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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6년 11월호 통권 121호 부산이야기호 기획연재

왕년의 명 디제이, 오빠가 돌아왔다!

프로듀서로 30여년 디제이로도 맹활약 … 은퇴 3년 만에 다시 무대로
음악·영상·선곡·진행까지 … 새로운 7080문화 만드는 데 기여할 것

내용

 

오빠가 돌아왔다.

 

음악감상실의 좁은 디제이 박스 안에서, 밤 깊은 심야 라디오방송의 마이크 앞에서, 손바닥 크기의 엽서에 빼곡하게 적힌 수줍은 사연을 읽어주며 붉은 장미꽃보다 더 붉은 설렘으로 사춘기 여고생들의 심장을 찌르던 낮고 부드러운 음성의 디제이 오빠. 7080세대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던 ‘허리케인 박’ 디제이 도병찬 씨(67·사진)가 오랜 공백을 뛰어넘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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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회관 ‘도병찬의 뮤직파일’ 진행

도 씨는 부산 방송가에서 이름을 날리던 인기 디제이였다. 부산KBS 라디오 디제이로 1980∼90년대에 맹활약을 펼쳤던 그가 은퇴 후 5년 만에 ‘DJ 오빠’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부산 방송가와 음악가를 주름 잡던 그의 복귀무대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지금은 사라진 음악감상실도 아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낮고 부드러운 바리톤 음색을 자랑하는 그가 전매특허였던 지적이고 담백한 진행을 다시 선보인 무대는 부산시민회관이다. 지난 4월부터 부산시민회관이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음악감상프로그램인 ‘추억의 영상음악회-도병찬의 뮤직파일’ 진행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30년 동안 정통 디제이로 맹활약하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그다. 그의 등장과 음악감상회라는 낡은 문화형식의 재등장은 단순한 복고를 넘어 새로운 중장년문화를 이끌 가능성의 시작으로 읽힌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디제이 오빠’로 우리 앞에 나타난 도병찬 씨를 만났다.

“방송국에서 정년퇴임하고 한동안 프리랜서 디제이로 활동했었지요. 한 3년 정도 했나?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활동을 완전히 접었다가, 부산시민회관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서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정년퇴임이라니? 디제이도 정년퇴임이라는 게 있었나? 순간 의아할 것이다. 그 의아함은 많은 이들이 그를 라디오 디제이로 기억하고 있는 탓이지만, 사실 그의 본업은 방송국 프로듀서였다. 그가 몸을 담았고, 정년퇴임을 한 곳은 KBS부산방송총국.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30여년 근무한 후 지난 2007년 12월 정년퇴임했다. ‘영사운드’(한국FM), ‘도병찬의 뮤직파일’, ‘왕종근의 오픈스튜디오’, ‘즐거운 저녁길’이 그가 진행했거나 프로듀서를 맡았던 프로그램이다. 1997년 한국방송대상 지역 라디오 부문을 수상하는 등 방송가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한국FM방송·대구KBS 거쳐 부산KBS 정착

 

프로듀서였던 그가 라디오 진행자를 겸했다는 것인데, 요즘은 프로듀서가 진행까지 맡는 경우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그가 활동하던 1980∼90년대에는 드물지 않았다. 그 시절 부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십대 후반 장년층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드물다. 그는 부산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짜’, ‘유명’한 디제이이자 방송인이었다.

그는 토박이 부산사람은 아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학업을 마친 후 1979년 대구의 민간방송사였던 한국FM방송 PD로 입사했다. 입사 일 년 후인 1980년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다. 그의 삶도 격랑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언론통폐합으로 한국FM방송은 대구KBS로 통합된다. 새내기 PD였던 그는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면서 대구KBS 라디오 PD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대구KBS에서의 생활은 짧았다. 통폐합 1년 후인 1981년 그는 부산KBS로 전보됐다. 

잠깐일 거라고 예상했던 전보기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가 맡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명 디제이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청취율을 보장해주는 유명 디제이를 방송국에서 놓아줄 리 없었다. 잠깐이라는 예상은 깨어졌고, 부산 근무는 2007년 정년퇴임 때까지 이어졌다. 패기와 의욕이 넘치던 32살 대구 남자는 부산에 첫 발을 디뎠을 때의 나이만큼의 세월을 부산에서 보내게 됐다. 이제 그에게 부산은 또 다른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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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듀서 겸 디제이였던 도병찬 씨가 부산시민회관 '추억의 영상음악회-도병찬의 뮤직파일'을 통해 디제이로 돌아왔다.

 

 

부산시민회관 제안으로 다시 디제잉 나서

그는 2007년 정년퇴임 후에도 프리랜서 디제이로 활동했다. 그러다 2008년 프리랜서 활동까지 접고 은거에 들어갔다. 그는 경성대 앞에 작은 카페를 열었다. 카페 ‘라디오’다. 방송과 음악을 떠난 그는 이곳에 둥지를 틀고 고요하게 칩거했다. 매일 저녁 7시에 카페 문을 열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를 내리는 일상을 이어갔다.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가던 그를 불러낸 곳이 바로 부산시민회관. 어느 날, 부산시민회관 문화사업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우리 음악 한 번 더 하입시다.”

