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6월호 통권140호호 기획연재

역사와 전통문화 어우러진 ‘수영사적공원’ 조선시대 좌수영 5일장 이어온 ‘수영팔도시장’

내용

수영구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수군 군영과 관계가 깊은 지역이다. 조선시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거니와, 수영강과 현재 광안리해수욕장이 있는 남촌(南村) 등 아름다운 풍광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수영강을 중심으로 팔도시장과 수영사적공원 일대를 ‘수영’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이곳에 주둔했던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의 ‘수(水)’와 ‘영(營)’을 따 붙여진 지명이다. 이 수영지역이 남구와 분구되면서 남천동, 광안동 등과 더불어 지금의 수영구를 형성하고 있다. 

 

수영농청놀이 

▲수영농청놀이.

 

부산 동남해안을 방어하던 수영을 중심으로, 길 위에 남겨진 부산의 역사를 따라 걸어본다. 특히 수영사적공원 내 좌수영성지와 25의용단, 안용복 장군 사당인 수강사, 수영민속예술관 등과 최영 장군 사당인 무민사, 좌수영성의 군선이 정박해 있던 선소(船所)를 알리는 선소유허비 등을 돌아본다.

 

수영사적공원 안에 있는 푸조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11호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고목으로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당산목으로, 신이 깃든 지신목으로 알려져 있다.

▲수영사적공원 안에 있는 푸조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11호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고목으로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당산목으로, 신이 깃든 지신목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과 좌수영성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은 ‘경상좌수영’이라 불렀는데, 조선시대 동남해안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의 침입을 막고 바다영토를 관할했던 수군이 주둔하던 군영이었다. 원래 동래현 부산포에 있었으나 울산 개운포, 동래 남촌(수영구 수영동), 감만이포(감만1동) 등으로 옮겨 다니다, 조선 효종 때 수영동으로 옮겨와 고종 때까지 존속한다. 

 

‘경상좌수영성’은 경상도 인근에서 가장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던 성이었으나, ‘징비록’에 의하면 ‘4월 13일 왜병이 국경을 침범해서 부산포를 함락하자 경상 좌수사 박홍이 적의 세력이 큰 것을 보고 감히 출병하지 못하고 성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안타까운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때 수영구 수영동·망미동·광안동 일대에 둘레 2천785m 규모의 성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허물어지고 지금은 성벽의 흔적, 성문, 하마비 등 성터의 유적만이 일부 남아있을 뿐이다.

 

수영사적공원 부근에는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지키다 장렬히 순절한 25명의 의로운 충절을 기리고 있는 ‘25의용단’을 비롯해 왜인들에게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약 받아온 안용복 장군의 사당인 수강사, 천연기념물인 곰솔나무와 푸조나무 등이 있다. 또 부산의 무형문화재를 보존·전승하는 수영민속예술관도 자리하고 있다. 

 

수영사적공원 내에는 안용복 장군의 위패를 모신 ‘수강사’가 있다.

▲수영사적공원 내에는 안용복 장군의 위패를 모신 ‘수강사’가 있다. 

 

수영사적공원 내 천연기념물 푸조나무와 곰솔나무


수영사적공원 안에는 천연기념물인 곰솔나무와 푸조나무가 오랜 세월 수영성을 지키며 자리 잡고 있다. 그중 ‘푸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나무로 높이 1.08m, 수령 500년이 넘은 고목이다. 천연기념물 제311호.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6m가 훌쩍 넘는다.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당산목으로, 신이 깃든 지신목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할머니의 넋이 깃들어 있어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좌수영지의 또 다른 고목인 곰솔나무는 400년은 넘긴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제270호다. 바닷가에서 잘 자란다 하여 해송이라 부르기도 하고 줄기 껍질이 검다고 하여 흑송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무의 높이는 23m로 경상좌수영 주둔 시절 군과 군선을 보호하는 군신목으로 여겨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안용복 장군 사당 ‘수강사’와 ‘25의용단’


좌수영성지 남문 터에서 바라보면 안용복 장군의 동상과 사당인 ‘수강사’가 눈에 들어온다. 안용복 장군은 조선 숙종 때 독도를 무단으로 드나들며 어로활동을 하던 왜인을 내쫒고, 두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건너가 에도막부로부터 다시는 독도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았던 위인. 그의 의로운 업적을 기려 후세 사람들이 그에게 장군의 칭호를 붙이고, 현 위치에 동상과 사당을 세워 추모해 오고 있다. 

 

‘25의용단’은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지키며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한 25명의 의로운 충절을 기리고 있는 제단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수사 박홍이 수영성을 버리고 떠난 후, 수영성 사람들은 성에 진주한 왜군들에 의해 무참히 죽임을 당한다. 이를 보다 못한 수영성의 병사와 주민 25인이 7여 년 동안 유격전을 펼쳐 왜군에게 끈질기게 저항을 한다. 이들의 충절과 의기를 기리고 추모하고자 세운 기념물이 ‘25의용단’이다.

 

수영팔도시장은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을 중심으로 발달한 좌수영장을 유래로 하고 있다. 

