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장려] 시아버지의 손

내용

대한민국 땅이 좁다고 누가 그랬던가, 스물여섯이 되도록 부산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전라도서 나고 자란 전라도 토박이 처녀였다. 그런 나를 안타까이 여기신 월하노인, 어느 날 깡마른 부산 사내 하나를 툭 만나게 하시고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그 덕분에 나는 스물여섯 가을, 처음으로 부산 땅을 디뎠다. 전라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들 차림새에 긴장감을 슬며시 털어내며 부산 사내 손을 잡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재미났다. 길게 이어진 가파른 계단과 발 딛자 또르르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비탈길은 드라마 속 어느 동네 같았다. 줄을 선 채 빼꼼 얼굴만 내보이는 아이들처럼 집들은 비탈길을 사이에 두고 빼꼼한 모양새로 서 있었다.

월하노인이 짝 지워준 이 사내, 아무래도 부잣집 남자는 아닌갑다, 고 문득 생각했지만 상관없었다. 그 깡마른 사내를 나는 사랑했으므로.

이국의 정취감이라도 느끼는 듯 한껏 설레며 걷던 나는 정말이지 뜨악, 놀라고 말았다. 좁은 길 한 쪽에 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영어로 프리 토킹을 하다니, 부자 동네로는 안 보이는 데 영어 교육열이 대단하구나, 고 생각했다. 그러다 여자 아이들과 대여섯 발자국 앞까지 가까워졌을 때 나는 한참을 웃고 말았다. 여자 아이들은 분명 우리나라 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파도를 타듯 오르내리는 생동감 있는 부산말로. 부산 사투리와 억양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멀리에서 들리는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영어 대화로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부산에 온 첫날에 만난,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게 파닥거리는 억양과 말투, 어스름하게 해 저물던 그 비탈길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날 나는 사랑하는 부산 사내의 부모님을 만나 인사드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비가 내리는 날, 전라도의 친척들과 친구들을 전세버스로 부산에 모셔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시아버지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명분과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시아버지께서는 약주라도 한잔 잡수신 날이면 어김없이 “니가 누고?” 라고 물으셨다. 니가 누고, 라니 이게 뭔가 싶어 대답을 머뭇거리면 시아버지께서는 야야, 니가 내 큰며느리 아이가, 지는 아부지 큰며느립니더, 하고 와 대답을 못하노!, 불호령이 떨어졌다.

쉽지 않았다. 비교적 자유로운 가정 분위기에서 막내로 자유롭게 자란 내게 큰며느리로서의 도리와 의무를 강조하시는 시아버지를 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시아버지께서는 내가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산말로 흥겹고 빠르게 말씀하신 후 내 대답을 기다리시곤 했는데 내가 대답을 못한 채 웃고만 있으면, 야가 와 대답을 안 하고 웃기만 하노? 대답을 해라!, 소리치시기도 했다. 언어 소통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결혼 후 맞는 첫 명절날, 나는 시어머니께서 정성스레 만드신 부침개를 먹고 하마터면 토할 뻔 했다. 독특한 향의 향수를 쏟아 부은 듯 부침개는 어찌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 부침개를 시댁의 다른 식구들은 모두 맛있게 드셨는데 그것은 방아 잎의 향기라고 했다. 내 속을 울렁거리게 한 방아의 그 강렬한 향과 맛은 그러나 이후 명절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가 가장 즐겨 찾는 맛이 되었다. 방아와 부추를 함께 넣어 기름에 부친 부침개는 내게도 '정구지 지짐'이 되었고 나는 방아의 그 매력적인 향과 맛을 즐기지 못하는 친정 식구들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겼다.

내가 시댁 마당에서 따온 방아 잎 때문에 시어머니께서 화들짝 놀라시던 날은 시아버지의 생신날이었던 것 같다. 시어머니께 나도 이제 부산 사람 다 되었노라 자랑하고 싶던 나는 정구지 지짐에 넣을 방아 잎을 직접 따오겠노라고 말씀드리고 소반에 예쁘게 담아다 드렸다.

“우짜겠노, 도라지 다 죽게 생??네, 니 이걸 방아라고 따온 기가?”

“............”

