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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임진왜란 최초 격전, 다대진성 전투 장군·군·민 목숨 바친 ‘호국의 터’

내용

사하구는 낙동강 하구와 부산 앞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등 바다와 더불어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고, 을숙도 등 모래톱이 만들어낸 드넓은 갯벌과 철새도래지 등 자연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큰 강의 하구이자 해안가에 위치하다 보니,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과 약탈이 잦았기에 부산포 서쪽을 방어하는 주요 군사요충지로서의 역할도 컸다. 특히 임진왜란 시절에는 다대진성을 중심으로 왜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등 국가수호의 일선에 서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번 ‘걸어서 만나는 부산 역사’는 윤공단 - 선정비 비석군 - 다대진성터 - 다대객사 - 정운공순의비 - 몰운대 등 다대포 지역을 중심으로 임진왜란 역사길과 다대포 주변 역사터를 걸어본다. 

 

사하구 몰운대공원 내 위치한 ‘다대포객사’. 

▲사하구 몰운대공원 내 위치한 ‘다대포객사’.


대군에 맞서 수성 위해 치열한 전투 벌인 ‘다대진성’


1592년 음력 4월 13일. 조선정벌대 선봉 1군 고니시 유키나가는 휘하의 1만 8천 700명의 대군과 7백여 척의 병선을 이끌고 부산포를 침략해온다. 임진왜란의 그 시작을 알린 것이다. 그들은 14일 지금의 우암동 부근에 상륙해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곧바로 병력을 나눠 다대진성과 동래성으로 진격한다. 다대진첨사 윤흥신 장군은 서평포진(지금의 구평동 일대)을 함락하고 다대진성 앞에 진을 친 왜군과 이틀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왜군의 공격에 하루를 넘겨 수성한 최초의 전투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왜군의 대군에 의해 다대진성은 함락되고, 첨사 윤흥신과 동생인 윤홍제 등 군민은 최후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한다. 이 전투로 왜군은 경상도 해안지역의 요충지인 부산진과 다대포진을 점령함으로써 조선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윤공단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치열한 전투 중 순절한 윤흥신 장군과 군민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제단이다.

▲윤공단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치열한 전투 중 순절한 윤흥신 장군과 군민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제단이다. 

 

윤흥신 장군과 군민 의로움 기리는, 윤공단 


윤공단을 오르는 길은 간단치가 않다. 약 60m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 길을 걸어서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단을 오를수록 주위의 풍경은 밝아지고 자연의 푸름은 색을 더해 오히려 상쾌함마저 든다.

 

윤공단(尹公壇)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치열한 전투 중 순절한 윤흥신 장군과 군민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1765년(영조 41년) 조성한 제단이다. 원래 다대포첨절제사영의 성내였던 부산유아교육진흥원(옛 다대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1970년 12월 5일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새로이 정비했다.

 

윤공단에 들어서면 잘 생긴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당시의 상황을 웅변하듯 경건해진다. 제단 앞에 선다. 비석 앞면에는 ‘첨사윤공흥신순절비’(僉使 尹公 興信殉節碑)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고, 윤공순절비 좌우로 그의 아우인 ‘의사윤흥제비’(義士尹興悌碑)와 순절한 군민을 기리는 ‘순난사민비’(殉亂士民碑)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제향은 동민 중심으로 순절일인 음력 4월 14일에 거행되고 있다. 

 

윤공단을 내려오다 보면 왼쪽으로 14기의 비석군이 눈에 띈다. ‘선정비 비석군’이다. 첨사 이승운, 이동식, 관찰사 이경재, 홍종영, 병조판서 민응식, 겸목관 이득형 등을 기리는 선정비들이 모여 있다. 다대포 지역에 산재해 있던 것을 이곳에 한데 모아둔 것으로 윤공단과 함께 좋은 역사교육 자료가 되고 있다.   

 

다대포항 주변 ‘다대활어시장’ 모습. 어민들이 갓 잡은 활어를 좌판에 팔면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노천시장이다.  

▲다대포항 주변 ‘다대활어시장’ 모습. 어민들이 갓 잡은 활어를 좌판에 팔면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노천시장이다.


다대진성, 성터 흔적만 겨우 남아


다대포 부산유아교육진흥원과 주택가를 경계하는 골목. 그 골목 안으로 진흥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모서리 담벼락에 눈길을 준다. 붉은 벽돌로 매끈하게 쌓은 윗부분과 달리 아랫부분은 아주 오래 됨직한 크고 작은 돌로 쌓아올렸다. 투박하지만 튼튼하게 보이는 이 돌들이 다대진성 성돌의 일부이다. 

