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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7월호 통권 141호호 기획연재

“저에겐 감천문화마을이 곧 작품입니다”

조형물·벽화 등 마을 내 작품 6점 설치 … 해외서 더 알아주는 부산 토박이 작가

내용

어린 왕자가 떠날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가 말했어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어른이 되면서 멀어진 감성과 심성을 이야기한다. 글도 그렇고 곁들인 그림도 그렇다.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 만난 여우와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는 순정 그 자체다. 둘은 등을 보이며 나란히 앉아 대화한다. 어린 왕자의 가녀린 등과 여우의 구부정한 등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한다. 등을 보며 나란히 앉은 형상은 책갈피 또는 조형물로 만들어져 어른이 되면서 멀어진 감성과 심성을 자극한다. 

 

감천문화마을 ‘어린 왕자’ 조형물 인기


“이, 얼, 싼!” 평일 오전인데도 줄이 길다.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이들이다. 서울말씨도 들리지만 거의 외국인이다. 마침내 차례가 돌아온 이는 중국인 가족. 부인과 아이 둘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멀리서 왔고 오래 기다린 만큼 위치를 바꿔 가면서 “이, 얼, 싼! 이, 얼, 싼!” 찍고 또 찍는다. 덕분에 ‘하나 둘 셋’의 중국말이 저절로 외워진다. 

 

그들이 줄을 서서 찍은 사진 배경은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조형물이다. 등을 보이며 나란히 앉은 조형물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긴 줄을 섰다. 왕자와 여우는 같은 곳을 바라보기에 같은 곳을 바라보려는 연인이나 가족에게 ‘인기 짱’이다. 

 

조형물이 있는 곳은 감천문화마을. 마을 전체가 명품이고 명물이지만 여기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조형물은 세계가 알아주는 명품이고 명물이다. 감천문화마을로 가려고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에서 환승했던 마을버스 승객 대부분이 젊은 중국인. 저마다 컴퓨터에서 출력한 관광지 정보를 들여다보는데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가 큼지막하게 보인다. 

 

나인주 감천문화마을 입주 작가 

▲나인주 감천문화마을 입주 작가.

 

감천문화마을 주민 순수함 표현한 ‘어린 왕자’


어린 왕자 조형물은 나인주(47) 감천문화마을 입주 작가 작품이다. 2016년 감천문화마을에 입주했고 어린 왕자는 입주하기 전인 2012년 문화관광부의 공공미술사업인 기쁨두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만들었다. 궁금했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가 세계적인 작품이더라도 감천문화마을에 들어선 게 약간은 생뚱맞았다.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마을미술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만난 주민들이 소박하고 순수하시더라고요. 주민들을 만나면서 제가 느낀 것들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어린왕자를 떠올렸어요.”

 

소박하고 순수한 마을주민에게서 소박하고 순수한 어린 왕자를 봤다고 나 작가는 설명한다. 

 

나인주 작가가 감천문화마을과 인연을 맺은 건 2010년.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입주 작가로 있으면서 감천문화마을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때만 해도 감천문화마을은 옛 모습을 지녔다. 오며 가며 마을을 유심히 살폈다. 낡고 오래된 집, 녹슨 창문이며 철문에서 인간미를 느꼈고 그 감정이 작품으로 이어졌다. 건축 미학적으로 대단하진 않았지만 집에 담긴 낮고 구부린 삶의 손때며 시간의 흔적은 하나같이 찡했고 하나같이 장했다.

 

필자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감천문화마을과 가까워 여기 사는 학우가 꽤 있었다. 학우들은 여기를 태극도마을, 또는 피란민마을이라고 불렀다. 마을주민 대다수가 태극도라는 종교를 믿었고 6·25전쟁 피란민이었다. 살림살이는 빡빡했다.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문화적 특성이 여기를 문화마을로 이끌었을까. 부산 토박이 나 작가는 세 가지를 꼽았다. 개발 바람을 타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원형이 보존된 6·25전쟁 무렵의 건축물, 부산의 지역적 특성이기도 한 산비탈 계단식 집, 그리고 이탈리아 부라노섬처럼 알록달록한 색채감이었다. 

 

알록달록한 색채감은 나인주 작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 작가에겐 마을이 곧 작품이다. 나 작가는 ‘어린 왕자’ 조형물 외에도 감천문화마을에 등대 포토존, 아트숍 벽면그림, 입구의 ‘마주보다’ 벽화 등 작품 6점을 그리거나 설치했다. 

