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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해양수도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해양 1번지’

우리 사는 부산 / ④ 영도구
태종대·절영해안산책로·봉래산 아름다운 풍광 자랑
해양공공기관·국립해양박물관·국립한국해양대 한자리에

내용

그녀는 부산 영도사람이다. 영도 안에서도 영도사람이고 영도 밖에서도 영도사람이다. 보고 또 보고, 가도 또 가도 언제나 영도에 목멘다. 안과 밖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영도는 그녀 안에 허물어지지 않는 성(城)이 된다. - 심득순 수필 ‘그녀’에서

영도등대.

명마 기르던 절영도(絶影島), 영도 옛 이름

영도사람은 응집력이 대단히 강하다.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은 함께 슬퍼한다. 한 곳에 오래 산 토박이가 많아서 그렇고 바다란 울타리에 둘러싸인 공동체라서 그렇다. 중·고교 다닐 때 영도 바깥 학교에 다니는 영도 친구들은 끼리끼리 어울려서 하교했다. 늘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대체로 그랬다. 같이 하교하면서 정을 돈독히 했고 그게 영도사람 응집력을 이루는 한 바탕이 되었으리라.

국가명승 제17호인 태종대는 신선대바위, 영도등대 등 아름다운 절경으로 유명하다.(영도등대는 100여년 동안 부산바다를 오가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2004년 시설 노후로 운행 중단 후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영도사람 응집력은 애향심으로 이어진다. 영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엔간하면 영도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영도에 뼈를 묻으려 한다. 내가 뼈를 묻을 곳이기에 애지중지 돌보고 감지덕지 고마워한다. 사는 게 여의치 않아, 또는 나은 삶을 찾아 영도를 떠나서도 영도사람 애향심은 언제 어디서나 그대로다. 영도를 둘러싼 바닷물이 줄었다 불었다 하면서 늘 그대로인 것처럼. 영도사람 애향심은 영도 안에서든 영도 밖에서든 똑같다. 똑같이 끈끈하고 똑같이 끈적하다.

영도 옛 이름은 절영도(絶影島). 그림자가 끊긴 섬이란 뜻이다. 옛날 영도는 말 키우는 목장이었다. 말은 하나같이 천리마였다. 하루 천리를 달리는 준마였다. 얼마나 빨랐던지 말 그림자조차 말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림자가 말에서 끊겨 그래서 절영도다. 실제로 영도엔 말 목장이 있었다.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國馬場)이 그것이었다. 신라 선덕여왕이 삼국통일 위업을 이룬 김유신 후손에게 절영도 명마 한 필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열전’에 나온다.

명마 기록에서 보듯 영도는 신라와 인연이 깊다. 영도 태종대는 오륙도와 함께 부산에 단 둘뿐인 국가경승지. 예나 지금이나 경치가 천하제일이다. 태종대 지명 유래가 신라 태종 무열왕이다. 태종은 화랑시절 여기서 활 쏘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신라 도읍지 경주와 영도 사이 육로는 멀고 험해도 해로는 가깝고 곧았다. 경주 인근 감포나 울산 개운포에서 배를 타면 영도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태종대도 그렇고 부산 곳곳이 신라 화랑 도량이었다. 당감동 선암사가 기장 오랑대가 그랬다. 태종대 갯바위는 편평하고 공룡발자국까지 있어 100점 만점에 120점 나들이 명당이다.

해양관련 공공기관 이전 … 부산 해양산업 중심

영도는 한국을 먹여 살린 곳이다. 못 먹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조선시대, 구황작물 고구마를 재배하고 퍼뜨린 곳이 영도다. 동래부사를 지내고 조선통신사를 지낸 조엄이 대마도에서 들여온 것이 영도 조내기고구마. 대마도와 기후조건이 엇비슷한 영도가 있었기에 고구마는 전국으로 퍼졌고 우리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기근을 면했다. 그래서 영도를 찾을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찾아야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내기고구마 한 봉지쯤 사들고 가야 한다. 동삼동 3만㎡ 너른 밭에 해풍으로 고구마를 키우는 우수 마을기업이 있다.

“해상과 관련한 공공기관이 다 모여 있습니다.” 고구마로 한국을 먹여 살린 영도는 이제 바다로 한국을 먹여 살릴 기세다. 영도구청 구보편집실 조상철 편집장 설명처럼 영도는 해양수산 공공기관 메카로 부상했다. 해양 공공기관 가운데 국립해양조사원,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굵직굵직한 기관이 10군데나 들어섰고 두 군데 더 들어설 예정이다. 부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해양도시. 부산에서도 핵심 명품 해양도시가 영도다. 부산이 미래로 나아가고 세계로 나아가는 데 있어 영도를 비중 있게 바라봐야 하는 근거다.

