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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를 쳐서 이긴다”
부산이야기 2004년 1·2월호 2013-05-10
부산 북항이 현대 항만으로 조성되기 이전의 남구 감만동 남쪽에 감만포(戡蠻浦)가 있었다. 이 감만포는 오래 전부터 포구였다. 그것은 1607년 일본으로 통신사(通信使)의 부사(副使)로 간 경칠송(慶七松)의 해사록에 감만포란 이름이 보이고, 1617년 통신사 종사관으로 간 이석문의 부상록(扶桑錄)에도 '감만이(戡蠻夷)'가 나타난다. 이럴 때의 감만의 '감'은... -
신선이 노니는 곳 ‘선동’
부산이야기 2003년 11·12월호 2013-04-30
오늘날의 금정구는 동래도호부시대는 그 주가 동래부 북면(北面)에 속해 있었으나, 일부는 지금의 해운대구인 동면(東面)에 속한 곳도 있었다. 금정구의 동리명 대부분은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누락된 것도 있어 보충한다. 서동(書洞)은 1832년 경에는 동래부 동면 가운데의 동상면(東上面)에 속해 있었다. 1942년 동래군이 부산부로 편입되면서 서리, 금사리, ... -
범어사 남쪽 산등 ‘남산동’
부산이야기 2003년 9·10월호 2013-04-23
오늘날의 금정구는 동래도호부 시대에는 동래부 북면(北面)이 된다. 동래부지(1740년 발간)에 의하면 북면에는 부곡리(釜谷里) 선동(仙洞) 두구리(豆口里) 작장리(鵲掌里) 소산리(蘇山里) 남산리(南山里) 구세리(仇世里) 장전리(長箭里) 산성리(山城里)로 되어 있다. 1868년에도 북면에는 변동이 없다. 구한말의 1904년에는 금양동(錦陽洞) 기찰동(機察洞)... -
동래는 원님이 다스리던 마을
부산이야기 2003년 7·8월호 2013-04-19
동래구는 옛날 원님이 되어 동래지역을 다스리던 곳이 되어 동리명이 수(壽)복(福)안(安)낙(樂) 등 덕명(德名), 복명(福名)이 많다. ■수민동(壽民洞) 낙민동(樂民洞)과 수안동(壽安洞) 두 법정동이 합쳐져 현재는 수민동이란 행정동명이 됐다. 낙민동은 남문 동쪽에 위치하여 지방 수령이 백성(民)을 즐겁게(樂) 해 준다는 뜻으로 민락동이라 했고, 수안동은 동... -
배와 사람이 오가는 "큰 포구"
부산이야기 2003년 3·4월호 2013-04-16
사하구 다대동의 유래를 말하거나 지명을 말할 때면 엉뚱하게도 일본의 신화전설을 담은 옛 사기(史記)인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인용하여 다대라원(多大羅原)다다라(多多羅)다다량(多多良) 등의 이름이 현재까지 따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 사학자가 부산부사원고(釜山府史原稿)를 일본어로 쓴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 전해지면서 인용되고 있는 ... -
금정산성 첫자 ‘금’과 ‘성’에서 유래
부산이야기 2003년 1·2월호 2013-04-09
금정구 금성동(金城洞)은 금정산 산정 아래 분지(盆地)로 지상 고도(孤島)처럼 되어서 그런지 주관 행정구역이 많이 바뀌었다. 1740년 발간의 '동래부지'는 동래부 북면(北面)에 속한 산성리(山城里)로 적고 있다. 이때 산성리라 한 것은 금정산성 안이 되기 때문이고 동래부 북면은 오늘날의 부산시 금정구 지역이 된다. 1869년 오늘날의 구포지역이 양산군 좌... -
‘가락국(駕洛國)’ ‘가야(伽倻)’에서 유래
부산이야기 2002년 9·10월호 2013-04-02
가락동(駕洛洞)은 강서구의 서낙동강 서쪽으로 김해시와 접해 있는데 김해군 가락면 당시의 법정동명인 죽림동(竹林東), 죽동(竹洞), 봉림동(鳳林洞), 식만동(食滿洞)이 그대로 있다. 가락동은 1989년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에서 부산시로 편입되면서 면의 이름이 강서구의 행정동명이 되었다. 가락동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김해도호부의 건치연혁(建置沿革)에 ... -
바람 막아주는 아늑한 골짜기
부산이야기 2002년 7·8월호 2013-03-26
지하철 2호선 문현동역과 못골역 사이에 지게골역이 있다. 이 지게골의 본래 자리는 남구 문현동 문현동교차로에서 안으로 들어 문현3동 안동내로 드는 입구지대가 된다. 이 지대를 지게골이라 하는 '지게'는 '지게문'을 줄인 말로 '지게문'은 마루나 밖에서 열고 방으로 들어가게 돼 있는 외짝문으로 위아래로 돌쩌귀(문짝을 여닫게 하기 위하여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 -
일본 사신 맞은 ‘연향대청’에서 유래
부산이야기 2002년 5·6월호 2013-03-20
중구 대청동에는 용두산 주위에 초량왜관(1678년∼1876년)이 있을 무렵 연향대청(宴饗大廳)이 있었다. 그 위치는 광일초등학교 자리가 된다. 연향대청은 일본에서 사신이 올 때면 부산첨사나 동래부사 또는 일본측 사신의 위계(位階)를 따라 그에 합당하게 경상감사나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이 상대방 사신을 맞아 국가간의 외교적 상담에 임하는 자리였다. 그러한 외교... -
광복의 희비 잘 나타낸 광복동
부산이야기 2002년 3·4월호 2013-03-19
오늘날 중구 중앙동에 해당하는 지역의 옛 토지대장이나 가옥대장 또는 일제강점기 지도를 보면 大倉町(대창정:오호구라마찌), 高島町(고도정:사또오마찌), 京釜町(경부정:게이후마찌) 등 지명이 나온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이름으로 바다가 메워져 육지가 된 중앙동 지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