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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지중해의 배꼽… 중세 유럽 그대로 옮겨 놓은 나라

수도 발레타, 세계문화유산 … 아름다운 자연·지중해 문화 조화로워
세계테마여행 / 몰타

내용

몰타는 한국에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남쪽 지중해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이 작은 섬나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지중해의 배꼽'으로 불리기도 한다. 몰타는 국토의 대부분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바다 요새이고 절벽 위에 도시가 세워진 성채 도시다.

발레타 거리.

몰타는 유럽인들에게는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이고,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leta)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월터 스콧(Walter Scott, 1771~1832)은 몰타를 방문한 후 이 도시를 '신사를 위해 신사에 의해 지어진 도시'(the city built by gentlemen for gentlemen)라고 이 도시의 품격을 칭찬하기도 했다.

인류문명 발원지이자 다양한 문명 복합체

몰타는 고층 건물로 가득한 현대적인 도시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함께 고대의 신화를 담고서 유럽 중세의 풍취를 물씬 풍기는 중세풍의 도시다. 현대식 건물도 있지만, 16세기에 건축된 성곽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고, 그 당시에 건축된 주택과 거리에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어 이 도시를 걷다 보면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16세기 유럽 중세 도시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어 짧은 시간에 중세 도시의 특징을 손쉽게 둘러 볼 수 있는 도시다. 발레타거리에는 시티 센터와 각종 쇼핑 타운과 버스 중앙 정류장, 성요한 대성당과 기사 박물관 등이 한곳에 모여 있다.

몰타인들의 친절과 넉넉한 여유, 평화로움과 변화에 순응하며 사는 모습들은 정신의 치유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할 만한 도시다.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이 도서 국가에는 인류 문명의 발원지이자 다양한 문명의 복합체인 지중해에서도 가장 일찍 세워진 신전을 발견할 수 있다. 유럽 거석문화의 기원인 영국의 스톤헤지보다 앞선 기원전 4천년경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거석 신전들이 수도인 발레타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인 할사프리니(Hal Saflieni), 하자르임(Hagar Qim) 등 몰타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 신전들은 지금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건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몰타를 지배한 외부 정복자가 신전을 파괴했고 전염병 등의 창궐로 인해 지금은 일부 흔적만 남아 있지만 몰타에 지중해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석조 신전이 세워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중해의 정중앙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몰타는 잠시라도 온전한 그들만의 역사를 일구어낸 적이 거의 없었다. 지중해를 호령했던 페니키아, 그리이스, 로마, 비잔틴, 아랍-이슬람과 오스만 투르크제국은 지중해를 지배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서 몰타를 차지했고 근대 이후에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다 1964년에 독립했다.

영국의 식민 잔재는 독립 이후인 지금까지 남아 대부분의 몰타인들은 그들의 언어인 몰타어 이외에도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고, 자동차의 구조(핸들이 오른쪽에 위치)와 도로 체계도 영국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발레타의 어느 곳에서 버스를 타든 버스는 중앙 정류장을 거친다. 중앙 정류장이 도시의 중심이다.

몰타 기사단 근거지 … 국민 대부분 가톨릭 신자

몰타는 빼어난 자연 환경과 지리적 위치로 인해 관광업, 수산업과 선박 수리업이 발달한 나라다. 작은 나라지만 이 나라의 대표 대학인 몰타대학교(University of Malta)는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대학이다. 가톨릭이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몰타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거의 대부분 가톨릭 성당이다. 몰타의 수많은 축제들은 대부분이 그들의 수호 성인을 기리기 위한 축제라는 것도 이 국가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몰타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음으로 인해 기층문화에는 이슬람적 요소가 다분히 포함돼 있지만, 이를 자양분 삼아 한층 세련된 고급의 가톨릭 문화를 일구어 낸 것이다.

몰타는 가톨릭이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몰타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대부분 가톨릭 성당이다.

몰타는 십자군 원정단의 후예인 몰타 기사단의 근거지로도 유명하다. 수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을 통해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은 전쟁에 참전한 군인과 성지 순례자들의 보호와 치료를 위해 병원 기사단을 창립했고 이 병원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의 경과에 따라 예루살렘과 로도스섬을 거쳐 17세기에는 몰타섬으로 옮겨 왔다.

이 병원 기사단은 몰타에서 200여 년간 활동하며 몰타 기사단으로 불렸고 몰타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며 중세 이후 몰타의 국가 정체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8세기 말 이집트를 점령하려 출정한 나폴레옹에게 진압 당한 몰타 기사단은 뿔뿔이 흩어져 현재 영토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나름의 국가 체제를 갖추고 국가로서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지구상의 유일한 영토 없는 국가인 셈이다. 영토는 있으나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팔레스타인과 쿠르드와 대비되는 상황이라 하겠다.

이러한 몰타 기사단의 영향은 현대 몰타에도 영향을 끼쳐 몰타 국기에 독특한 십자군의 형상을 남겨 놓았다. 몰타에 십자군 관련 유물과 유적지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수도 발레타, 16세기 유럽 정취 가득

몰타는 발레타, 고조, 코스미노의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다. 이중 발레타는 몰타의 수도로서 1565년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에 저항해 몰타를 방어해 낸 몰타 기사단의 단장인 장 발레타(Jean Parisot de Vallette)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당시 오스만 투르크는 3만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몰타를 공격하였으나 700여명의 몰타 기사와 8천여명의 몰타인들은 오스만 투루크의 공격을 방어했고 이를 지휘한 사람이 발레타였다. 발레타를 중심으로 한 몰타 기사단이 오스만 투르크가 주도한 이슬람세력에 대항하며 유럽 가톨릭의 방패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발레타는 이슬람 세력으로 부터 가톨릭 세계를 지켜낸 상징성을 갖고 있다.