▲수영팔도시장은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을 중심으로 발달한 좌수영장을 유래로 하고 있다.

 

수영지역 전통문화 보존·전승하는 수영민속예술관


‘수영민속예술관’은 수영지역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건립됐다. 1천223㎡(약 370평) 1천500석 규모의 놀이마당을 갖추고 있으며, 부산시 중요무형문화재인 수영야류(43호), 좌수영어방놀이(62호), 수영농청놀이(2호) 등을 주관하는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가 입주해 있다.  250년 역사를 가진 수영야류는 정월 대보름날 저녁,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던 수영마을의 축제이다. 타락한 양반계층을 희롱하는 서민의 탈놀음을 마당놀이로 재미나게 펼쳐놓는다. 수영강과 남촌지역의 멸치잡이 후리소리를 놀이화 한 ‘좌수영어방놀이’와 좌수영 지역 농사협업체인 농청의 회원들이 고된 농사일을 노랫가락과 춤으로 승화시킨 ‘수영농청놀이’ 등도 계승·보전하고 있다. 수영민속예술관 내 ‘수영사적원’은 수영의 오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이다. 수영지역의 민속자료와 좌수영성지의 역사적 배경, 수영야류 등 전통문화재, 민속놀이 소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수영성에는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성이 있었는데, 성문마다 문루가 있어 적을 감시하고 성내 출입을 통제했다. 문루에는 큰 북을 달아 시각을 알리기도 했다. 이중 동·서·북문은 남아있지 않고, 주작문(朱雀門)으로 불리던 남문 일부가 현재 팔도시장이 보이는 수영사적공원 입구에 소재하고 있다.  

 

현재 남문에는 성벽 일부와 홍예석, 우주석, 하마비 등이 남아 있다. 성벽은 홍예석을 중심으로 좌우 10m 정도가 남아 있는데, 기단석은 높이 1.3m이다. 성벽과 짝을 이룬 아치형의 미려한 홍예석은 공원의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전면 양쪽의 우주석에는 조선시대 도둑을 지키는 용맹스런 개, 박견(狛犬) 한 쌍이 버티고 앉아있다. 우주석 옆 오른쪽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원래 남문자리는 현재 수강사 인근에 있었으나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고, 원 자리에는 ‘남문터’란 표지석을 남겨두고 있다.  수영팔도시장은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을 중심으로 발달한 좌수영장을 유래로 하고 있다. 1832년에 간행된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에 따르면 좌수영장은 매월 5일, 10일에 장이 서는 5일장으로 기록돼 있다. 좌수영성 주민과 군영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수영강을 끼고 다양한 물산이 집산되던 장이 오늘에 이어져 오고 있다. 

 

수영강은 기장군과 해운대구, 수영구를 흐르는 강이다. 1652년 강 하구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면서 수영천 또는 수영강으로 불리게 됐다. 

▲수영강은 기장군과 해운대구, 수영구를 흐르는 강이다. 1652년 강 하구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면서 수영천 또는 수영강으로 불리게 됐다.

 

수영성 남문과 팔도시장  최영 장군 사당 ‘무민사’


남문에서 팔도시장을 지나 수영성로 3번 길을 따르면, 마을 가운데에 최영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무민사(武愍祠)가 나온다. 이전에는 무녀들이 큰 바위 등에서 최영 장군의 영정을 걸어놓고 굿을 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건립하게 됐다고. 건립 시기는 1960년대다. 

 

사당 안에는 최영 장군의 영정이 걸려 있고, 그 아래 ‘최영(崔塋) 장군신위(將軍神位)’라는 나무 위패가 놓여 있다. 사당 뒤편에는 집채만 한 바위가 하나 서 있는데, 이 바위를 사람들은 ‘선서바위’라 한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에 군사들을 지휘하던 장군들이 이곳에 모여 전략 회의를 하고 필승을 다짐하는 선서를 했다고 ‘선서바위’라 한단다. 

 

선소 유허비는 수영현대아파트 입구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의 선소가 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를 말한다. 좌수영성 동문 밖은 수영천과 이어져 있는데, 이곳에 제방을 쌓고 군선을 정박해 두거나 건조·수리하고 관리하는 시설물인 선소를 설치했다. 비석 위쪽에는 노계 박인로의 시 ‘선상탄(船上歎)’을 적고, 아래쪽에는 선소의 위치에 대한 역사적 추정 사유를 적어놓았다.

 

수영강에 선다. 강 너머 영화의전당과 나루공원 등 센텀시티가 보인다. 수영강은 기장군과 해운대구, 수영구를 흐르는 하천. 1652년(효종 3년) 강 하구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면서 수영천 또는 수영강으로 불리게 됐다.

 

회동 수원지를 거쳐 남으로 흐르는 수영강은 해운대구 재송동에서 온천천과 합류해 수영만으로 유입된다. 수영강이 유입하는 하구에는 소규모의 수영강 삼각주가 형성돼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수영 비행장으로 이용되다가 센텀시티가 들어서면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됐다. 한때 수영강변으로 부산골프장, 수영해수욕장 등이 소재하기도 했다.

작성자
최원준
작성일자
2018-05-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6월호 통권140호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