 

마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은 온통 알록달록한 수채화. 빨주노초파남보 색색의 집들이 나 작가 작품에 재현된다. 대표적 작품이 산복도로 마을 시리즈로 불리는 ‘마을’ 연작이다. 작품 하나하나 퍼즐처럼 연결되면서 전체를 이루는 ‘마을’ 연작은 마을주민처럼 소박해 보이고 순수해 보인다.


감천문화마을에 설치된 나인주 작가의 작품 ‘어린 왕자’ 조형물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모습.

▲감천문화마을에 설치된 나인주 작가의 작품 ‘어린 왕자’ 조형물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모습.

 

오래된 집에서 나온 목재로 감천문화마을 색색의 집 재현


나 작가가 주로 하는 작품은 입체회화다. 공식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지만 나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그렇게 명명한다. 부산대 미대에서 전공한 조소를 살리면서 회화 요소도 가미한다. 평면작업이 아니기에 여러 재료를 섞어 쓴다. 즐겨 쓰는 재료는 오래된 집을 고치거나 허물면서 나오는 낡은 목재. 닳고 헐었지만 그럴수록 나뭇결이 생생하게 드러나서 좋다. 버려진 옛날 미닫이 문짝, 짜개지고 떨어져 나간 나무 문짝이 작품에서 주는 느낌은 은근하면서 질긴 데가 있다. 

 

나 작가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사람이 아니고 12지신, 동물이다. 쥐·소·돼지·원숭이 등이 작품에 해학을 입히고 재미를 입힌다. 예를 들어 2011년 작품 ‘구멍가게’에는 돼지와 쥐가 등장한다. 돼지는 하드를 빨면서 가게를 지나가지만 돈 없는 쥐는 아이스크림 통을 연신 기웃댄다. 빨래 너는 이도 동물이고 연탄배달 손수레를 앞에서 끌고 뒤에는 미는 이도 동물이다. 12지신은 앙금처럼 가라앉은 오래전 기억을 들추고 사람 마음을 애련하게 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한다. 

 

나 작가 작품은 ‘거리’의 관점에서도 시선을 끈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는 작품이 있고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는 작품이 있다. 요즘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작품을 주로 한다. 멀리서 마을 전체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이 보였다. 마을도 봐야 하지만 사람을 더 봐야 했고 마을도 소중하지만 사람은 더 소중했다. 마을과 사람이 어우러지면서 작업은 경계를 허물었고 작품은 유연해졌다. 

 

2010년 감천문화마을과 인연을 맺은 나인주 작가는 2016년부터 감천문화마을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 작가는 어린왕자 조형물 외에 6점의 작품을 감천문화마을에 설치했다(사진은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나인주 작가의 공방 ‘공공의 방’). 

▲2010년 감천문화마을과 인연을 맺은 나인주 작가는 2016년부터 감천문화마을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 작가는 어린왕자 조형물 외에 6점의 작품을 감천문화마을에 설치했다(사진은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나인주 작가의 공방 ‘공공의 방’).


알록달록 부산 풍경 … 해외 반응 남달라


경계 허물기는 창작의 근본. 나 작가 역시 작품을 틀에 가두지 않는다. 입체와 회화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그렇고 프레임의 사각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도 그렇다. 울산대와 서울디지털대 회화과 강의도 마찬가지. 프레임에 갇히면 틀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스스로 경계를 허물어 튀어 나가라고 가르친다. 나 작가 작품에 나타나는 알록달록한 색채감도 경계를 허문 산물이다. 요즘은 입체 작업이 컬러풀하지만 나 작가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돌이나 브론즈 등 단색 작업이 주류였다. 어린 왕자와 감천문화마을의 생뚱맞은 결합 또한 발상의 경계를 허문 덕분이다. 

 

“제 작품에 나오는 집이나 인물은 한국에선 익숙한 풍경이지만 해외에선 반응이 남달라요.” 

 

감천문화마을은 외국인이 찾는 세계적 명소. 외국인이 인터넷에서 검색해 프린트해 들고 다니는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의 작가 또한 세계적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싱가포르와 홍콩만 봐도 그렇다. 싱가포르는 남방국가라서 회화 색채에 관심이 높다. 그래서 알록달록한 나 작가 작품이 꽤 대접받는다. 아트페어가 열린 홍콩은 중국권이라서 작품에 등장하는 12지신이 공감대 폭을 넓혔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나인주 작가. 감동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접점에서 싹을 틔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합일에서 꽃을 피운다. 어린 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막의 샘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감동적이기도 하다. 샘을 둘러싸고 싹 틔우고 꽃 피우는 나 작가 작업세계는 또 얼마나 감동적일 텐가.

작성자
동길산
작성일자
2018-06-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7월호 통권 141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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