발레타는 16세기 유럽 중세 도시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짧은 시간에 중세 도시의 특징을 손쉽게 둘러볼 수 있는 도시다. 발레타 거리에는 시티 센터와 각종 쇼핑 타운과 버스 중앙 정류장, 성요한 대성당과 기사 박물관 등이 한곳에 밀집해 있어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도시를 관광할 수 있다. 발레타의 어느 곳에서 버스를 타든 대부분의 버스는 이곳 중앙 정류장을 기점으로 하여 운행되고 있어 이 중앙 정류장이 도시의 중심인 셈이다.

중앙 정류장과 연결된 거리로 들어서면 발레타의 각종 축제가 열리는 중심 도로이고 이 도로를 따라 각종 쇼핑몰과 식당 및 관광지가 모여 있다. 필자와 동행한 몰타 친구는 한류가 확산돼 몰타인들도 한국 가요를 좋아하고, 최근 거리 축제 때에는 '강남 스타일'에 맞춰 집단 말춤(?)을 추었다고 한다. 발레타가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성요한 대성당,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성당

발레타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역시 성요한 대성당이다. 몰타의 수호 성인인 성요한을 모시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이 성당은 '몰타의 보물'이라고 불린다.

필자가 이 성당에 갔을 때 내부 수리 중이라 입장이 불가했다. 낙담한 채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필자를 보고 있던 몰타인 친구는 몰타인 특유의 외교력(?)을 발휘하여 필자의 근심을 덜어 주었다.

성당 외부는 몰타 기사단을 상징하는 독특한 십자가 문양으로 비교적 평범하게 장식돼 있지만, 성당 내부는 화려함과 섬세함의 극치라 할 만하다. 동행한 몰타인 친구의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성당'이라는 설명이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성요한 대성당'은 발레타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몰타의 수호 성인인 성요한을 모시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이 성당은 '몰타의 보물'이라고 불린다.

이 성당의 내부를 보지 못했다면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이다. 각종 성화로 장식된 성당의 내부는 유럽의 다른 국가의 성당에서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성당 내부의 아치형 천정에는 성요한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바닥에는 몰타 기사단의 대리석 묘비가, 성당 지하에는 기사들의 시신 400여구가 안치돼 있다.

성요한 대성당 뒷편의 '기사 박물관'은 중세의 다양한 기사들의 모습과 갑옷 및 투구와 그들의 무기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특히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1571~1610)의 작품인 '세례 요한의 참수(The beheading of Saint John Baptist)'는 성요한 대성당의 대표적인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성당 내부는 본 회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각각 8개의 소예배당으로 구성돼 있다 당시 몰타 기사단이 전부 8개국에서 왔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에 따라 8개의 소예배당이 마련됐고 각각의 예배당에서 모시는 성인도 다르다. 결국 중세 지중해의 모든 유럽 국가의 수호 성인과 그들의 신앙이 이 성당에 모여 있다는 의미다.

성요한 대성당 뒤에는 기사 박물관이 있다. 중세의 다양한 기사들의 모습과 갑옷 및 투구와 그들의 무기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또한 십자군들이 전장에서 진(陣)을 친 모형과 말을 탄 기사의 모습과 대결 장면 등 영화에서 보던 기사의 실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16세기 십자군의 전장터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든다.

기사 박물관을 나와 거리를 걷다 보면 중세 유럽풍의 건물에 21세기 명품이라 불리는 각종 상품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고, 이 길을 계속 걷다 보면 탁 트인 지중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필요한 것이 필요한 곳에 있고, 보고 싶은 것이 보고 싶은 곳에 있는 묘한 조화를 가진 매력있는 도시가 발레타다.

지중해 모든 문화 언어 모인 '임디나'

발레타 인근의 도시로는 발레타가 수도가 되기 전 약 2천년 동안 수도였던 임디나(Mdina)를 추천한다. 임디나는 아랍어로 '도시'란 의미로서 발레타에서 버스로 2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성바울 성당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중세 유럽과 이슬람 도시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어 지중해 중세의 모습과 풍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몰타에서 바라본 지중해 바다.

지중해 문명에 대한 정의를 내린 다양한 담론들 중에 필자는 "지중해는 하나의 문명이 아닌 어떤 문명들 위에 다른 문명들이 중첩된 모습을 지닌 문명들이 있는 곳이다"라고 말한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의 정의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몰타는 브로델의 지중해에 대한 정의가 가장 적확한 표현임을 온 몸으로 보여 주고 있는 가장 지중해다운 현장이다.   

최근에 몰타는 한국학생들의 영어, 아랍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등의 외국어 연수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로 발레타 시내의 찻집에 앉아 있다 보면 몰타어와 함께 영어, 아랍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지중해 지역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언어를 한 장소에서 들을 수 있다. 가히 지중해 언어의 전시장이라 할만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영어를 포함한 지중해의 모든 문화와 언어를 한 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몰타의 커다란 매력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몰타의 매력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품위와 친절함을 갖추고서 이방인을 대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월터 스콧의 몰타에 대한 인상에 동의하게 된다.

관광 산업을 기간 산업으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는 부산이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인구 40만명의 작은 섬인 몰타이지만 이곳에서 만난 착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기억들은 여행자에게 오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작성자
글·사진 윤용수 부산외국어대 지중해지역원장
작성일자
2015-05-1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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