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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1월호 통권 135호호 기획연재

“책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자 끝 책에 부산의 꿈·희망·미래 담고 싶어”

Great! 부산 -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

내용

록밴드 보컬·연출과 각본·라디오 진행·TV 패널·문화기획자·사회적기업 공동대표·지역잡지 편집장·인문학 강의 100회·사회학자·집필자, 그리고 출판사 대표.  

 

하나 해내기도 벅찬 이 많은 일을 마흔에 이르기 전에 해낸 사람이 있다. 호밀밭출판사 장현정 대표(43)다. 군 복무할 때 수필로 등단했고 스물두세 살에 시집과 음반을 냈다. 음반은 ‘전문가들이 뽑은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 선정됐다.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  

 

출판사 대표·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활동

 

“고등학교 2학년 때 밴드를 시작했습니다.” 

 

다방면에 푹 빠졌고 지금도 빠져있는 장 대표가 가장 먼저 빠진 분야는 록 음악이다. 음악 할 때는 음악이 가장 좋았다는 장 대표. 배정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선물로 받은 테이프가 인생을 바꿨다. 테이프에 실린 ‘퀸’이며 ‘비틀스’ 음악이 정말 좋았다. 2학년 올라가면서 학교에 ‘하늘소’란 밴드가 있다는 걸 알았고 찾아가 오디션을 거쳐 입단했다. 시선을 학교 바깥으로 확장했다. 중학교 동창이 주축이 된 동천고 밴드 ‘한가람’과 남일고 ‘하얀 종이’ 등과 어울렸다. 소극장을 빌려 공연했다. 그게 고등학교 2~3학년 때였다. 꽤 유명해졌다. 군대 갔다 와서 다시 의기투합했다. 아예 서울로 가서 판을 벌였다. 장 대표는 제대 두 달 만에 서울로 갔다. 홍대 앞에서 4년 반을 록밴드 ‘앤(Ann)’의 보컬로 지냈다. 그때 낸 1집 앨범이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 들었다. 장 대표의 최종 학력은 부산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현재 사회학자로, 그리고 인문학자로 책도 내고 강연도 다니지만 학부 입학은 경성대 경제학과였다. 1993년에 입학했다. 그러나 음악에 푹 빠진 터라 공부는 도통 흥미가 없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자 자퇴하고 음악만 했다. 그러다 군에 갔다. 그때서야 아들의 자퇴 사실을 안 아버지가 노발대발했다. 다행히 6년 안에 재입학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어 복학했다.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는 록밴드 보컬·문화기획자·사회학자·잡지 편집장·사회적기업 대표 등 다양한 경험을 가졌다. 사회학 박사 과정을 마칠 때쯤 호밀밭출판사를 차려 지역 작가 발굴에 힘을 쓰고 있다.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는 록밴드 보컬·문화기획자·사회학자·잡지 편집장·사회적기업 대표 등 다양한 경험을 가졌다. 사회학 박사 과정을 마칠 때쯤 호밀밭출판사를 차려 지역 작가 발굴에 힘을 쓰고 있다.  

 

책에 빠져 사회학 대학원 입학

 

가까스로 졸업은 했다. 서울에서 음악 하느라 수업은 제대로 못 들었지만 공연이 학점에 반영됐다. 입학 9년 만에 거의 ‘D’학점으로 졸업했다. 서울에서 음악만 하던 4년여, 어느 날 싫증이 났다.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노래를 부른다는 게 피곤해졌다. 무대에서 내려가고 싶었고 무대 아래서 섞이고 싶었다. 음악을 접고 부산으로 왔다. 주변에선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진 못했다.

 

“2년 동안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어요.” 

 

한 10년 음악만 하다가 그만두니 막막했다. 별다른 기술도 없었고 장 대표 말마따나 ‘요리도 못했다.’ 친한 친구는 음악 하느라 서울에 있으니 만날 사람도 별로 없었다. 집 근처 수영구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였다. 아침에 가서 점심은 라면으로 때웠고 해 질 무렵이면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하니 막막했고 허무했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건 좋았다. 적성에 맞았다. 서울에 있으면서 작사하려고 책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책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고1 때 받은 음악 테이프가 인생 항로를 이끌었듯 수영구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인생 항로를 또 바꿨다. ‘현대와 탈현대의 사회사상’이란 철학책이었다. 저자 소개를 보니 근처에 있는 부경대의 정경갑 교수였다. 바로 찾아갔다. 장 대표 이력과 속사정을 들은 정 교수는 부산대 사회학과 박재환 교수를 추천했다. 장 대표를 만난 박 교수는 석 달 후 치를 대학원 시험 응시를 권했다. 2년 동안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 ‘계통 없이’ 읽으며 무료하게 지내던 장 대표에게 드디어 목표가 생겼다. 목표가 생기니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구한테도 부끄럽지 않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손가락 엄지와 검지를 한껏 벌린 두께의 책 예닐곱 권을 달달 외웠다. 수석으로 합격했다.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는 올해부터 번역서 출판 등 보다 공격적으로 출판사를 운영할 계획이다(사진은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와 직원들).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는 올해부터 번역서 출판 등 보다 공격적으로 출판사를 운영할 계획이다(사진은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와 직원들). 

