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는 원님이 다스리던 마을
덕명(德名) 복명(福名) 관련 동명 많아
부산의 지명 유래 / 동래구 동리 이름의 유래
- 내용
동래구는 옛날 원님이 되어 동래지역을 다스리던 곳이 되어 동리명이 수(壽)·복(福)·안(安)·낙(樂) 등 덕명(德名), 복명(福名)이 많다.
■수민동(壽民洞)
낙민동(樂民洞)과 수안동(壽安洞) 두 법정동이 합쳐져 현재는 수민동이란 행정동명이 됐다.
낙민동은 남문 동쪽에 위치하여 지방 수령이 백성(民)을 즐겁게(樂) 해 준다는 뜻으로 민락동이라 했고, 수안동은 동래부의 수장(首長)이 있는 관아(관청) 안이라 하여 수안이라 하던 말이 목숨 수(壽) 평안할 안(安)의 수안으로 바뀌었다.
■명륜동(明倫洞)
명륜동은 향교가 있는 곳이 되어 교동(校洞)이라 하다 옛 교동과 혼돈 하는 경우가 있어 향교의 중심 건물 명륜당(明倫堂)의 명륜을 따서 명륜동으로 고쳤다.
명장동(鳴藏洞) 옛날 동래부사가 행차할 때 몸을 삼가고 정숙하게 하기 위해 매를 휘돌리면 소리가 나는 명편(鳴鞭)을 올렸는데 그 명편을 간수(藏:장) 하는 곳이라 하여 명장동이 됐다.
■사직동(社稷洞)
사(社)는 토지신을 말하고 직(稷)은 곡물신을 말한다. 조선시대 임금을 비롯한 지방수령이 토지신과 곡물신에 제사를 올려 나라의 풍요와 지방의 안녕을 비는 곳을 사직단이라 했다. 그 사직단이 있는 마을이기에 사직동이라 한 것이다.
이 사직단은 1709년 이곳으로 옮겨져 동래부사가 제례를 올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제가 민족정신을 일깨운다 하여 제례를 금하면서 허물었다.
■안락동(安樂洞)
임진왜란 때 순사(殉死)한 분들의 영령을 모신 충렬사에 그 충렬을 귀감으로 삼기 위해 강학(講學)의 자리인 서원을 차렸다. 서원이 있는 곳이라 하여 '원리(院里)'라 하다가 그 서원을 안락서원이라 했기 때문에 안락동으로 바뀌었다.
■복산동(福山洞)
복천동(福泉洞)과 칠산동(漆山洞) 두 법정동이 합쳐져 현재는 복산동이라는 행정동명이 됐다. 복천동은 옛 동래성 안으로 이 성안에는 우물 6개소가 있었는데 모두 좋은 물이었다. 이 우물을 '복이 넘치는 샘'이라 하여 복천동이라 했다. 칠산동은 옛날 동래군 이전은 거칠산군(居漆山郡)이고 그 이전의 부족국가 때는 거칠산국(居漆山國)이었는데 그 거칠산에서 온 칠산동으로 보고 있다.
거칠산군이나 거칠산국은 '거칠 뫼'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온천동(溫泉洞)
동래온천은 신라시대에 이미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그때로 해서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땅속에서 더운물이 계속 솟아오르고 있다.
현재의 온천동은 처음은 금정산 아래가 되어 금산리(金山里)라 하다가 온천으로 인해 온천동으로 바뀌었다.
- 작성자
- 부산이야기 2003년 7·8월호
- 작성일자
- 2013-04-1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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