내가 어머니께 따다 드린 것은 막 자라기 시작한 도라지 잎이었다. 천식을 앓으시던 시아버지께 달여 드리기 위해 시어머니께서 공들여 키우시던 도라지 잎을 똑, 똑 따버렸던 것이다. 그 아침, 정구지 지짐을 맛있게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전라도 처녀가 부산 총각을 만나 사는 것은 생각만큼 재미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엄하신 시아버지 앞에만 가면 쫑알대던 나의 입은 어느새 무거워지고, 그보다는 덜 엄하시지만 시어머니가 시원스레 던지는 말씀 한쪽에도 맘에 상처를 입곤 했다. 나만 외톨이가 되고 부산 사람들끼리 한통속이 되어 나를 평가한다는 생각에 억울하고 서글퍼지는 날도 많았다. 월하노인이 짝 맺어 준 부산 사내는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때에도 그저 침묵하기 일쑤였다.

시아버지는 불같은 성격이셨다. 잠잠한 화롯불 같다가도 어느 순간 거대한 산불처럼 타오르고 또 때로는 아궁이 불처럼 포근하고 따스하기도 했다.

그토록 바라시던 첫 손자를 낳던 날, 시아버지께서는 한 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오셨다. 마취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생전 처음 꽃다발을 샀다며, 수고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 수줍고 달뜬 시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새색시 같았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내가 시댁에 가면 얼굴 보기가 와 이리 힘드노, 그래가 큰며느리 하겄나, 핀잔주시면서도 뒷짐 진 채 직접 시장에 다녀오셔서는 맛난 회를 한상 차려주시곤 했다. 그게 시아버지의 사랑 표현 방식이었는데 그 땐 왜 그리 시아버지의 말씀이 무섭기만 했던지. 아이가 커가고 조금씩 큰며느리로서의 담력도 생기자 가끔은 시아버지의 말씀을 흘려듣기도 하고 거친 듯 무뚝뚝한 시아버지의 표현 방식에도 익숙해져갔다.

시아버지는 산을 좋아하셨다. 새벽이면 물병을 등에 지고 뒷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물병 가득 약수를 채워오셨다. 젊은 사람도 나는 못 따라온다며 자신만만해 하셨다.

시아버지는 부지런하셨다. 일흔이 넘으신 연세에도 일거리를 찾아 일을 하시고 봐라, 나는 아직 끄떡없다고 자랑삼아 말씀하셨다.

그러시던 시아버지께 작년, 폐암 진단이 내려졌다. 병원에서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아버지가 폐암이라는 사실을 안 이후, 나는 시아버지가 시아버지로가 아닌 대한민국의 일흔이 넘은 한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후 시장 지게꾼으로 나섰던 남자, 악착같이 일하고 이 악물고 돈 모아 장사를 시작한 후 겨우 집 한 칸 마련했던 남자, 자존심 하나 믿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아온 남자, 자식들만은 잘 가르쳐보자 공부시킨 남자, 그런 자식들로부터 고집스럽고 말 안 통한다는 소리를 듣는 남자, 아내로부터 성질 좀 죽이고 살라는 핀잔을 듣는 남자, 그리고 늙어 이제는 폐암에 걸린 남자.

폐암 진단 후 1년 남짓을 투병하시다가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진 어느 밤, 병원으로 실려 가신 시아버지는 결국 한 달을 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보름 전쯤, 나는 시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보았다. 그제야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시아버지와 손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색을 못해 하얗게 샌 머리칼에 틀니를 빼 홀쭉해진 볼을 한 시아버지의 마른 손은, 따뜻했다.

이 남자, 평생을 가족을 위해 물통을 지듯 무거운 짐 짊어지고 살아왔을, 살기 위해 고집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을 이 남자의 손을 왜 진작 잡아주지 못했을까, 맘이 아렸다. 나도 모르는 새 시아버지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그제야 알았다. 바보같이.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전해 주었다. 병원에 계시는 시아버지께 농담 삼아 큰며느리가 좋으냐 작은 며느리가 좋으냐고 여쭤보았다고, 그때 시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지 아느냐고, 기력 없어 말씀하시기 힘드신 데도 또렷하게 큰며느리라고 말씀하시더라고, 이유를 물으니 그냥 입가 꼬리만 살짝 올리시더라고.

똑똑한 체 했지만 실상은 바보였던 큰며느리는 이제야 시아버지께 대답을 한다.

 “저는 아버님 큰며느리입니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작성자
최은정(서울시 명일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