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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2월호 통권 136호호 기획연재

구포 만세길·구포국수·구포역·구포나루 포구가 간직한 이야기 따라 걷는 길

걸어서 만나는 부산 역사 ②북구 구포역사길

내용

북구 구포(龜浦)는 ‘거북이 포구’란 뜻으로 구포지역의 주산인 범방산의 한줄기가 마치 물을 마시기 위해 낙동강을 향해 고개를 쭉 뻗은 거북이를 닮았다 하여 지어졌다. 구포는 낙동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 예부터 구포나루를 중심으로 수운이 발달, 주변 해안·평야지역과 동래지역에 이르기까지의 물류가 모여들고 또 나눠지던 곳이다. 때문에 조세창고와 구포장이 오랫동안 번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6·25전쟁 때는 구포장터 주변에서 생산하던 구포국수가 곤고한 피란민들의 한 끼 식사로 사랑받았었다. 이번호 ‘걸어서 만나는 부산 역사’는 북구 구포지역의 근대역사가 서려 있는 ‘구포 만세길’의 구포역·구포나루·구포국수체험관·북구근대역사관·구포장터 등을 따라 걸어본다.

 

구포 만세길.

▲구포 만세길. 

 

구포나루터 위에 세워진 도시철도 ‘구포역’ 

 

도시철도 3호선 ‘구포역 전망대’에 선다.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하다. 한눈에 들어오는 낙동강의 유장한 흐름에 가슴조차 출렁인다. 이곳 전망대는 시원하게 펼쳐진 낙동강과 김해평야 등 서부산지역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어서 좋다. 낮에는 드넓은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을 볼 수 있고, 저녁에는 산에 걸쳐진 붉은 놀의 장관을 볼 수 있으며, 밤에는 멀리 강서구의 야경과 하늘의 별빛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망원경도 설치돼 있어 김해평야와 낙동강 철새들의 군무를 관망할 수도 있고, 벤치에 편히 앉아 조용히 쉬기에도 좋다. 전망대 아래로는 강변대로가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수많은 차량이 쏜살같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다. 

 

도시철도 구포역은 구포나루터 위에 세워졌다. ‘구포나루’는 낙동강을 건너 강서 쪽으로 드나들던 사람과 물류를 실어 날랐던 곳이다. 특히 1628년 강안의 고을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보관하던 조세창고인 감동창이 설치되면서부터는 더욱 번성하게 된다. 구한말 부산, 경남의 상권을 장악했던 구포객주와 1912년 조선인들이 세운 구포은행, 1930년대에 번성했던 정미업 등도 모두 구포나루를 중심으로 번창일로를 걷게 된다. 이후 낙동강에 구포교가 놓인 뒤에도 1980년대 중반까지 구포~대동 나룻배를 꾸준히 운행하는 등 뱃길을 지켜냈다. 하지만 뱃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2005년 도시철도 3호선 구포역이 들어서면서 구포나루터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구포상설시장 입구.

▲구포상설시장 입구. 

 

낙동강제방과 역사 속에 묻힌 구포다리

 

구포나루 인근 강변으로는 ‘낙동강제방’이 길게 이어져 있다. 강변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낙동강제방’은 낙동강 홍수 방지와 낙동강 주변 농경지 확보 등을 위해 1931년 축조하기 시작, 5년 만인 1935년 완공됐다. 1908년 12월 일제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16년부터 ‘낙동강대치수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이후 ‘낙동강 일천식 개수공사’로 지금의 낙동강제방이 축조된다. 당시 낙동강 본류였던 서낙동강을 대동과 녹산 등 2개의 수문으로 유량을 조절해 평야지대로 만들고, 동낙동강을 본류로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낙동강 최초의 다리인 ‘구포교’는 1932년부터 2008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개통 당시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이기도 했다. 때문에 ‘낙동장교(洛東長橋)’라고 불렀으며, 영도대교와 함께 부산시를 상징하는 다리였다. 옛 구포교에서부터 구포역에 이르는 지역의 번지는 대부분 1060-1, 1060-2 등의 주소를 사용했는데, 지번의 ‘1060’은 구포교의 총길이에서 따온 것이다. 도시철도 구포역 인근 낙동강제방에는 ‘구포장터 3·1만세운동 기념비’가 설치돼 있다.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은 경성의전에 다니던 양봉근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지역청년들이 3월 29일 정오, 장날을 맞아 모인 상인·농민·노동자 등 1천200여명과 함께 구포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항일의거이다. 이 만세운동으로 김옥겸 선생 등 지역의 의인 43명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기념비의 뒷면에는 이들 4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길을 건너 구포역 쪽으로 향한다. 길을 걷다 보면 ‘우리은행 구포지점’이 보인다. 건물 앞에는 ‘우리은행 구포지점은 1912년 9월 21일 개점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렇다. 이곳은 1912년 당시 ‘구포저축은행’이 있던 자리다. 

 

구포국수 만들기 체험을 하는 어린이들.

