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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어머님 김 맛 그대로 38년 이어오고 있습니다”

1981년 창업, 초기 김 가공시장 이끌어 … 독특한 소스 ‘김 스낵’ 세계 곳곳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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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남광식품 김기종 대표는 ‘김’ 예찬론자다. 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의 대표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김의 효능에 대한 믿음이 철석같다. 철석같은 믿음은 거의 40년 세월을 남광식품과 김기종 대표를 한 길로 이끌어 왔다.  

 

김기종 ㈜남광식품 대표

▲김기종 ㈜남광식품 대표

 

밥반찬에서 안주로 발상 전환 … 김 가공업 시작


남광식품의 전문분야는 김 가공. 김이라면 집에서 기름 발라 구워 먹던 게 고작이던 시절 김 가공이란 ‘신사업’에 나섰다. 2006년 벤처기업 인증, 2011년 부산 명품수산물 인증, 2013년에는 김 가공업체로는 드물게 ‘100만 불 수출탑’을 받았다. 오직 한 길을 묵묵히 걸으며 김의 세계화에 앞장선 향토기업이 남광식품이다.  

 

남광식품이 김 가공 전문업체로 나선 것은 1981년. 동래구 사직동에서 남광식품상사로 출발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김 사랑’ 뿌리는 훨씬 깊다. 어린 시절 생일날 어머니가 기름 발라 구워서 흰밥에 얹어주던 그 맛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김 대표가 1946년생이니 어린 시절이라면 1950년대 초중반. 6·25전쟁으로 인해 다들 힘들고 고달픈 시절이었다. 김도 귀한 음식이라서 생일이나 명절에 겨우 먹을 수 있었다. 남광식품의 진정한 시작은 1981년이 아니라 어린 시절 어머니 김 맛의 기억이랄지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김 대표는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구상했다. 우연히 맥주 안주로 김을 먹었는데 깔끔한 게 좋았다. 김을 술안주로는 생각도 안 하던 시절이었다. ‘이거다’ 싶어 OB맥주 본사로 무작정 찾아갔고 부산과 영남지역 김 공급권을 따냈다. 당시 맥주회사는 생맥주와 함께 안주를 공급했다. OB맥주가 부산과 영남에 공급하는 김 안주는 남광식품이 도맡았다. 

 

김기종 ㈜남광식품 대표는 1981년 창업, 38년째 김 가공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기종 ㈜남광식품 대표는 1981년 창업, 38년째 김 가공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기업이 김 가공업 뛰어들며 동반 성장


“제가 제일 처음 했다고 말은 못 하지만 업계 초창기를 이끈 것은 맞지요.” 

 

남광식품이 창업한 1981년은 한국 김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운 해다. 이전까지 김은 가정에서 연탄불이나 숯불에 조금씩 구워 먹던 거였다. 가공 김은 파는 곳이 없었고 맥줏집 같은 데서 볼 수 있었다. ‘누가 그런 김을 사 먹느냐?’던 시절에 남광식품은 치고 나갔고 김의 역사에 신기원을 썼다. 김 가공회사가 남광식품 말고 몇 군데 있었기에 김기종 대표는 공을 모두에게 돌린다.   

 

시작은 좋았다. 맥주 안주로 김만큼 깔끔한 게 없었다. 그땐 마트가 없어 시장에서 팔았다. 김 한 봉에 50원 하던 시절이었다. 직원 대여섯 명이 부산 전 지역을 오토바이로 배송했다. 한 달에 몇 백만 봉을 팔았다. 그러다 한 3년 힘들었다. 김은 여전히 밥반찬이어서 술안주로는 덜 대중적이었기 때문이다. 반품도 많았다. 고민이 깊었다. 

 

고민이 깊던 무렵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천우신조라면 천우신조였다. 동원 양반김 등 대기업이 김 가공시장에 뛰어들면서 내세운 TV 광고가 가공 김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 88올림픽 전후로는 물량이 달릴 정도였다. 사직야구장 들어서기 전에 공장용지가 길에 편입되면서 1989년 지금의 사하구 장림2동으로 옮겼다. 

 

가공 김이 잘 팔리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대기업과 경쟁했고 우후죽순 생긴 가공회사와 경쟁했다. 남광식품은 맛과 진심, 그리고 신뢰로 버텼다. 그것이 바탕이 돼 초창기 납품하던 대우중공업은 ‘거의 40년’인 지금도 납품한다. 대우중공업 같은 대기업과 도매 유통업체, 학교, 면세점, 자갈치 같은 큰 시장 등은 거의 고정 고객이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급식,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면세점 납품은 맛과 진심, 신뢰와 더불어 영양과 위생을 매우 중시하기에 거기에 납품한다는 자체가 남광식품이 어떤 기업인지 알려준다. 공신력을 중시하는 우체국쇼핑 공급업체이기도 하다.  


김 기종 대표가 포장 과정을 살펴보는 모습.

