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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903호 칼럼

꽃필수록 아프다

[오피니언] 나의 부산이야기_이산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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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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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작가

 

이산하.

작가. 현재 '통일의 길' 자문위원. 시집 '한라산'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성장소설집 '양철북', 산사기행집 '피었으므로 진다' 외

 

부산은 영혼의 계승이 필요하고

제주는 영혼의 치유가 필요하다

 

제주4·3항쟁은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 원죄였고,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종결을
점화시켰다.

 

역사는 강자가 약해져야 변하는 게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변한다.

오래 전, 누가 바다 멀리 어느 섬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자꾸 환청처럼 들려온다고 했다. 거기 섬사람들의 목쉰 통곡이 분명한데, 위험해서 아무도 건너가 위로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한 청년이 혼자 건너가 조문을 매일 했다. 초상집이 아닌 집이 없었고 산 자는 모두 상주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산 자는 죽은 자보다 더 말이 없었다. 모두 하염없이 흐느껴 울기만 했다. 조문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온 청년은 오랫동안 앓아누웠다. 이때가 청년의 나이 27살이었으니 벌써 30여 년이나 흘렀다. 

 

더 오래 전, 머리를 빡빡 깍은 한 문학소년이 부산 서면의 작은 책방으로 들어갔다. 서점의 곱슬머리 점원이 소년을 구석으로 데려가 '이거 폭탄'이라고 속삭이며 서류봉투 하나를 은밀히 건넸다. 평소에는 박현채, 리영희, 함석헌 등의 '이념서적'들이었는데 이날은 달랐다. 집으로 돌아간 소년은 점원의 말대로 '문을 꼭 잠그고 혼자' 밀봉한 봉투를 뜯어 낡은 복사본을 읽었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첫줄이 이렇게 시작되는 김지하 시인의 '오적'이었다. 점원의 말처럼 진짜 '폭탄'이었다. 소년의 가슴에 지진이 일어났다. 장시를 모두 탐독한 소년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아- 씨발, 시는 이렇게 써야지. 이런 게 진짜 시고 시인이지! 나도 언젠가는 이런 폭탄 같은 시를 한번 쓰고 말리라…." 

 

이때가 고2의 소년이 17살이었으니 벌써 40여 년이나 흘렀다. 몇 년 뒤 이제 청년이 된 소년은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가 시를 쓰며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배되었다. 긴 수배시절에 영문 없이 죽은 섬사람들의 얘기를 '한라산'이란 제목의 장시로 써서 발표했다. 그리고 당시 담당 공안검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청년을 구속시켰다. 역시 몇 년 뒤 서점의 곱슬머리 점원은 부마항쟁의 배후인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나타난 몇 년 뒤 이번엔 부산 양서조합사건으로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창문 밖으로 투신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져 방면되었는데, 그가 집에서 보약을 끓여 먹으며 회복중일 때 서울에서 청년이 병문안을 갔다. 점원의 온몸은 폭행고문으로 시퍼런 멍자국과 상처투성이였다. 청년은 전율했고 그 이후 자기신념이 흔들릴 때마다 점원의 상처를 떠올리며 운동화끈을 졸라매었다.  

 

어쩌면 그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40년이나 은폐되어 온 '제주4·3학살'을 폭로한 글을 쓰기로 결심한 그 이면에는 한 점원이 부마항쟁과 양서조합운동으로 피를 흘리며 심어놓은 '폭탄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것이 큰 것을 겸하고 있을 때 역사의 부챗살은 자유롭게 접혔다가 펼쳐진다. 제주4·3항쟁은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반통일적 원죄였고,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종결을 점화시켰다. 이제 부산은 영혼의 계승이 필요하고 제주는 영혼의 치유가 필요하다.  

 

매년 4·3 때마다 제주도에 갔다. 지난해는 4·3 70주년을 맞아 '4·3전국화·세계화'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홍보문구 하나까지 고심하던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모두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세상의 변화를 그 세상의 최하위 약자들의 변화에 기준을 둔다. 그래서 4·3의 최하위 약자는 죽은 자이다. 죽은 자는 죽기 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를 찾는 것이다. 가해자를 찾아 죽음의 계보를 밝히는 것이 최소한 사자의 상처와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다.  

 

유태인이 부러운 이유는 가해자들의 뿌리를 뽑고 부관참시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와의 큰 차이다. 우리는 가해자 언저리도 가보지 못하고 장사부터 하려 한다. '제주4·3학살' 뒤에는 미국이 있다.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가 유태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었듯 미국 대통령이 제주 평화공원 추모비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역사는 강자가 약해져야 변하는 게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변한다. 세상은 변했다. 그러나 세상의 중심만 변했지 가장자리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년은 봄이 와도 꽃필수록 아프고, 남북북미 정상들이 만나도 여전히 제주도로 조문을 간다. 제주4·3의 장례는 3일장이 아니라 71년장이다.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19-03-2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903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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