뿐인가. 영도에는 한국 최고의, 최대의 해양대학인 국립한국해양대학교가 있다. 부산 최초 유인등대인 영도등대가 있고, 무엇보다 한국 최초 연륙교 영도대교가 있다. 상판을 들러 올려 더욱 유명했던 영도다리는 1966년 이후 들어 올리는 것을 포기했다가 2013년 11월부터 다시 들어 올려 유명인사 명성을 되찾았다. 매일 낮 12시부터 15분간 다리 들리는 시간이 되면 다리 입구는 관광객 차지다. 지금 사귀는 연인에게 만약 헤어지게 되면 몇 년 후 몇 월 며칠 다리 들리는 시간에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언약해 놓으면 되겠다.

한국 최초 근대식 조선소도 영도에 있었다. 남항동 대평초등 교정 기념비가 그것을 웅변한다. 교정은 원래 바닷물 넘실대는 해안이었다. 이 자리에 한국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섰다. 고종 24년(1887)이었다. 비록 목재 조선소였지만 조선 한국, 해양 한국의 ‘결정적 한 방’이 기념비 선 자리에서 이뤄졌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조선소이자 한진중공업 전신인 대한조선공사가 영도에 입지를 정한 것도 그런 연유다.

태종대를 순환하는 다누비 열치를 타면 태종대를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바다에서 산까지 빼어난 자연경관 자랑

명품 해양도시 영도는 8경도 죄다 해양이다. 영도8경은 태종대, 영도대교, 절영해안 산책로, 봉래산, 아치섬, 75광장, 동삼동 패총, 감지해변 산책로. 다른 건 이름만으로도 해양과 관계되는 걸 짐작하겠는데 봉래산과 75광장도 해양에 들어가나? 들어간다. 봉래산은 신선이 산다는 산. 영도 진산이 봉래산이다. 봉래산 정상에 서면 사방팔방이 바다다. 바다의 정상, 해양의 정상이 봉래산이다. 해양의 정상 봉래산 정상에 서면 누구라도 신선이 된다. 정말이다. 75광장은 1975년 조성된 해안도로변 광장. 광장 정자에 앉아 풍경화처럼 펼쳐진 바다 삼매경에 빠져 보라. 보름달 뜨는 밤 여기에서 시 한 편을 남기리. 이태백이 울고 가는 시 한 편을 쓰리.

영도 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게 ‘동삼동패총전시관’. 부산시립박물관 분관으로 한국해양대 입구에 있다. 한국 유일의 패총 유적 박물관이다. 동삼대 일대에서 발굴한 신석기 패총을 전시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 각종 석기, 토제품, 장신구 등과 어패류와 동물 뼈를 볼 수 있다. 동삼동에선 한반도 가장 오래된 재배곡물인 조와 기장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 한일 문화 교류를 엿보는 토기와 흑요석도 출토됐다. 7천몇백년 전 신석기 유물이 나올 만큼 영도는 역사가 오랜 도시다. 신라나 백제 고도보다 삶의 흔적이 더 오랜 곳이 부산이고 영도다. 우리 사는 부산과 영도는 일부러 역사를 내세우진 않지만 내세웠다 하면 몇천 년 정도는 예사로 훌쩍 넘는다.

국립해양박물관도 해양도시 영도를 반짝이게 한다. 우리나라 해양박물관 가운데 유일한 국립이다. 패총전시관과 같은 ‘삐알’인 동삼동에 있다. 동삼동은 동쪽 세 마을. 상리, 중리, 하리다. 모두 바다를 끼고 있다. 동삼동 어디를 가더라도 바닷물이 출렁이고 해산물이 싱싱하다. 2010년 개관한 국립해양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4층. 멀리서 보면 흑진주 빛이 나는 조개 형상. 패총처럼 보인다. 국립박물관이고 해양박물관인 만큼 바다에 관해서라면 없는 게 없다. 아이들 공부를 돕는 최고의 자연 학습서다. 1층부터 4층까지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하루가 부족하고 한 달이 부족하고 한 해가 부족하다. 어쩌면 한평생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해안 절벽과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절영해안산책로는 해안절경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사시사철 먹거리·볼거리·즐길거리 풍성