▲구포국수 만들기 체험을 하는 어린이들.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은 구포의 정신

 

‘구포저축은행’은 1912년 지역의 선각자 윤상은과 구포객주를 중심으로 민족자본이 출자해 개설한 구포지역 최초의 은행이었다. 이후 ‘조선상업은행 구포지점’ 등을 거쳐 지금은 ‘우리은행 구포지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길을 걸으면 ‘구포역 광장’과 ‘구포역(경부선)’이 나온다. ‘구포역 광장’은 구포지역의 예술문화행사가 심심찮게 펼쳐지는 곳. 지역 예술인들의 음악공연도 열리고 공예품 아트마켓도 펼쳐지는 공간이다. ‘구포역(경부선)’은 낙동강 하류의 물류를 모아 서울로 실어 보내는 역으로 1903년 개설됐다. 1930년대 일제에 의해 낙동강제방과 구포다리가 개설되고 구포장이 번창하면서 주요한 교통요충지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도 낙동강을 중심으로 대구까지의 운송과 물류를 일정부분 담당하고 있다. 구포역에서 구포시장에 이르는 ‘구포 만세길’을 따라간다. 이곳 ‘구포 만세길’은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구포역사 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는 곳. 구포역 철길 벽면에는 항일운동 관련 벽화들이 길을 따라 이어지고,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의 정보도 자세하게 전시해 놓았다. 일본군 주재소도 재현해 놓고 군데군데 포토 존도 설치해 놓았다. 구포 만세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구포지역의 특산품인 구포국수의 모든 것을 알아보고 체험할 수 있는 ‘구포국수체험관’이 나온다. 구포국수체험관은 구포국수 판매는 물론, 맛볼 수 있는 식당과 제면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관, 그리고 구포국수역사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포국수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구포국수역사전시관’.

▲구포국수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구포국수역사전시관’. 

 

구포국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구포국수체험관’

 

2층 체험관에서는 체험신청을 통해서 직접 구포국수를 만들고 맛볼 수 있다. 어린이들의 체험교육장소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단다. 3층으로 올라가니 구포국수역사전시관이 맞이한다. 입구에 대형 구포국수 모형이 방문객들의 발길을 끈다. 전시관에는 구포국수의 유래와 역사, 구포국수 제조과정, 구포국수를 이용한 다양한 국수들, 구포국수의 특징 등 구포국수에 대한 정보를 전시해 놓았다. 구포국수체험관 옆에는 북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북구근대역사관’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문화예술플랫폼B’가 있다. 1층은 북구근대역사관, 2층은 입주작가 창작공간, 3층은 야외작업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입구에는 ‘양산군수 심능섭 수덕불망비’와 ‘구포장터 화재의연 기념비’가 서 있다. 수덕불망비는 조선시대 구포의 감동진 나루터 언덕 위에 정부의 조세창고인 남창이 있었는데, 당시 부역을 공평히 해준 심능섭 군수의 공덕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화재의연 기념비는 1914년 옛 구포장터 화재 당시 새 시장을 건립하기 위해 구포사람들이 의연금을 출연한 기록을 새긴 비석이다. 

 

구포장은 구포상설시장과 오일장을 통칭하는 이름이다(사진은 구포상설시장 모습).

▲ 구포장은 구포상설시장과 오일장을 통칭하는 이름이다(사진은 구포상설시장 모습). 

 

17세기 만들어진 ‘구포장’ … 6·25전쟁 이후 국수로 번창

 

‘북구근대역사관’은 부산 북구의 근대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놓은 공간이다. 낙동강의 수운을 이용한 물류요충지였던 구포의 역사와 구포의 인물들, 구포만세운동 등 구포의 근대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문화예술플랫폼B는 지역의 예술작가들이 입주해 창작·전시·판매를 하는 공간이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공예작품들을 직접 감상하고 살 수 있게 조성해 놓았다. 구포시장으로 연결되는 굴다리를 지난다. 이곳 벽면에는 ‘구포장터 3·1만세운동 기념비’ 사진과 만세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43명의 의인 명패를 전시해 놓았다. 또 다른 벽면에는 북구의 도시 변천사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고, 굴다리를 오르는 곳에는 구포시장과 지역의 명소를 소개하는 액자를 걸어뒀다. 굴다리를 건너자 멀리 구포시장의 아케이드가 눈에 들어온다. 구포장의 역사는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구포장은 17세기 포구가 들어설 무렵부터 시작됐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환경으로 조선시대 영남지역의 백화와 만물이 모여들던 장터였다. 현재의 구포장은 구포상설시장과 오일장(3·8장)이 함께 통칭된다. 가축시장골목, 농수산물골목, 약재골목 등 골목골목마다 싸고 풍성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6·25전쟁 이후에는 국수산업으로 번창하게 되는데, 당시 싼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구포구수는 싸고 맛이 좋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브랜드가 되기도 했다. 

 

작성자
최원준
작성일자
2018-02-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2월호 통권 136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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