 

박사과정 마칠 즈음 출판사 차려

 

이쯤에서 부모에 관해서 물었다. 흔히 하는 말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엇길로 간 아들을 둔 부모의 속은 오죽 탔을까. 그런 아들이 대학원 시험에 1등을 했으니 오죽 기뻤을까. “부모님이 되게 좋아하셨어요. 아버지는 권위적이셨고 어머니는 부드러우셨죠. 그때 처음으로 효도하는 기분이었어요. 음악 관두고 부산 와서 햇볕 따스한 토요일 오후였어요. 국수 삶는 어머니 곁에서 호박 같은 걸 썰며 도와 드리는데 어머니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현정아, 서울대 가고 뉴욕 가고 교수 되고 장관 되는 사람 하나도 안 부럽다. 나는 너랑 이렇게 있는 게 참 좋다.’ 가슴이 찡했죠.”  출판사를 차린 건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 때였다. 2008년 11월이었다. 그동안 결혼했고 아들 주호와 딸 지원이 생겼다. 2016년 펴낸 장 대표 잡문집 ‘무기력 대폭발’ 제목 글씨를 딸아이가 썼고 새와 물고기 삽화를 아들이 그렸다. 출판사를 차린 건 현실과 이상의 접목이었다. 가정을 건사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와 함께 한국이 가진 ‘지식 식민성’ 극복과 지역이 가진 ‘문화 정체성’ 구현을 동시에 이루고 싶었다. ‘지식 식민성’이 뭘까. 미국을 예로 든다. 미국은 영어권 책이 90%인데 한국은 번역서가 70∼80%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그게 지식 식민성이란 얘기다.  

 

“누구든 검열이나 비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글 쓰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이름이에요.” 

 

출판사 이름 ‘호밀밭’은 20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따왔다. 출판사 이름을 궁리하다가 고1 때 읽은 그 소설이 떠올랐다. 읽을 당시 소설 주인공 나이와 장 대표 나이가 같아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소설에서 말하는 호밀밭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넓은 장소. 호밀밭에서 절벽으로 떨어지면 부조리한 세상에 섞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호밀밭출판사는 문화예술인이 자기의 사상 또는 상상을 제약받지 않고 마음껏 펼치는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인문·예술·지역 … 다양한 분야 저자 발굴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한국에서 보내는 편지’ ‘다르지만 같은 노래’ ‘삶은 생각이다’ ‘삶으로 생각하기’ ‘다시 루쉰에게 길을 묻다’ ‘손잡고 허밍’ 호밀밭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다. 장 대표 본인이 글 쓰고 책 내는 걸 좋아해 출판사를 차렸다. 본인 저서 ‘소년의 철학’과 ‘록킹 소사이어티’도 호밀밭에서 냈다. 호밀밭 단행본은 40여 종이 넘는다. 인문사회와 문화예술, 지역과 일상 등 주제가 다양하다. 엄정하게 선정하므로 대부분 단행본이 각종 공공기관 우수도서나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이정임 소설집 ‘손잡고 허밍’은 2017년 부산작가상을 받았다. 그간 호밀밭출판사는 지역과 국내 저자 위주로 책을 냈다. 비판적이며 다르게 생각하는 저자를 지역과 국내에서 찾았다. 새해부터는 시선을 해외로 확장한다. “2018년부터 번역서도 내고 공격적으로 하려고 해요.” 3~4월쯤 첫 결실이 나온다. 프랑스 저서 ‘못난 여성의 역사’다. 판권계약을 마쳤고 현재 번역 중이다. 일본 서적도 두 권 판권계약 교섭 중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지역과 국내 저자 전략과 함께 번역서 발간, 그리고 청년문화와 비주류문화, 성 소수자 등에 대한 담론을 활발하게 펼칠 작정이다. ‘책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호밀밭출판사 블로그가 표방하는 구절이다. 장 대표가 인문학 강연 첫머리에 곧잘 인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글을 안 쓰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식당을 차리더라도 시작은 책이다. 요리책을 보고, 인테리어 책을 본다. 끝도 마찬가지다. 사업을 마무리하면 보고서를 쓰거나 백서를 낸다. 그만큼 책은 우리 일상과 밀접하다. 문화와 책은 더욱 그렇다. 문화의 시작과 끝, 문화의 핵심이 책이란 믿음으로 장 대표는 출판사를 차렸고 책을 낸다. 먼 훗날, 부산 문화계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인터뷰 마지막에 물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고. 대답은 이내 돌아왔다. 

 

“제 이름을 남기기보단 지역에서 좋은 저자를 찾아내려고 애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작성자
동길산
작성일자
2018-01-0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1월호 통권 135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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