바다를 낀 영도는 말 그대로 관광 일번지. 걷기도 좋다. 부산을 대표하는 갈맷길, 문화마을 흰여울길, 봉래산 숲길이 영도를 걷기 좋은 도시로 치켜세운다. 송도와 영도를 잇는 남항대교에서 시작하는 영도 갈맷길은 절영해안산책로와 감지해변산책로를 거쳐 태종대 유원지에 이른다. 어른 걸음으로 네 시간 정도. 관건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느냐 하는 것. 해안 자갈밭 멍게며 해삼이며 전복이 길 걷는 이를 부추기고 또 부추긴다. 봉래산 기슭 흰여울길은 영화촬영지. 풍광이 빼어나다. 처음 걸음 하기가 어렵지 일단 걸음 하면 내일도 오고 싶고 모레도 오고 싶다. 봉래산 숲길은 둘레길과 등산로가 잘 돼 있다. 길은 얼기설기 미로.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면서 길을 익히는 재미가 영판 신선놀음이다.

관광 일번지 영도는 둘러볼 데가 숱하다. 영도구청은 당일관광과 1박2일 숙박관광 모두 15코스로 나눠 추천한다. 당일관광은 영도대교 도개관람형, 체험관광형, 등반산책형, 스토리형이 있다. 숙박관광형은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출발해 봉래시장 쇼핑으로 끝나는 코스가 있고 영도대교에서 시작해 어묵체험으로 끝나는 코스가 있다. 어묵은 부산 대표 먹거리 하나.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공장이 영도에 있다. 15코스 자세한 내용은 영도구 홈페이지(www.yeongdo.go.kr) 참조.

영도는 또한 축제의 도시다. 해양도시고 관광도시니 왜 아니 그럴까. 부산항축제가 지난 5월 말 국립해양박물관과 국제크루즈터미널에서 사흘간 열리기도 했거니와 사시사철 부산에서 찾고 한국에서 찾고 세계에서 찾는 축제가 영도에서 열린다. 영도다리축제, 행복영도 희망의 빛 축제, 청학동 벚꽃축제, 정월대보름 동삼동 달맞이축제, 태종대 수국축제, 동삼풍어제 등등이다. 곧 다가오는 축제는 수국축제. 태종대 유원지 사찰 태종사에서 40년 가꾼 색상 은은하고 향기 그윽한 200여 종 수국이 축제를 찾는 사람 마음을 은은하게 하고 그윽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은은하고 그윽하게 고백하기 딱 좋다.

2010년 개관한 국립해양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4층으로 멀리서 보면 조개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사진은 국립해양박물관 수족관을 관람하는 아이들 모습).

영도 - 부산 이어주는 다리 곳곳에 들어서

영도에는 기념비도 많다. 정말 많다. 영도가 그만큼 기념비적 공간이란 뜻이다. 기념비 해설은 하루를 다 써도 모자란다. 알아 두면 좋을 기념비를 명칭만 소개한다. 기념비가 어디 있고 왜 있는지는 영도구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된다. 영도유격부대 선열동지추모비,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 6·25참전 영도유격부대유적지, 도개식 영도대교 기념비, 영선동패총기념비, 영도 전차종점 기념비, 한국근대조선발상 유적지비, 청마 유치환 시비, 영도 대풍포 매축비 표석, 선구자 시비, 의지의 꽃길 기념비, 김소운 문학비, 한찬식 시비, 동산 박진두선생 송덕비, 효자 故주봉우 현창 기념비, 순직선원 위령탑, 순직장병 추모비, 북양 개척자비, 절영도진 첨사 송덕비,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 현인 노래비.

국립해양박물관은 국내 최대 해양문화공간으로 해양생물, 선박, 해양산업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국립해양박물관 전경).

선박모형을 관람하는 시민 모습.
 
옛 어업도구를 관람하는 어린이 모습.

다시 다리 이야기. 명품 해양도시 영도는 다리의 도시이기도 하다.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 이름만 들어도 힘이 불끈 치솟는 다리가 섬 영도와 육지 부산을 사통팔달 이어준다. 대한민국 어디에 이처럼 많은 다리가 섬과 육지를 이어주랴 싶다. 대한민국 어디서도 보기 힘들 영도의 다리 다리 다리 다리. 영도에 놓인 다리들은 우리를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주고 세계로 이어준다. 미래로 나아가고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 사는 부산의 한 상징이 영도에 놓인 다리이고 곧 영도다.

작성자
글 동길산 시인
작성일자
2015-08-1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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