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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7월호 통권 142호호 기획연재

인도네시아의 영혼 역사와 문화의 도시 족자카르타

세계테마여행 - 인도네시아

내용

인도네시아 국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Indonesia Tanah Airku’ 우리말로 하면 ‘인도네시아 나의 조국이여!’라는 뜻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조국을 ‘따나 아이르’라 한다. ‘Tanah’는 ‘땅’, ‘Air’는 ‘물(바다)’를 말한다.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화산대의 중심에 있는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땅(Tanah)과 적도를 끼고 인도양과 태평양에 걸쳐 있는 푸른 바다(air)의 나라, 세계에서 섬과 화산이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인도네시아다.

 


쁘람바난 힌두사원 전경.
 

▲쁘람바난 힌두사원 전경.

 

해양 실크로드의 중심,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있어 예로부터 인도와 중국, 크게는 서양과 동양을 연결하는 해양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다. 1417년 중국에서 출발해 아프리카까지 항해했던 중국 명나라의 정화 함대가 이곳을 거쳐 갔고, 인류 최초로 세계일주를 했던 마젤란의 함대 역시 1521년 이곳을 거쳐 갔다.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스리위자와 왕국과 마자빠힛 왕국은 동남아 해상무역의 중심이었으며, 찬란한 불교, 힌두문화를 꽃피웠다. 13세기 이후 해상무역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슬람이 전파됐고, 말라카왕국과 마타람왕국이 그 중심이 됐다. 15세기 이곳은 정향, 육두구, 후추 등 향료를 독점하기 위한 서구열강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고, 결국 네덜란드에 의해 350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다.

 

‘하나의 나라’인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이 나라가 ‘인도네시아’로 하나가 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350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던 역사의 아픔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와 착취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어’(1928, 청년선언)라는 선언 아래 하나가 되었고, 1945년 8월 17일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국부 수카르노 대통령은 비동맹 노선을 이끌었고, 30년여 간 수하르토 군부정권 시대를 넘어 지금은 최초의 문민대통령인 조코위 대통령이 아세안(ASEAN)의 중심 국가를 지향하며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

 

동남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이스티크랄사원 기도 모습.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지만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다. 

▲동남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이스티크랄사원 기도 모습.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지만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다. 

 

‘다양성 속의 통일’(Bhinneka Tunggal Ika)은 이 나라의 국시(國是)다.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는 300여 종족이, 600여 개의 종족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성의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2억여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지만 이슬람, 힌두, 기독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한다는 것은 ‘다양성을 향한 여정’이다. 놀랍도록 다양한 자연과 문화를 만나는 길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는 길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는 중부자바의 역사, 문화도시 ‘족자카르타(Jogjakarta)’로 가야한다. 족자카르타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영혼이라 불리는 것은 이 곳에 세계 3대 불교유적 중 하나인 ‘보로부두르(Brobudur) 불교사원’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사원으로 손꼽히는 ‘쁘람바난(Prambanan) 힌두사원’, 그리고 300년 가까이 전통시대의 왕실을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는 술탄 하멩꾸 부워노 왕가의 궁, ‘끄라톤’(Kraton)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있는 세계 최대 불교사원 보로부두르로 향하는 길.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있는 세계 최대 불교사원 보로부두르로 향하는 길.

 

세계 3대 불교사원, 보로부두르(Brobudur) 


보로부두르 불교사원은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미얀마의 ‘바간’과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으로 꼽힌다. 보로부두르는 자바 불교왕국이었던 사일렌드라 왕국시대인 825년 경, 폭 125m, 높이 42m의 9층 건물 높이로 세워졌다. 총 73기의 종탑 모형의 스투파와 504기의 부처상이 있다.

 

보로부두르는 1006년 머라삐 화산 폭발로 800년 넘게 화산재에 묻혀 있다가 1814년 영국 총독 래플즈 경에 의해 세상에 그 존재를 다시 드러냈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 복원사업이 이뤄졌고, 1991년 유네스코는 보로부두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2012년 기네스북은 보로부두르를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보로부두르는 엄청난 규모로 보는 이들을 압도하지만 보로부두르의 진수는 4개 층에 걸쳐 5㎞의 회랑 좌우 면에 새겨진 2,500면의 부조다. 이 부조는 부처의 일생과 가르침을 형상화하였고, 등장하는 인물이 1만 명이 넘는다. 이른 새벽, 여명이 밝아올 때 회랑의 아름다운 조각들이 빛을 받으며 깨어난다. 그 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인류의 가르침과 예술 정신이 가슴을 채운다. 위대한 문화유적은 종교를 초월한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1천 개 탑의 전설 간직한 힌두사원, 쁘람바난(Prambanan)


족자카르타 동쪽에 보로부두르가 있다면, 서쪽에는 쁘람바난이 있다. 족자카르타를 대표하는 보로부두르와 쁘람바난은 40㎞ 정도 떨어져 있는데 가까운 거리만큼 역사적 배경도 서로 연결돼 있다. 보로부두르를 건축한 사일렌드라 불교왕국이 쇠퇴하고, 산자야와 힌두왕국이 이 지역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보로부두르에 견줄 만한 사원을 남기고 싶어 했던 산자야 왕국의 라카이 삐까탄 왕이 건축한 것이 바로 쁘람바난 힌두사원이다.