▲김 기종 대표가 포장 과정을 살펴보는 모습.


원초가 맛 좌우 … 가공 과정도 중요


맛은 어떻게 낼까. 어떻게 해야 감동적인 맛이 나올까. 김 대표는 맛의 50~60%는 원초에서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나머지는 굽는 과정의 여러 조건인 온도와 열·습기·그리고 양념이 좌우한다. 원초는 김밥용 김과 가공용 김으로 나눈다. 서부산 청정해역 김은 틈이 촘촘하고 색깔이 좋으며 맛이 뛰어나 김밥용 김으로 쓰고 가공용 김은 전남 신안과 충청도 바다 것을 쓴다. 일본에선 서부산 김을 최고로 친다. 김 대표는 김 채취가 집중되는 11~3월이면 좋은 김을 얻으려고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살다시피 한다. 김은 반드시 현장에서 사들이며 최상급만 고집한다.

 

김 가공에서 온도 조절은 대단히 중요하다. 더 구우면 탄 맛이 나고 덜 구우면 김이 질기다. 온도만 그럴까. 습기 조절도 중요하고 이물질 제거, 위생관리 등도 대단히 중요하다. 남광식품은 이 모두가 자동화돼 있다. 김의 특성상 100% 자동화는 어렵지만 자동화할 수 있는 과정은 자동화해 일의 효율과 정확도를 높였다. ISO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과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 업체답게 매사 야무지다. 안 그러면 외국 수출은 꿈도 못 꾼다.


김기종 ㈜남광식품 대표는 미국, 중국, 캐나다 등 세계 곳곳으로 김을 수출하고 있다.

▲김기종 ㈜남광식품 대표는 미국, 중국, 캐나다 등 세계 곳곳으로 김을 수출하고 있다.


독특한 소스 김 스낵으로 일본‧중국‧미국 등 수출


“일본, 중국, 미국, 태국, 유럽, 대만, 캐나다, 말레이시아, 러시아, 베트남까지 수출하고 있습니다.” 

 

외국 사람은 어떤 김을 먹을까. 그보다 우리 말고 어떤 나라 사람이 김을 먹을까. 김기종 대표가 김 가공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김을 수출하는 나라는 일본 정도였다. 하지만 밥반찬 김에 술안주 개념을 입히고 건강 간식 개념을 입히면서 김은 글로벌 식품으로 나아갔다. 외국에 사는 교포도 즐겨 찾고 현지인도 즐겨 찾는다. 김치와 함께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홍보대사가 김이다. 

 

농수산물 가운데 김은 참치 다음으로 수출을 많이 한다. 처음에는 ‘블랙 페이퍼(검은 종이)’라며 손사래 치던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김을 가공한 덕분이다. 남광식품은 한국인 입맛에 맞는 김은 물론 외국인 입맛에 맞는 김을 연구 개발한다. 독특한 레시피는 남광식품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기존의 조미김, 김밥용 김, 죽염 재래 김, 모둠 돌김에 아몬드를 붙여 만든 허니 아몬드 스낵김, 김 스낵 칩, 캔 김, 치킨 맛김, 칠리소스 맛김 등은 저열량 건강 스낵으로 고부가 가치를 끌어낸다. 

 

“김으로 부산 대표하는 기업 되고파”


“같은 식품회사끼리 협회를 조직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잘 되고 있습니다.” 

 

부산우수식품제조사협회는 어묵과 제빵, 주류, 가공식품 등 부산을 대표하는 식품 제조업체로 구성한 조직이다. 2017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등록하기 이전 명칭은 부산식품제조사협의회. 협의회 회장이 김기종 대표였다. 성격이 같은 회사라서 갈등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공동마케팅, 품질연구, 대외홍보, 회원사 유대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이었다. 김기종 대표는 내 회사가 잘 되는 만큼 부산 식품제조사가 잘 되길 바라고 부산이 잘 되길 바란다.

 

“보람요? 옛날엔 직원 월급 줄 때가 보람 있었고, 지금은 외국 나가서 슈퍼에 있는 남광김을 볼 때지요.” 

 

남광 직원은 25명 정도. 20년에서 30년 근무한 직원이 대부분이라 모두 가족 같다. 2015년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가족친화인증서’를 받았을 정도다. 다른 건 몰라도 퇴근 하나는 칼이다. 칼퇴근이다. 그래도 걱정은 걱정이다. 젊은 사람 구하기가 힘들고 젊은 남자 구하기는 더 힘들다. 훗날 어떤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을까. 한마디로 해 달랬는데 답이 길다. 세 가지나 된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단 얘기이리라.  “김 하나로 대를 이어 가는 기업인, 김으로 향토를 대표하는 기업인, 김의 세계화에 앞장선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동길산 기사 입력 2018-07-31 부산이야기 7월호 통권 142호
자료출처 : 함께 나누고 싶은 '부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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