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1641호 기획연재

천년 이어온 생활 속 나전칠기 영롱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다

부산이야기 부산의 꾼 - 김관중 나전명장

내용

투박하고 거친 전복껍데기를 갈고, 쪼고, 문질러 영롱한 자개 수를 놓는다. 전복껍데기는 하잘것없는 탄산칼슘 각질 투성이. 그러나 프리즘과 같은 색광현상은 오직 전복에서만 나온다.

전복껍데기는 제멋대로 갈라지고 쪼개진다. 이것이 야생적 본래 성질이다. 쪼개지고 갈라질수록 더욱 강한 빛을 내는 자개, 그 성질이 마음을 끌었다. 장인의 손길을 거치면서 바다 속이 되고, 물고기가 되고, 봉황이 되어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광채를 뿜어내는 영롱한 보석으로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김관중 나전명장은 올해 대한민국 공예명장에 선정된 부산대표 나전칠기장이다. 천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나전칠기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국내 몇 안 되는 장인이다. 김 명장은 액자 작품부터 교자상, 보석함, 각종 액세서리까지 작품성과 실용성을 갖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든다.

전복껍데기 오색영롱한 예술품으로

김관중(58) 씨. 그는 올해 대한민국 공예명장에 선정된 부산대표 나전칠기장이다. 천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전칠기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국내 몇 안 되는 장인이다. 그는 본디 경남 거제 출신이지만 부산사람이 된지 45년이 흘렀다. 찢어지게 어렵던 시절, 간절한 호구지책으로 배운 자개 일이 이제는 천직이 됐다. 세상에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예술세계로 승화시켰다.

사실, 나전칠기는 벌써 한 물 갔다. 자개장 하나쯤 안방에 들어앉혀야 번듯한 살림살이의 체면이 서던 시절은 사라진지 오래다. 아파트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붙박이장에 자리를 내주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자개장롱이 한둘이 아니다. 김 명장은 이런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자개를 박는다. 다시금 자개의 화려한 르네상스를 꿈꾼다. 작품은 남다르다. 서양화나 동양화 그림처럼 벽에 걸어두고 감상할 수 있는 액자 작품에서부터 교자상, 보석함, 선물용 각종 액세서리까지 작품성과 실용성을 갖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든다. 나전칠기의 쇠락 속에서 그의 나전작품이 빛을 발하는 이유다.

김 명장의 작품, 바다의 깊이(왼쪽)와 신비한 물 속의 세계.

부산진구 연지동의 '성문공방'

"나전의 매력은 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옻칠(칠기)은 천년, 나전(자개)은 수천 년 동안 그 생명을 이어갑니다. 나전칠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공예입니다. 특히 바다도시인 부산은 자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을 상징하는 작품이나 기념품으로 두고두고 감상하고, 두고두고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광채 나고 세련된 예술품이 바로 자개입니다."

부산시 부산진구 연지동 산 쪽 주택가에 그의 작업장 '성문공방'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으로 나전작품을 만든다. 부산의 시어(市魚)인 고등어, 국제회의도시의 상징인 누리마루 APEC하우스를 비롯해 광안대교, 수영어방놀이, 조선통신사 같은 부산 이미지를 주제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만든다. 부산을 찾는 주요 외국 손님들에게, 혹은 부산시가 해외 주요기관 방문 때 귀빈선물로 내놓는 미니병풍, 자개접시 등도 대부분 그가 고안한 나전작품이다.

김 명장은 지난해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첫 특별전에 초대받아 2개월간 '바다 속 나전칠기 세계'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에서 그는 1년 넘게 걸려 만든 대형 사각테이블 평면에 바다 속 세계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수중도' 같은 대작을 비롯해 나전칠기 생활소품 100여 점을 선보였다. 전시회는 끝났지만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에는 화장대, 문갑, 테이블, 꽃병 등 그의 나전작품 40여점이 상설전시 중이다. 박물관이 사들인 작품에 그가 기증한 나전칠기 생활 공예품들이 오롯하게 자리하고 있다.

상 받은 것만 41회 … 손재주 일품

그는 혼신을 다한 작품을 통해 모두 41회의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전국기능경기대회 금상을 비롯해 대한민국 공예대전에서만 9차례 입상했고, 부산공예품대전에서 무려 11차례 상을 받았다. 전국관광기념품, 부산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도 12차례, 대상 은상에 특선과 입선을 수차례 차지했다.

그가 나전칠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2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야간중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자개에 입문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중학교는 언감생심이었다. 손재주가 좋으니 기술을 배우라는 주변의 권유로 친척이 운영하던 부산 나전칠기공방에 나전공으로 입문했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자개 광채가 발길을 끌었다. 당장의 호구지책으로도 괜찮아 보였다. 적성에 맞고, 호기심이 동해 일을 택했다고는 하나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일은 고됐지만 재미를 붙이다보니 모든 공정을 남보다 먼저 습득했다.

나전칠기, 부산상징 공예품으로

"나전칠기는 실용의 예술이자, 반드시 지켜가야 할 전통예술입니다. 옛 것, 낡은 것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멋이 듬뿍 담긴 예술작품이자,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작품 제작에 온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고, 부산만의 독특함이 담긴 나전칠기 작품으로 세계와 소통해 나갈 생각입니다."

김 명장은 지금까지의 숙련과 경험을 바탕으로 선후배 나전칠기 장인들과 힘을 모을 생각이다. 디자인과 새로운 창작기법을 개발해 나전칠기를 부산을 상징하는 공예품으로 만들 꿈을 키우고 있다. 동래패총, 동삼패총 유적지 연구를 통해 부산이 원래 나전의 도시임을 입증하는 바탕으로 삼고, 이를 관광 상품화하는 구상도 키우고 있다. 그 꿈을 좇아 오늘도 옻칠의 검은 바탕을 캔버스 삼아 자개를 문지르고 칼질하며 자개그림을 그려나간다. 우직한 장인의 열정을 쏟아 나전칠기에 다시 숨을 불어넣고 있다.

※이 글의 전문은 부산 대표 잡지 '부산이야기(iyagi.busan.go.kr)' 8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작성자
글·박재관/사진·문진우
작성일자
2014-08-0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641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