 

이 아름다운 힌두사원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로로 종그랑(Loro Jonggrang)이라는 아름다운 공주를 사랑했던 한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공주에게 구혼을 했고, 청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공주는 하룻밤에 천 개의 사원을 만들면 구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청년은 미지의 힘으로 천 개의 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천 개의 탑을 완성할 즈음에 위기감을 느낀 공주는 아침이 온 것처럼 속이기 위해 마을사람들에게 밥을 짓고, 불을 피우게 했다. 그 광경을 본 청년은 아침이 온 줄 알고 999개에서 탑 만들기를 그치게 되고 구혼은 실패한다. 하지만 청년은 공주가 자신을 속인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청년이 공주에게 저주를 내린다. 공주는 천 번째 탑으로 변하고, 마침내 천개의 탑이 완성됐다는 이야기다. 이 지역 사람들은 쁘람바난 사원을 로로 종그랑 사원(Candi Loro Jonggrang)으로 부른다.

 

쁘람바난 사원은 전설과 달리 250여 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 복원된 것은 18개 정도다. 18개의 신전 중에 힌두교 3대 신을 모시는 세 개의 주요 신전이 있다. 북쪽에 브라마 신전, 남쪽에 비슈누 신전, 그리고 중앙에 시바 신전이다. 해 질 녘 붉은 노을 아래 자리 잡은 쁘람바난 힌두사원을 바라보면 왜 이 사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사원으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만약 족자카르타에 보로부두르와 쁘람바난만 있다면 이곳을 인도네시아의 영혼이라 부르기엔 부족할 것이다. 족자카르타가 오늘날 인도네시아, 특히 자바인들의 정신적 고향이 된 이유는 300여 년 동안 족자카르타를 지키고 있는 술탄 하멩꾸 부워노 왕가의 왕궁, 끄라톤이 있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와 쁘람바난이 역사적, 문화적 자긍심이라면 끄라톤은 정신적 구심이라 할 수 있다.


술탄 하멩꾸 부워노 왕가의 왕궁인 끄라톤을 둘러보는 사람들.

▲술탄 하멩꾸 부워노 왕가의 왕궁인 끄라톤을 둘러보는 사람들. 

 

자바인들의 정신적 고향, 끄라톤(Kraton) 왕궁  

 

끄라톤은 1755년 자바 마타람 왕국의 전통을 이어 세워진 술탄 하멩꾸 부워노 왕가의 왕궁이다. 하멩꾸 부워노 왕가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자긍심이 된 이유는 300년 가까이 단 한번도 네덜란드 식민통치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왕국을 지켜온 마지막 남은 자바왕국이기 때문이다.

 

족자카르타는 네덜란드와의 마지막 독립투쟁이 뜨거웠던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임시수도였다. 하멩꾸 부워노 9세는 자신의 영지를 기꺼이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내어 놓음으로 조국의 독립과 근대화에 기여했다.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는 감사의 뜻으로 족자카르타를 특별주로 선포하고, 계속해서 술탄의 지위를 인정하였다.

 

족자카르타 특별주는 인도네시아의 34개 주 중에서 유일하게 주지사 선거를 하지 않는다. 정부는 4년마다 술탄을 주지사로 임명하여, 마지막 자바왕국의 전통을 이어주고 있다. 왕국의 영토에 지어진 가자마다 대학교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국립대학으로 이 나라 인재양성의 산실이 되었으며, 조코위 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이 대학 출신이기도 하다.

 

끄라톤 왕궁에는 지금도 하멩꾸 부워노 10세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왕궁에는 전통복장을 한 파수꾼들이 허리춤에 전통무기인 끄리스를 차고 왕궁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끄라톤 인근은 왕국 신하들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물의 궁전으로 유명한 따만 사리와 다양한 궁전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쁘람바난 시바신전에 새겨진 아름다운 부조.

▲쁘람바난 시바신전에 새겨진 아름다운 부조.


다양성의 나라,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는 불교사원, 쁘람바난은 힌두사원, 끄라톤 왕궁은 300년을 이어온 이슬람왕국이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나라인지 잘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기 위해 족자카르타를 여행했다. 다음 여정은 경이로운 인도네시아의 자연을 만나는 여정이다. 다음 호에서는 뜨거운 유황이 흐르는 화산에서,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섬에서 또 다른 인도네시아를 만나보자.

작성자
김도근
작성일자
2018-07-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7월호 통권 142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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