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피어오르는 부산의 끝, '수국수국' 꽃멀미 아찔
[雨중산책] 굽이굽이 물 흐르듯 유영하는 바다 닮은 순환도로 일품
- 내용
태종대는 부산의 끝이다. 태종대 순환도로를 산책한다는 것은 부산의 끝, 부산의 경계, 바다와 뭍의 경계를 아슬하고 위태롭게, 또한 매혹적으로 걷는 여정이기도 하다.
비오는 날이나 안개가 낀 날, 태종대를 걷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매혹속으로 스스로 투항하는 길이기도 하다. 바다를 끼고 물 흐르듯 유영하는 순환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비와 안개의 이중주를 들어야 한다. 바다의 경계에서, 뭍의 경계에서 마주보며 닿지 못했던 바다와 뭍의 단절은 비와 안개로 함께 뒤섞이며 마침내 경계를 지운다. 비오는 태종대를 한번쯤 걸어야 하는 이유다. 바다가 토해내는 짙은 해무는 뭍과 바다의 경계를, 고생대의 기암괴석을, 물과 흙의 경계를 구분 짓던 풀과 나무와 꽃과 새들을 감추어버린다.
완만하게 곡선으로 휘어 감기듯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라. 톡톡, 빗방울이 머리에, 어깨에 부딪친다. 순례자의 지친 발걸음에 빗방울이 참방거린다. 길을 걷는 이들의 머리에, 어깨에, 가슴을 부딪친 후 다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물의 알갱이들은 바다 안개가 되어 다시 영겁으로 순환한다. 비오는 태종대를 천천히 걷는다. 경계를 지우는 탈주의 길을 걷는다. 하늘과 땅과 바다, 비와 바람과 안개, 풀과 나무와 꽃들이 한 우주 속으로 영겁의 회귀를 하는 영원회귀의 길을 걷는 것이다.
▲태종대는 부산의 끝이다. 태종대 산책은 부산의 경계에서 부산의 끝과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을 만나는 매혹의 길이다.
태종대는 지금 안개의 천국이다. 짙은 안개를 뚫고 보라색 꿈결같은 향기가 번져온다. 태종대 앞자리에 자리 잡은 태종사 마당을 가득 피운 보라색 수국이 만발했다. 짙은 무를 뚫고 번지는 보라의 향기를 좇아 길을 걷는다.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부산을 만난다.
▲태종사의 수국.
- 작성자
- 김영주
- 작성일자
- 2016-07-06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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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736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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