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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798호 기획연재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책방, 햇살과 바람에 젖은 영혼을 말리다

부산, 걷다 읽다 반하다 - 기장 해안길과 이터널 저니

내용

이곳에 오면, 세상 모든 것들은 바다로 향한다. 당신의 오른쪽 어깨에 푸른 수평선이 출렁인다. 야트막한 산과 개울, 초록의 나무와 한떨기 감국도 목을 빼어바다와 눈을 맞춘다. 이곳에서는 바다가 주인이다. 바다는 제 품안에 파고든 바람과 햇살과 들꽃의 가녀린 어깨를 가만히 안아준다. 바람과 햇살, 들꽃과 나무는 모두 여행자. 먼 여행의 끝에서 다시 영원한 여행이 시작되는 곳, 갯바위와 바다가 만나 몸을 뒤척이는 곳, 책과 바람이 낮은 목소리로 책장을 넘기는 곳, ‘영원한 여행’에 막 도착했다.

 

기장 해안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서점 ‘이터널 저니’. 책 표지가 정면을 향하도록 한 도서 배치가 인상적이다. 이곳에서는 책과 사람이 모두 바다를 바라본다. 

▲기장 해안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서점 ‘이터널 저니’. 책 표지가 정면을 향하도록 한 도서 배치가 인상적이다. 이곳에서는 책과 사람이 모두 바다를 바라본다. 

 

여행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지독한 불멸의 숙명을 이름으로 내건 서점이 기장바닷가에 문을 열었다. ‘영원한 여행(이터널 저니)’이라는 이름의 서점이다. 이터널 저니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서점이자, 아날로그 감성으로 채운 서점이다. 이곳에는 도서검색대가 없다. 책의 숲을 산책하듯 거닐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과 만나라는 의도다. 영원한 여행으로 길을 나선다. 바닷가 서점으로 향하는 길은 짧지만 격렬하고, 느리지만 아득하다. 시간의 축을 밀며 몸 안의 감성을 일깨우는 황홀한 책의 숲으로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이터널 저니’는 부산시 기장군에 있다. 기장 바다는 동해의 끄트머리다. 멀리 베링해를 넘어온 파도가 잠시 지친 몸을 쉬는 곳이다. 알래스카의 빙하를 타오르던 바다의 물살은 베링해를 지나 남진, 동해에 이른다. 그 끄트머리에 기장 바다가 있다. 말하자면 기장 바다는 대양의 경계를 넘어가는 문지방과 같은 곳이다. 베링해와 태평양을 잇는 경계, 태평양과 대서양까지의 먼 항해를 떠나기 전 몸을 뒤척이는 기장 바다의 물빛과 파도에 여행자가 넋을 빼앗기는 이유다. 기장 바다의 파도소리에는 먼 곳으로 떠나고, 먼 곳에서 돌아오는 여행자의 발걸음 소리가 철썩인다. ‘이터널 저니(영원한 여행)’라는 이름의 책방이 이곳에 들어선 이유가 그저 우연일까? 

 

기장 바닷가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어촌마을인 대변리, 연화리, 동암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오르다보면 커다란 흰색 건물이 보인다. 이터널 저니가 있는 아반티 코브다. 영원한 여행이라는 이름의 서점, 책으로 떠나는 영원한 여행, 그 불멸의 유혹이 흰 돛배처럼 펄럭인다. 

 

서점 곳곳에 의자와 책상이 있어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다. 

▲서점 곳곳에 의자와 책상이 있어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다. 

 

서점은 책의 성전, 오크빛 서가에는 바다를 향한 책의 표지가 단정하게 도열하고 있다. 사람도, 책도, 바람의 눈빛도 깊고 서늘하다. 바람에 여윈 뺨과 깊어진 눈빛으로 고개를 들면, 오크색 서가에 가지런하게 꽂혀있는 책들이 보인다. 모두 바다를 향해 있다.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표지가 멀리 수평선을 향해 수굿하게 시선을 보내는 곳, 갓 구운 크로아상 냄새는 발걸음에 바삭바삭 부서진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도 바다를 향해 귀 기울인다.

 

서점 ‘이터널 저니’는 최근 부산에서 가장 인기있는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이다. 바닷가에 들어선 서점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지만 독특한 공간 구성은 이곳을 책방 순례자들의 성지로 만들고 있다.

 

취향의 재발견을 콘셉트로 내세워 자기계발서 류의 도서를 찾을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 문학, 그림, 건축, 역사와 철학과 여행책을 채웠다.디지털을 역주행하는 아날로그의 고집이 은근하고 웅숭하다. 서가 정렬 방식도 특이하다. 책의 표지가 정면을 보고 있다. 관심있는 책을 편안하게 선택하라는 전략이다. 이런 덕분에 한나 아렌트와 수잔 손택의 얼굴을 표지 삼은 책들도 바다를 보고 있다.

 

서점 중앙에 있는 작가의 책상.  

▲서점 중앙에 있는 작가의 책상. 사진제공·이터널 저니 

 

‘이터널 저니’는 지난 7월에 문을 연 아난티 코브 지하2층에 있다. 지하2층이지만 경사면을 활용한 공간 배치로 문을 열면 바로 바다로 나갈 수 있다. 책을 읽다 지치면 리조트 안에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허기를 떼울 수 있다. 서점 안에도 커피와 샌드위치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판다.

 

서점 문을 열고 나서면 탁 트인 기장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바다와 서점의 경계에는 푸른 잔디밭으로 꾸민 정원이 있다. 

▲서점 문을 열고 나서면 탁 트인 기장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바다와 서점의 경계에는 푸른 잔디밭으로 꾸민 정원이 있다. 

 

책을 읽다가 가을 햇살이 비추는 창에 기대어 잠시 졸아도 좋다. 당신이 조는 사이, 멀리 해안을 넘어온 파도가 펼쳐든 책장을 넘기고 있을지 모른다. 책과 바다와 바람과 햇살과 함께 떠나는 책의 순례이자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곳에서, 걷고, 읽고, 부산에 반한다.

 

■ 가는 방법

-주소: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 268-31

-대중교통:동해선 오시리아역에서 셔틀버스 이용


작성자
글·김영주 / 사진·권성훈
작성일자
2017-10-1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798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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