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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문화관광

부산국제영화제 씨줄과 날줄 엮은 BIFF의 정신

부산국제영화제 창설 핵심 멤버…아시아 영화 가능성 세계에 알린 아시아 영화통

내용

비프 김지석

▲ 고(故)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

 

 

2019 기해년 시작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1월 초 김복근 부집행위원장,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 문현정 사무국장을 위촉한데 이어 1월 21일자로 각 부문 프로그래머를 선임했다. 이로써 부산국제영화제는 조직 구성을 완료했다.
이번 인선의 의미는 각별하다. BIFF가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4년만에 정상화를 위한 온전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은 과제는 BIFF의 위상을 회복하고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는 일.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고( 故) 김지석이다.


칸에서 날아온 비보, 한 영화광의 죽음
2017년 5월 19일 아침, 프랑스 칸에서 비보가 전해졌다. 칸영화제로 출장을 갔던 김지석 BIFF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사인은 심장마비. 생전에 술 담배를 하지 않았고 별다른 지병도 없었던 그였기에 죽음은 더 충격이었다.
지금 '김지석'이라는 이름 석 자를 꺼내는 이유는 BIFF의 시작이 그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문화의 불모지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 그는 무모하게 도전했고 멋지게 성공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김지석 혼자의 힘으로 일군 것은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이사장, 영화진흥위원회 오석근 위원장, 박광수 감독 등을 중심으로 부산의 영화인들이 일궜다. 그 중 김지석은 영화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를 맡았다.
영화제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김지석은 당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아시아 영화'를 중심에 세웠다. BIFF는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 단숨에 도약할 수 있었다. BIFF의 성공은 김지석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아시아 영화를 발견하고 알려
'김지석 키드'로 불리는 박성호(프놈펜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씨는 7년동안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팀장으로 일하며  가까이에서 김지석을 지켜본 이다.
"아시아 영화를 발굴하고 BIFF의 정체성으로 삼은 '김샘'의 도전은 혁명이었죠. 1996년에 아시아 영화를 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김샘이 없었다면 BIFF는 지금의 성과를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겁니다."
김지석이 아시아 영화라는 새로운 지평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격과 변혁적 기질이 함께 만든 결과라는 게 박성호 씨의 말이다. 김지석은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 그가 좋아했던 것은 영화뿐이었다고 한다. 그의 변혁성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비로소 발현됐다.
"김샘은 일년에 1천 편의 영화를 봤어요. 더이상 볼 영화가 없어서 아시아 영화를 봤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하더군요."


인습·관행 거부한 조용한 혁명
김지석은 할리우드 영화나 서구 영화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 낡은 것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영토는 아시아였다. 당시 아시아 영화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시아에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아시아 영화에 대한 주류의 무지는 편견과 차별이었다. 김지석은 편견과 차별 없이 아시아 영화라는 새로운 영화의 지평을 확인했고, 그곳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김지석을 통해 비로소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아시아 영화는 할리우드 중심의 주류 영화계에 충격을 던졌다. 가난, 전쟁, 계급같은 당대의 문제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질문을 던지는 아시아 영화는 새로운 영화 언어의 탄생으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김지석은 아시아 영화에 눈길을 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주류에의 편입을 거부하고, 비주류와 마이너리티의 가치를 발견하고 확장시킨 그의 철학과 안목은 그대로 BIFF의 정신이 됐다.

 

비프 김지석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렸던 영결식.


변방의 가능성 온 몸으로 증명
김지석의 업적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 영화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영화제로 성장시켰다는 데 있다.
김지석은 새로운 발상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단 1회만에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제로 만들었다. 그는 1회 영화제 때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22년동안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나지 않았다. 그와 BIFF는 하나였다.


지금, 다시 김지석으로
기해년 새해에 다시 김지석을 호명하는 이유는 그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새로운 전환점에 섰기 때문이다. 지난 상처는 봉합됐고, 조직은 갖춰졌다. BIFF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 답은 '김지석'일 것이다.
새로운 길은 변방에서 열린다는 것을 김지석은 온 생으로 증명해냈다.세상은 변방에서 중심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중앙중심주의의 이 명제는 이제 낡았다. 고 김지석은 이미 23년전에 낡은 레토릭을 거부하고, 부산에서 새 길을 개척했다.
영원한 BIFF 맨 김지석이 열고, 2019 BIFF가 열어가야 할 새 길이 앞에 있다. 그래서 다시 김지석이다.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렸던 영결식.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19-01-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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