 

1834년 동래부 화사 이시눌이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 장면을 그린 기록화 ‘임진전란도’의 다대진성 부분을 보면 이곳이 다대진첨절제사영 성터 흔적이란 것을 쉽게 유추해 볼 수가 있다. 해안 지역이라 퇴적암 종류의 갯돌도 더러 보이고, 사람 키만 한 돌은 기단석 위에 올리는 대석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다대진성은 지금의 다대포 부산유아교육진흥원(옛 다대초등학교)을 중심으로 축성된 다대진첨사영 관할의 해안 성곽. 원래 조선조 초기 경상좌도 부산포진 관할 수군의 진성으로 낙동강 일대의 해안 방어를 위해 축성됐다. 둘레 541.8m, 높이 3.9m의 규모에 성내로 출입하는 동서남북의 4대문을 갖추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다대진성은 다대진첨사 윤흥신 장군과 군민들이 왜군을 맞아 이틀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 그러나 지금은 그 격렬했던 전투의 현장인 다대진성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모두 헐린 후 공공건물 울타리의 밑돌로 쓰였거나 개인 주택의 뒷담으로 그 무거운 세월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몰운대공원으로 가는 해안 산책로.

▲몰운대공원으로 가는 해안 산책로.


다대포 해안을 거쳐 몰운대로 가는 길


몰운대로 향한다. 몰운대 가는 길 중간, 다대포항 주변으로 ‘다대활어시장’이 있다. 어민들이 갓 잡은 싱싱한 활어를 좌판에서 팔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노천시장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한 바퀴 휘휘 둘러보니 자리돔과 용치놀래기(술벵이), 쥐치 등 먹음직한 잡어들과 문어, 낙지, 성게, 개불 등 해산물이 신선하다. 굵직한 구이용 붕장어도 고무대야에서 ‘우당탕’거린다. 몰운대 가는 길에 잠시 눈요기를 하거나 쉬어가도 좋으리라.

 

몰운대로 가는 길 입구 오른쪽으로 다대포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 넉넉한 자태의 낙동강 하구와 모래톱, 곱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는 해수욕장. 갯벌의 생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고우니 생태길’, 세계 최대 규모의 ‘꿈의 낙조분수’ 등 어느 곳 하나 버릴 것 없이 아름다운 자연과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다. 

 

몰운대 길로 들어선다. 초입부터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몰운대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부산시 기념물 제27호인 몰운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잦은 안개와 구름이 짙게 끼어 주변의 풍경이 사라진다 하여 ‘몰운대’라 불린다. 16세기 이전에는 섬이었다가 낙동강에서 밀려온 모래가 쌓여 육지화 된 곳으로, 태종대, 해운대와 더불어 부산의 3대(臺)로 불릴 정도로 해안절리가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몰운대에서 바라본 다대포 야경.

▲몰운대에서 바라본 다대포 야경.


몰운대공원의 다대포객사와 정운공순의비 


산책로 따라 편안하고 한적한 길을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고만 싶은 호젓한 길이다. 동래부사 이춘원이 지은 한시 ‘몰운대’가 새겨진 빗돌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길이 꺾이자 다대포객사가 해를 등지고 서 있다. 다대포객사는 조선후기 다대진첨절제사영에 있던 부속 건물.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축물이다. 원래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건물의 하나로 임금의 전패를 모시고 고을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하여 절을 올리던 곳. 사신들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다대포객사의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1970년 부산유아교육진흥원(옛 다대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했다. 건물 안 구조물과 벽체가 없이 서 있기에 마치 누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대포객사를 뒤로 하고 정운 장군의 충정을 엿볼 수 있는 정운공순의비(鄭運公殉義碑)로 향한다. 정운공순의비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도와 부산포해전에서 순절한 녹도만호 충장공 정운(鄭運)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정운 장군의 8대손 정혁이 1798년 다대첨사로 왔을 때 그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몰운대에 비를 세웠다.

 

정운 장군은 부산포해전 당시 적선 500여 척을 맞아 100여 척을 격파하고 수많은 적군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으나 회군할 때 적의 흉탄을 맞아 전사했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비의 크기는 높이 172㎝, 너비 69㎝, 두께 22㎝이며 앞면에 ‘충신정공운순의비’(忠臣鄭運公殉義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정운 장군의 순절 내력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비석만 서 있었는데 1974년 부산시가 비각을 새로이 세웠다. 매년 음력 9월 1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해안길과 숲길을 돌아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여러 번. 이윽고 몰운대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 초승달 모양의 해변이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모래사장이 화손대 쪽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자갈 구르는 소리가 듣기 좋은 ‘자갈마당’이 보기 좋게 이어진다.

 

전망대에 선다.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발아래 해벽으로 파도가 철썩인다. 찰랑대는 물결은 몰운대 앞 쥐섬에서 여유롭게 흘러간다. 고개를 돌리니 화손대와 모자섬이 보이고, 그 뒤로 작은 고깃배들이 다대포로 귀항하고 있다. 서서히 낙조가 진다. 낙조 따라 다대포의 하루도 그 일상을 접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원준 기사 입력 2018-08-31 부산이야기 9월호 통권 143호
자료출처 : 함께 나누고 싶은 '부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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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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