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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아픈 역사 딛고 자라는 시민의 숲에서 인문의 숲을 만나다

부산, 걷다 읽다 반하다 - 부산시민공원과 북카페 숲

내용

부산시민공원은 역사의 공간이다. 미국 군사시설이던 캠프 하얄리아가 이전한 후 부산시민의 염원을 모아 시민공원으로 만든 곳이다.

 

하얄리아부대는 원래 일제 강점기 때 경마장이었다. 이곳에 최초로 경마장이 들어선 것은 1930년이지만 그 기원은 이보다 앞선다. 일본 침략의 상징이던 경마장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군 병영이 들어섰고, 1945년 일본 패망 후 미군이 주둔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미군은 철수했지만 1950년 6·25 전쟁 발발로 미군 사령부가 다시 주둔하게 됐다. 우리 땅이면서도 우리 땅이 아니었던 아픈 역사의 공간은 2006년 8월 미군기지가 폐쇄된 후 비로소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품은 땅은 아픔의 힘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부산시민공원 북카페 숲에서는 부산시민공원의 숲이 보인다. 멀리 부산시민공원의 나무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이곳에 깃든 역사적 의미를 곱씹으며 책을 읽는 재미는 깊고 그윽하다. 

▲부산시민공원 북카페 숲에서는 부산시민공원의 숲이 보인다. 멀리 부산시민공원의 나무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이곳에 깃든 역사적 의미를 곱씹으며 책을 읽는 재미는 깊고 그윽하다. 

 

100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역사의 공간은 시민모두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했다. 지리적으로 부산의 심장부인 이곳에 공원이 들어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2014년 5월 1일 부산시민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부산시민공원은 시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공간이다.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 5개 주제로 조성됐다. 부산의 심장부를 대표하는 새로운 공공 경관과 치유, 새로운 가능성의 축적의 장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공원으로 만들어졌다. 

 

부산시민공원에는 공원의 나무와 숲 사이에 숨겨진 장소인 북카페 숲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북카페 숲이 있는 건물은 옛 사령관 관사였다. 이곳은 하얄리아 부대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으로 부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고 한다. 사령관 관사로서 최적의 자리였던 셈이다. 부대를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지금은 책의 숲이 자란다. 

 

책을 판매하지 않는 대신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서가에 꽂힌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그 자유로움이 아이들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한다. 

▲책을 판매하지 않는 대신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서가에 꽂힌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그 자유로움이 아이들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한다. 

 

북카페 숲의 초겨울은 고즈넉하고 깊다. 서쪽으로 난 창으로 초겨울의 햇살이 깊게 카페를 비추면, 멀리 숲 너머로 날아가는 새들의 여윈 날개짓이 보인다. 텅 빈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살은 체에 걸러진 사금파리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책장을 넘기는 손등을 부드럽게 잡아준다. 겨울 햇살이 손을 잡아주는 공간에는 보글보글 찻물이 끓고, 아이들은 뛰어 논다. 카페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힘찬 발걸음을 조용히 다독이는 손길이 있다. 아이들을 타이르는 엄마들의 나지막한 목소리, 책을 읽고 있는 어르신들의 부드럽지만 따끔한 눈초리다. 그리고 하나 더있다. 바로 보이지 않는 책들의 손이다. 

 

서가에는 누군가 읽고 남겨둔 책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다. 아동 도서, 시와 희곡, 소설, 전집, 경제. 주제별로 분류된 책들은 낡았으나, 그 낡음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책, 모르는 한 사람의 눈길이 닿았던 책을 통해 나와 그는 소통하고 만난다. 그가 읽었던 한 줄의 문장을 따라 나의 시선이 흐른다. 초겨울 햇살처럼 맑고 투명한 숲길을 따라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부산시민공원 북카페 숲은 책을 통해 모르는 타인과 만나는 공간이다. 역사의 아픔을 딛고 만들어진 시민의 공원에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끌고 온 역사와 문학과 철학이 이룬 지고한 인문의 숲을 만나는 공간이다.

 

북카페 숲 전경.
▲북카페 숲 전경. 

 

북카페 숲은 시민공원의 구석진 자리에 있어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조용해서 하루종일 책과 노닐기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조용한 분위기와 쾌적한 환경, 그리고 숲이 보이는 조망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최근 이곳을 찾는 독서모임 등이 늘고 있다. 일주일에 6∼7개 모임이 북카페 숲에서 모임을 갖고,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시민의 힘으로 되살려낸 땅에서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새로운 문화가 막 잉태되기 시작한 것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시민공원의 숲에도 겨울이 왔다. 겨울 햇살은 짧게 머물다 간다. 부산의 아픈 역사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연대와 소통의 공원에서 위대한 기록의 집적인 책을 만나는 시간은 우리 안에 새로운 인간의 무늬를 새기는 작지만 거룩한 작업이다. 부산시민공원 산책길에 책을 만나야 하는 이유다.

작성자
글·김영주 / 사진·권성훈
작성일자
2017-11-2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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