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 혓바닥으로 시대의 경계선을 핥았다 … ‘운명’을 만났다
부산의 책 - 송유미 시집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 내용
송유미 시인의 시집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푸른사상)를 받아들고 쉽사리 표지를 넘기기 어려웠다. 살찐 슬픔이라니. 이 낯설고, 거침없고, 가학적이며 반역의 피냄새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제목이라니.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조심스레 표지를 넘기지만, 시인의 언어는 강렬하게 심장을 할퀸다. 두 번째 시에서 금새 덜미가 잡혔다.
‘몇 달째 가뭄 끝에 지금은 밤비가 내리고/논바닥처럼 갈라진 모든 경계선을 핥으며/비에 젖은 풀잎들이 스적스적 일어서고/나는 불우했던 한 사내의 비애와/상처를 품고 앓아누운 땅들을 생각한다’-‘비, 경계선을 핥다-고산자’(부분)
본능처럼 시인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송유미 시의 바탕은 ‘울음’이라고 평했던 한 평자의 말을 떠올린다. 시대의 경계선을 핥으려는가, 날선 혓바늘 돋은 시인의 길고 붉은 혓바닥이 어른거린다.
시대와 화해하지 못하는 시인의 방랑은 끝없다. 철거 현장(‘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을 지나 낡은 주공아파트 놀이터를 어슬렁거리고, 내처 휴전선 너머 금단의 그곳, 황해도 해주땅까지 떠돌며 ‘벗겨지지 않는 신발’(‘달이 떴다…낙타의 신발-유클리드의 산책2’)을 찾아 헤맨다. 기약 없는 주유를 통해 시인은 인생의 그물망을 생각하며, 운명이라는 두 글자를 받아들인다.
“철거가 시작되자 포클레인 한 대가 집들을 과자처럼 부수어 먹기 시작한다 그는 용달차 기사 옆자리에 올라타는 나를 향해 나뭇잎의 파란 손을 오래오래 흔든다 // 비가 오면 나는 벌목의 피비린내 가득한 그 곳을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닌다”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부분)
피비린내 가득한 운명과 마주한 시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 작성자
- 김영주
- 작성일자
- 2011-08-10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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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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