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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797호 기획연재

뭍과 섬에서 섬과 뭍으로, 반전으로 가꾼 변혁의 공간

부산, 걷다 보다 반하다 - 청학동 산비탈과 카페 신기산업

내용

영도에도 산복도로가 있다. 영도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봉래산 허리를 구불구불 잇는 봉래산 권역 산복도로는 영선2동, 신선동, 봉래2동, 청학1·2동, 동삼1·3동 등 7개 동에 걸쳐 있다. 이중 최근 청학동 산복도로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꼬불꼬불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청학동 산복도로는 실핏줄처럼 꼬불꼬불 이어진 좁은 골목과 급경사로 유명하다. 걸어서 오를라치면 숨이 턱턱 막히는 급경사지에 들어선 좁은 골목길이 전쟁과 가난의 흔적을 지워내는 반전의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기산업 카페 전경. 철제사무용품 제조회사인 신기산업 공장을 카페로 리모델링한 이곳은 부산의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신기산업 카페 전경. 철제사무용품 제조회사인 신기산업 공장을 카페로 리모델링한 이곳은 부산의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산복도로는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6·25전쟁은 산복도로의 원형인 탓이다. 청학동 산복도로도 원도심 산복도로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곳이다. 어쩌면 가장 지독한 기억을 품은 채 검붉은 상처를 삶의 무늬로 부활시킨 공간이 청학동 산복도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육지에서 밀려난 섬, 그 섬에서 가장 가파른 골목,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생살을 찢는 고통으로 버석대던 공간이 오랜 아픔을 이겨내고 새 살이 차오르듯 꿈틀대는 공간, 청학동이다. 
 

청학동의 옛 이름은 조내기였다. 조내기는 개펄이 발달한 바닷가에서 조락(潮樂-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며 물이 빠지는 현상)하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고, 일본에서 조엄이 가져온 고구마가 이곳에서 처음 재배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청학동 좁은 골목을 거슬러 오르면 닿는 꼭대기에 사람이 북적인다. 쉼 없이 차들이 산으로 향한다. 아찔한 급경사를 지나 마주치는 풍경은 소박하고 아련하다. 얕은 슬레이트 담장과 페인트칠이 벗겨진 철제 대문, 슬쩍 열린 대문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오래된 장독대가 가을 햇살 아래 고요하게 반짝인다. 빨랫줄에는 빨래가 가을 햇살을 받아 향긋하게 마르고 있다. 청학동 산복도로의 가을 풍경은 오래된 미래를 환기시킨다.
 

산복도로 꼭대기에 닿으면 하얀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올린 듯한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 눈에 띈다. 허름한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이 부산의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신기산업 카페다.
 

신기산업은 1987년 창업한 철제사무용품 제조회사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제사무용품 제조회사다. 사실 이곳은 신기산업의 사옥이다. 직원 복지를 위해 사내에 커피숍을 만들었는데 외부인에게도 사옥을 자유롭게 개방하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전망 좋은 카페’로 알려졌고,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옥상을 꾸미고 앉을 자리도 마련한 것이 신기산업 카페의 시작이었다. 신기산업 카페는 신기산업이 공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새 사옥 준공 후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카페로 꾸며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부산항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신기산업 카페 루프 탑.
▲부산항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신기산업 카페 루프 탑.
 

 

신기산업 카페로 가는 길은 영도구 청학동 산복도로의 심장을 관통하는 길을 지나야 한다. 어림짐작으로 경사도가 45도는 되는 것 같은 가파른 골목을 지나는 길은 영도의 역사를 되짚으며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신기산업 카페는 컨테이너 폐건물을 그대로 활용했다. 자연 채광이 가능한 넓은 창으로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영도가 훤히 보이는 창가 풍경은 일품이다. 이곳의 명소는 루프 탑이다. 루프 탑에서는 부산항대교와 신선대부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비탈 꼭대기는 탁트인 전망을 자랑하지만, 특히 밤하늘의 별을 점점이 뿌려놓은 듯한 야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늦은 밤에도 부산항대교와 신선대부두가 피워올리는 밤의 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청학동 산비탈과 그곳 꼭대기에 자리 잡은 신기산업 카페가 이름을 알린 이유다. 
 

산비탈을 오른 이라면 카페 옆 창고는 복합문화공간인 3A17을 둘러보아야 한다. 3A17은 신기산업 카페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노동의 굵은 땀방울이 채 가시지 않은 기계와 명판, 반투명 슬레이트 지붕과 흙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오래된 시멘트 블록은 영도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뭉근하게 들려준다. 산비탈을 올라 이곳으로 일을 하러 온 동네 주민과 노동자들이 흘렸던 땀의 흔적이 벽돌과 벽돌의 틈 사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곳 창가에서는 청학동 좁은 골목이 보인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은 위로는 봉래산 꼭대리로, 아래로는 바닷가로 이어진다. 바다와 산으로 오르내리던 영도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좁은 골목 사이에 애잔하게 울린다. 이곳에서 영도의 미래가 산비탈을 훑고 가는 해풍 속에서 넘실댄다.

 

청학동 배수지 전망대에서 본 전경.
▲청학동 배수지 전망대에서 본 전경. 

작성자
김영주글·김영주 / 사진·권성훈
작성일자
2017-10-1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797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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