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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6년 10월호 통권 120호 부산이야기호 기획연재

해안 따라 이어지는 어촌마을…짭조름한 갯내 맡으며 걷는 길

기장 대변항~임랑해수욕장 20.2㎞ 이색등대 숨은 볼거리

내용

해파랑길 3구간은 기장. 시작도 기장이고 끝도 기장이다. 부산 기장은 유배지였다. 죄지은 귀양 보내던 곳이었다. 죄인은 대부분 양심범이었고 사상범이었다. 양심 속일 없어, 사상 거스를 없어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게 화근이 목에 칼을 받거나 기장 같은 변방으로 유배돼 고초를 겪었다. 기장은 올곧은 선비의 고장이었고 반골의 고장이었다. 선비의 고장, 반골의 고장이라서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도 뜨거웠다

해파랑길 3구간은 선비의 고장, 반골의 고장을 걸으며 나를 되돌아보는 길이다. 나는 선비였던가. 번이라도 반골이었던가. 구간은 부산 해파랑길 4 구간 중에서 가장 길다. 20.2㎞다. 다른 구간에 비해 많게는 7 가까이 길다.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은 그만큼 길고 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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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마을 '월전', 장어구이 명소

3구간 시작은 대변항이다. 길은 들쭉날쭉하다. 바다에서 시작해 산으로 갔다가 내륙으로 갔다가 다시 바다로 간다. 대변항에서 시작해 죽성리 해송~봉대산 봉수대~기장군청~일광해수욕장~임랑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대변에선 출발하기 전에 대변초등학교 척화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 죽성은 조선시대 군사용 활을 만들던 대밭이 있었던 곳이다. 월전과 두호, 원죽 마을을 합쳐 죽성이다. 출발해서 처음 만나는 포구는 월전이다

월전 가는 길은 천하 명승이다. 동해 수평선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수평선은 세속에 찌든 때를 벗기는 때밀이 수건. 수평선에 밀린 때는 파도가 해변으로 연신 밀려온다. 나에게 저렇게 때가 많았나, 새삼 나를 돌아본다. 여기서 영화 '친구' 찍었고 2002 월드컵 4위를 기념해 월드컵등대를 세웠다. 바다를 보며 걷다가도 어느 한순간 쪽을 눈여겨보자. 임진왜란 공신인 김산수김득복 의병장 묘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인 의병장은 일대와 동래, 울산에 걸쳐 의용을 휘날렸다. 월전 미처 하얀 등대는 광계말등대. 앞바다 조류가 넓은 계곡처럼 거세 광계(廣溪)라고 한다. 등대는 올림픽 성화를 닮아 성화등대로도 불린다

"밭에 기어 다니는 개미까지 보일 정도예요."월전(月田) 달이 밝아서 얻은 지명. 얼마나 밝을까. 달이 뜨면 밭에 있는 개미까지 보일 정도라고 토박이는 너스레를 떤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횟집 군데뿐이었고 해녀가 말똥성게 까던 한적한 포구였지만 지금은 장어구이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명소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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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❶ 해파랑길 3구간의 시작점인 대변항은 멸치·장어·미역으로 유명하다.

   ❷ 대변항 장어구이.

해녀 천막촌죽성 드라마 세트장에서 먹고보고 

월전 다음은 두호마을. 두호 지명은 두모포였다. 조선시대 수군이 주둔했다. 여기 주둔한 수군이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수정동 부산진성으로 이전하면서 두모포 대신 두호가 지명이 됐다. 두모포진성은 왜구 침략을 대비해 쌓은 고려 토성을 기반으로 조선 중종 5(1510) 석성으로 개축했다. 인조 7(1629) 성을 그대로 두고 수군 부대를 왜관 자리인 동구 수정동으로 옮겼다. 성은 오각형으로 기단석과 대형 판석이 남아 있다.

두호마을에 접어들면 '어사암' 안내판이 시선을 끈다. 고종 20(1883) 죽성에서 민원이 발생했고, 암행어사 이도재가 파견됐다. 암행어사는 억울함을 풀어 주었고 위로연을 베풀었다. 관기 월매가 민원 해결에 애를 많이 썼다. 덕을 이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갯바위에 이도재와 월매 이름을 새겼다. 지금도 선명하다. 훗날 일제에 의해 단발령이 시행되자 장관 자리를 박찼던 당찬 이가 이도재다.  

두호마을은 볼거리가 널렸다. 해녀 천막촌과 맞은편 하얀 성당도 눈에 성큼 들어온다. 여유가 있다면 죽성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 접시 하시길 권한다. 하얀 성당은 진짜 성당이 아니라 2009 방영한 SBS 드라마 '드림' 세트장이다. 성당보다 성당 같아서 죽성 명물이 오래다

400 죽성리 해송도 유명하다. 여섯 그루 소나무가 덩어리를 이뤄 멀리서 보면 마치 그루 같다. 여기서 풍어제를 지낸다. 나라와 마을의 안녕을 비는 국수당이 있다. 언덕배기 높은 석성은 1592 임진왜란 왜가 쌓은 , 죽성 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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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리 해안의 신평소공원은 배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함께 해안절경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다.

봉대산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황홀

황학대는 성당을 지나면 마주친다. 고산 윤선도 유배지가 황학대다. 누런 바위가 학처럼 생긴 황학대 지명을 윤선도가 지었다고 전한다. 한약 조제에 일가견이 있던 윤선도는 일대에서 약초를 캐어 유배지 백성을 치유했다. 그래서 유배지 백성은 윤선도를 '의원님'으로 불렀다고 한다. 4 7개월 유배생활을 곳이 여기다. 셋째 아들을 낳은 곳도 여기다.

