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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847호 시정

유신독재 체제 무너뜨린 시민 항쟁

4·19 → 부마항쟁 → 5·18 → 6월 항쟁 → 촛불혁명
4대 민주항쟁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 미지정
1979년 10월 16일 부산서 “유신 철폐” 첫 시위

내용

부마항쟁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 4대 민주항쟁'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유일한 항쟁이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전문에도 담기며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국가기념일 지정은 이제야 첫 걸음을 내딛었다.

부산과 경남이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에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은 유신체제 종식을 이끈 항쟁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고,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관련자 명예회복에 뜻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국가기념일이 되면 정부가 기념행사의 주최가 되고 대통령이 참석한다. 관련 기념단체는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여러 기념사업을 벌일 수 있다. 항쟁이 일어난 지 40년을 맞는 내년 10월에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도록 부산시민의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마민주항쟁은 한국 현대사 4대 민주항쟁의 하나이지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유일한 항쟁이다. 사진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위 모습(왼쪽, 오른쪽 위)과.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위 진압에 동원된 탱크와 장갑차. 사진제공·국제신문
 

▲부마민주항쟁은 한국 현대사 4대 민주항쟁의 하나이지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유일한 항쟁이다. 사진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위 모습과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위 진압에 동원된 탱크와 장갑차(오른쪽 아래). 사진제공·국제신문 

 

■ 역사적 배경

유신체제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빚어오다 1979년 한계에 이르렀다. 각종 시국사건을 이끈 반정부 인사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연행·체포·고문·연금 등 강압책이 잇따랐다. 특히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과 의원직 박탈로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달았다.

 

■ 경과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에서 500여 명의 학생들이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부르짖는 목소리와 함께 부마민주항쟁은 시작됐다. 학생들은 '민주선언문'을 나눠주며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탄압 중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은 교문을 나가 가두시위에 돌입했고,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비슷한 시간, 동아대에서도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시내에 진출, 부산대생들과 합류해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학생 수백 명이 연행됐다. 이튿날인 17일에는 시위가 더욱 격화됐다. 이날 시위에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화이트 칼라, 노동자, 상인, 고교생 등 다수의 시민이 동참했다.

10월 18일, 시위는 마산까지 확산됐다. 1천여 명의 경남대학 학생들이 마산시내 번화가에 집결하고 시민이 가세했다. 19일에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부 고교생까지 동참해 시위대 숫자는 급격하게 불어났다.

 

■ 의의·평가

유신정권은 시위가 확대되자 강경책으로 대응했다. 10월 18일 새벽 0시를 기해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한 지 2일 뒤인 10월 20일 정오를 기해 마산과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통행금지가 연장되고, 무기한 휴교조치가 취해졌다.

계엄령 선포 후 부산에는 강도 높은 진압이 이뤄졌다. 계엄령과 위수령 발동 후 부마항쟁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진압됐다. 하지만 부마항쟁 직후 1주일이 안 돼 10·26사건이 발발했고, 유신체제는 종언을 맞았다. 부마항쟁은 유신정권의 붕괴를 앞당긴 결정적인 시민항쟁이었다. 4·19혁명 정신을 이어받은 부마항쟁의 정신은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촛불혁명에까지 이어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자료 일부 발췌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정립하는 중요한 초석입니다

 

-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출범 선언문 -

 

촛불혁명 이후 오늘날 대한민국은 일상과 경제의 민주화, 전쟁 종식과 항구적 평화 정착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우리는 민주화운동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올바로 자리매김해야 할 시대적 책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근간이 된 4대 항쟁은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입니다. 현재 4대 항쟁 가운데 부마민주항쟁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시민항쟁이자 5·18광주민주화운동과 6·10민주항쟁의 초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올바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국가기념일 지정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를 통해 부마민주항쟁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중대한 영향과 역사적 의의가 후손에게 제대로 전달될 것입니다. 아울러 부산과 경남지역 민주화운동의 지평이 확대될 것입니다. 나아가 한국 민주화운동사의 전체 위상이 제대로 정립될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부산과 경남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부마민주항쟁의 국가기념일 지정 추진에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함을 선포합니다. 동시에 부산시민과 경남도민의 총의를 모아 전 국민이 함께 하는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나갈 것입니다. 부산시민 여러분, 경남도민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이 뜻깊은 과업을 반드시 이루어냅시다!

 2018년 10월 25일

작성자
조민제
작성일자
2018-10-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847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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