부산시민회관에 그의 이름을 딴 음악감상프로그램을 만들겠으니 진행을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완전 은퇴를 선언하고 칩거하던 그로서는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망설이던 그를 움직인 것은 ‘7080세대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자’는 프로그램 취지였다. 

“지금 50∼60대들은 본격적으로 팝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예요. 라디오와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던 세대가 그들이예요. LP판을 틀어주던 음악감상실도 꽤 많았고, 가톨릭센터 화요음악감상회도 인기를 끌었었죠.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디지털문화가 주류 문화가 되면서 50대 이상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증발해버리는 현상이 발생했어요. 이들 세대는 문화에 대한 갈증도 크고, 소양도 깊어요.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대안 문화공간이 필요했어요. 그것이 추억의 영상음악회-도병찬의 뮤직파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를 사랑해준 팬들을 위해,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그들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침내 그는 조심스럽게 진행을 수락했다.

‘추억의 영상음악회-도병찬의 뮤직파일’은 이렇게 탄생했다. 프로그램 이름인 ‘뮤직파일’은 그가 현역 디제이로 활동할 당시 진행했던 FM방송 프로그램에서 따왔다. 시대가 바뀌면서 음악감상회에는 영상이 추가됐다. 

 

 

7080세대 문화놀이터 역할 톡톡

지난 4월 첫 음악감상회가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열렸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팬들이 줄을 이었다. 소녀에서 아줌마가 된 팬들은 나이만큼 넉넉한 미소로 그가 진행하는 음악감상실을 찾았다. 옛 음악감상실의 추억을 환기시키듯 무대 위에는 뮤직박스가 차려졌다. 뮤직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손에는 빼곡하게 적힌 프로그램 진행 시트지가 들려있었다. 헤드폰을 끼고, 첫 멘트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도병찬입니다.

‘오빠’의 귀환이었다. 30년 동안 방송가를 주름 잡았던 정통파 디제이 도병찬의 귀환이었고, 라디오의 귀환이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문화예술에서 소외됐던 7080세대의 귀환이었다. 

‘쉰세대’라는 모욕적인 호칭을 감수하며, 문화예술의 변방으로 밀려나던 그들이 음악을 중심으로 한데 모여 새로운 문화의 흐름으로 복귀하는 자리였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추억의 영상음악회-도병찬의 뮤직파일’에 한번이라도 가본 이라면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추억의 영상음악회-도병찬의 뮤직파일’은 당초 올 연말까지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인기가 많아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했다.

 

 

LP 가득한 카페 ‘라디오’ 운영

쉽지 않게 시작된 프로그램에는 단순한 음악감상회 이상의 힘이 잠재돼 있다. 도병찬 씨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음악감상회를 진행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50대 이상을 위한 문화가 절실하다는 거예요. 지금 50대 이상은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팝 문화를 뿌리 내린 세대입니다. 그 잠재력이 어마어마합니다. ‘도병찬의 뮤직파일’을 통해 그들을 위한 새로운 문화공간과 문화운동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음악감상회는 그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음악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늦은 나이에 뜻하지 않게 그분들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현재 도병찬 씨는 재능기부로 음악감상회를 진행한다. 희귀 안질환으로 시력의 대부분을 상실한 그로서는 유튜브를 뒤져 희귀 영상을 찾아내고, 프로그램 기획안을 작성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도병찬의 뮤직파일’이 그로서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50대 이상을 위한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 그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한다.

“다시 디제이를 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50대 이상의 장년층이 더 이상 소외되지 않게 그들을 위한 제대로 된 음악감상실을 해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음악감상실이 아니라 7080세대를 위한 문화놀이터를 만들고 가꾸고 싶습니다.”

왕년의 명 디제이답게 중간톤의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격조가 있다. 한마디 한마디가 한 편의 시(詩)처럼 깊게 울린다. 음악과 목소리로 새로운 장년문화를 얘기하는 그가 여전 그리운 이라면, 경성대 앞 카페 ‘라디오’에 가보라고 권한다. 

LP 2천장과 진공관 앰프가 있는 카페 ‘라디오’에서 그는 매일 저녁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얘기한다. 시를 닮은 노(老) 디제이가 들려주는 뭉근한 음악과 이야기가 있다. 낡은 앰프가 있는 카페 ‘라디오’와 그가 진행하는 ‘추억의 영상음악회-도병찬의 뮤직파일’은 문화의 변방에서 소외되고 있는 잊혀진 7080세대를 위해 부산의 한 방송인과 음악인이 보내는 마지막 헌사일지 모른다. 

 

 

작성자
글 김영주 기자 / 사진 문진우
작성일자
2016-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6년 11월호 통권 121호 부산이야기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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