죽성을 지나면 길은 기장군청으로 가는 도로. '남산 봉수대' 이정표가 보인다.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다고 봉대산이라고도 불린다. 윤선도가 약초를 캐던 곳이다. 해발 229m 정상 능선에 봉수대가 있다. 등산로가 있다. 봉수대에 서서 내려다보는 부산 바다는 생겼단 생각이 든다. 부산 바다는, 어디서 봐도 훤칠하고 단단하며 어디서 봐도 미끈하고 야무지다. 참고로 부산은 봉수대의 도시다. 현재 남아 있는 곳만 11군데. 전국에서 가장 많지 싶다

봉수대 다음 목적지는 기장읍성. 봉대산에서 기장문화원 방면으로 내려오면 된다. 기장읍성은 조선시대 읍성이다. 큼지막한 바위로 받친 성벽 일부가 도로변에 남아 있다. 기장지역에 흩어져 있던 비석 36기를 모은 기장공덕비군() 만하다. 여기에도 암행어사 이도재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근처 장관청과 장관청 담장길, 장관청 입구 회화나무는 보고 . 장관청은 조선시대 군관 집무소다

기장읍성 다음이 기장군청이고 그다음이 일광해수욕장이다. 읍성에서 일광해수욕장까지는 도로이므로 안전에 신경 써야 한다. 일광은 문학의 향기가 남다르다. 윤선도 시비가 있고 소설가 오영수 문학비도 있다. 유배 중인 윤선도를 찾아온 동생과 여기에서 작별했으며 오영수 단편소설 '갯마을' 무대가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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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3구간을 걸으면 해안 방파제마다 세워진 다양한 모양의 조형등대를 볼 수 있다(사진은 젖병등대).

 

붕장어 유명 '칠암'해맞이 명소 '임랑'

일광에서 칠암, 문중까지는 지명이 헷갈리기 일쑤다. 생소하기 때문이다. 지명부터 순서대로 소개한다. 일광~이동~동백~신평~칠암~문중. 문중 다음이 문동이고 그다음이 해파랑길 3구간 마지막인 임랑해수욕장이다. 마을마다 포구가 있고 방파제가 있고 등대가 있다. 이동 방파제의 '기장 미역다시마 특구'라는 문구가 듬직하다. 특구답게 미역철이 끝나면 다시마를 하는 이동은 미역과 다시마만큼은 한국 최고를 자부한다. 대부분 도매로 나가지만 해파랑길 걷는 이가 원하면 낱개로도 판다

기장 동백은 아주 오래된 지명이다. 1530 발간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동백포(冬柏浦) 나온다고 한다. 동백꽃 흐드러지게 포구를 떠올리면 되겠다. 신평 소공원은 걸음이 무거워질 즈음에 만나는 해변공원이라서 반갑다. 정자와 전망대 난간 너머의 갯바위, 조형물, 카페 등등이 공원을 운치 있게 한다. 결혼사진 명소다

칠암은 붕장어가 유명하다. 여기 횟집은 전부 '붕장어 전문' 내세운다. 매년 가을 기장붕장어축제가 열린다. 10월에도 붕장어 축제가 열린다. 칠암에선 등대 이름도 붕장어등대다. 붕장어 구불구불한 형상을 빼닮은 등대가 칠암 앞바다를 밝힌다. 칠암에는 붕장어등대 말고도 조형등대가 있다. 갈매기등대와 야구등대다. 야구등대는 최동원 등대라고도 한다. 배트와 글러브 모형 등대 내벽에 최동원 선수 사진과 일대기를 전시한다. 문중 다음 문동은 과거가 빛나는 포구다. 조선시대 해창 (海倉) 있었다. 해창은 공납미를 보관하던 곳으로 번화가였다

기장이 내세우는 구호는 '아침이 좋은 도시'. 뜨는 동쪽에 있어 부산 다른 지역보다 아침이 일찍 오고 뜨는 장면이 장엄하다. 해파랑길 3구간 마지막 임랑은 뜨는 장면이 기장에서도 앞자리에 든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 '기장해맞이축제' 여기서 열린다. 임랑은 부산 갈맷길 출발점이기도 하다. 갈맷길 처음이자 해파랑길 3구간 끝을 임랑으로 잡은 임랑 풍광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임랑해수욕장 2층짜리 행정봉사실 뒤편 그루 해송은 표정이 인자하다. 누구는 200살이라 그러고 누구는 500살이라 그런다

임랑까지 갔으면 봐야 절이 있다. 묘관음사다. 도로변에 있어 찾기는 쉽다. 임제종찰을 표방하는 묘관음사는 장안사와 함께 기장 4 사찰이다. 한국 현대불교 큰스님인 운봉 대종사가 일제강점기에 세웠다. 향곡, 청담, 성철 여러 고승이 수행했다. 성철과 불필 스님의 일화를 품은 절이다. 대변항에서 임랑해변까지 20.2 해파랑길 3구간은 갯내가 내내 따라다니는 . 세속에 찌든 몸과 마음을 길을 걷는 내내 갯내가 감싼다. 그리고 끝에 이르면 청정한 기운이 감싼다. 갯내가 감싸고 청정한 기운이 감싸는 , 거기가 부산 해파랑길이다.  

작성자
동길산 시인 / 사진 문진우
작성일자
2016-09-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6년 10월호 통권 120호 부산이야기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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