이 있다. 바로 델피 고고학 박물관(Delphi Archaeological Museum)이다. 낙소스의 스핑크스, 클레오비스와 비토 조각상, 전차를 모는 사람, 세상의 중심을 표시했던 옴파로스 등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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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게 해 남부의 화산섬 산토리니는 석양이 아름다운 휴양지다. 산토리니에서 바라 본 에게 해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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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리니 전경.

 

 

어머니의 품 지중해, 산토리니

그리스의 마지막 여정으로 에게 해 남부의 화산섬, 산토리니를 향한다. 산토리니에 그리스 문명을 이해할만한 유적은 없다. 알려진대로 산토리니는 석양이 아름다운 휴양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토리니를 그리스의 마지막 여행지로 삼은 것은 그리스인에게 바다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만 그리스를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산토리니의 끝, 이아(Oia)에서 눈부시게 푸른 에게 해를 바라본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존을 위해 고난을 무릅쓰고 항해했던 그 바다다. 석양이 지고 넘어가는 태양의 빛으로 바다가 일렁인다.  

그리스인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어머니의 품이다.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그리스인들은 생존을 위해 지중해 바다로 나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그리스인들의 식민도시가 건설됐다. 바다가 보이는 가장 좋은 곳에 원형 극장과 신전을 지었다.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와 타오르미나가 대표적인 그리스 식민도시들 중 하나다. 이 식민도시를 통해서 그리스 문명은 지중해 전역에 전파됐고, 마침내 로마제국을 통해 서양문명을 꽃피우게 된다.

아테네의 국회의사당이 있는 신타그마 광장에 가면 ‘무명용사비’가 있다. 그곳에는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영웅에게는 세상 어디라도 그들의 무덤이 될 수 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그리스의 영웅들이 숨진 곳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KOREA’라는 글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1950년 12월 9일, 그리스 군인들이 부산항에 입항했다. 그리스는 6·25전쟁 기간 중에 4천992명의 군인이 참전했으며, 이중 192명이 전사했고, 543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리스 정부는 1961년 전몰장병을 추모하며 그리스 기념비를 세웠고, 그 기념비는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 있다. 

신들에게서 인간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탁월한 인간을 향한 대서사시를 써내려간 그리스인들을 만나는 긴 여정은 ‘그리스 기념비’에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작성자
글 · 사진 김도근
작성일자
2016-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6년 11월호 통권 121호 부산이야기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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